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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동대 ‘세모단’을 소개합니다 효정 반갑습니다! 저희는 ‘세모단’입니다. 세모단이란 이름 뜻이 대체 뭘까요???? 아시는 동지 있나요? 맞추신다면 제가 특별히 박수를(ㅎㅎ) 쳐 드리겠습니다. 세모단이라는 이름이 정당이름 같다는 분도 계시고 꽃봉우리 예술단 느낌이 난다는 동지도 계셨는데요..^^;;; 사실 세모단은 ‘세상의 모든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이름의 줄임말입니다. 어떤 이름이 우리 몸짓패가 추구하는 바를 잘 전해줄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몇 달을 고민한 결과로 정해졌는데요, 다른 어떤 것 보다 사분오열되어있는 지금의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들에 참석하시는 동지들이라면 저희를 아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곰곰.. 더보기
한국지엠은 비정규직노조탄압 대량해고 즉각중단하라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지난달 30일 사내하청업체 4곳과 계약 종료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369명에게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했다. 비정규직지회는 대량해고중단을 요구하며 부분파업과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아래글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소식지에 실린글로 철야농성등 본격적 투쟁이 들어가기 직전에 작성된 글이다. 진환 (한국GM 창원 비정규직지회사무장) ▶지난 6월 대법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5명이 승소했고. 10월 1일 5명 정규직 발령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지회가 파업투쟁을 진행했구요. 투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주십시오. 6월 10일 대법원에서 정규직 전환하라는 최종 판결이 나온 후 지회에서 한국지엠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기자회견, 교섭요청을 .. 더보기
150년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추용호 공방을 지켜주세요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준)) 통영의 유명 관광명소인 삼도수군통제영에 가면 세병관 뒤편에 12공방이 있다. 나전칠기, 갓, 반닫이, 부채, 소반 등 통영의 전통 공예품과 제작과정을 구경할 수 있고 가끔은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을 직접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12공방을 둘러보면서 역사와 문화의 오랜 향기를 느낄 수 있기보다는, 관광객의 눈요기꺼리를 위한 전시행정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여러 번 통제영을 찾았지만 12공방 쪽으로는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았다. 국가가 지정한 무형문화제인 장인들은 12공방에 나오는 것을 좋아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전통문화와 그 문화를 품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통영시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통영시가 .. 더보기
나는 권고사직 대상자였다 전준택 (stx조선해양지회 노동자) 9월 회사에서 권고사직 대상자라고 통보를 받았다. 그 전부터 어느정도 현장에 소문이 들았던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232명이라는 권고사직 대상자.. 어떤 기준인지? 어떠한 근거인지로 권고사직대상자(이하 '권사자')들은 억울해 했고 망연자실 했었다. 한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술에 기대어 패닉상태에 빠져 산 게 사실이었다. 쟁대의 회의 때나 노동조합으로 올라와 무슨 기준이냐? 무슨 근거냐? 라고 따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노조나 회사에서는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권사자들의 기준과 근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광분해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권사 철회가 목적이라고 쫓아다니며 설득을 했다. 나 역시 권사자였으니 말이다... 더보기
노동일기 글 (고구마) 노동운동을 하게 되면서 항상 내 마음에는 한 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진정으로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면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걸까? 아니 너무나도 궁금했다. 노동이란 게 무엇인지 노동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나는 교차로 신문에서 제일 가까운 S중공업 사내하청에 연락을 했고 면접을 봤다. 2016년 4월 19일부터 7월 31일까지 약 3개월 반 동안 일을 하기로 했다. 3개월 동안 너무 힘들었다. 주야하면서 생활 패턴이 다망가지고 일도 너무 힘들어서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았다. 3개월 동안의 노동이야기를 얘기하면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들어간 회사는 S중공업 내의 사내하청이다. 만드는 물건은 자동차 엔진을 담는 엔진룸과 타이어 스프링 등 전문적인 용어는 잘 모르고 대칭.. 더보기
훼방 70년 ⑧ :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연민이 분노를 부둥켜안을 때 최형록 (필통 필진) 1. 나는 누구인가? 2014년 1월 2일 /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 카나디아 공단 / 한국계 기업 ‘약진통상’ 정문 앞 / 봉제노동자 백여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127개 공장이 파업 중이었다 //... / “나도 ‘꿈’이란 것을 가져보고 싶다” / 서른한살 여공 파비도 / ... 십년을 일했지만 남은 건 200달러 빚뿐 / 그것도 육개월에서 일년 단위 비정규직 / 지난 이년 동안 카나디아 공단에서 / 영양실조로 작업 중 쓰러진 봉제노동자 4000명 // ... 헌병들이 /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시 30분 / 약진공장 공장 부지를 나눠 쓰는 911 공수부대원들도 / 쪽문을 열고 나왔다 911부대 차프소포른 소장은 /.. 더보기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다녀오다 하승우 (청년활동가) 앞으로! 앞으로!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 정권에 분노한 약 13만 명의 노동자 민중이 민중총궐기로 일어섰다. 차벽과 물대포로 막아선 경찰에 맞서 지도부가 “앞으로!”를 외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도부의 외침에 따라 앞으로 전진하던 선두 대오와 시위 내내 눈을 괴롭히던 캡사이신 물대포도 기억에 남는다. 그랬던 것이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일이 있었다. 정부가 인양한다고 자신하던 것이 계속 늦춰지고 결국 배에 손상만 입혔다. 백남기 열사를 죽이고선 그 누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드 배치를 확정하였다. 그렇게 분노가 삭기는커녕 계속 쌓이고 쌓이던 게 1년, 드디어 11월 12일의 아침이 밝았다. 상경할 생각에 밤을 지새.. 더보기
박근혜 퇴진 촛불, 일상의 정치를 되찾다 이현아(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의 중국인 유학생 성추행 파문, 신임 총장의 연구비리 논란, 교수들의 수 억원 대 국가보조금 횡령, 미래라이프(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의 졸속 추진까지….... 올해만 해도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터져왔던 창원대학교. 학교 밖 뉴스나 신문에서는 비리를 들추는 이야기로 떠들썩한데, 정작 학교 안에서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학교의 행정은 더욱 신나게 ‘일방통행’한다. 학교 어디에도 학생이 한 구성원으로서 학내 정치에 참여할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학교 안에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서 ‘정치’는 지워지고 말았다. 잊혀지고, 무감각하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누구든 학내에서 정치를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정치적 선동’이자 ‘학내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이.. 더보기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김경영 (경남 여성회 대표,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감히 입에 담기 어렵고, 입에 올리기 두려운 말 , ‘낙태’ 사회는 그 낙태에 대해 단죄를 말하고 여성을 생명을 죽인 죄인으로 취급해왔다. 이제 여성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왜 여성에게 죄를 묻는가? 과연 죄를 묻는 그 사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낙태가 과연 죄인가? 그러면 낙태의 공범자는? 낙태가 아니라 출산했더니 미혼모? 출산해도 양육을 포기해야 하는 대한민국? 우리 사회의 금기를 향해 말을 하고 행동했다. 침묵의 출산파업이 일어난 대한민국, 이제 섹스파업을 고민하는 한국의 여성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해법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경험한다. 더욱이 한 때 인구 억제의 가족 정책 하에 국가가.. 더보기
남강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다 --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을 읽고 이장규 (노동당 경남도당 정책위원장) 80년대 초반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겉보기에는 모범생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회의와 불만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성적은 잘 나왔지만 단순암기식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이 있으리란 분위기가 지방의 중소도시에조차 떠돌았다. 대학에 진학한 문학 서클의 선배들을 통해서 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간간히 들려왔고, 교과서 특히 ‘국민윤리’라는 과목에 있는 내용들 가령 공산주의자는 도덕적으로도 나쁜 놈들이라는 이야기들이(당시의 국민윤리 교과서의 내용이 그러하였다) 실제와 다르다는 건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외국 소설들만 꼼꼼히 읽어보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말로나 까뮈의 소설에 나오는 공산주의자들은 나쁜 놈은커녕 대의.. 더보기
분노의 대열, 희망의 행진 2016. 11. 4. 오후5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에 창원 상남 분수광장에는 촛불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최순실과 무당이 지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50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창원시청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고, 대열이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 2천여명의 인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마치 아버지의 쿠데타를 기념하듯이 51.6%로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는 앞선 대통령들과는 달리 창조적인 범죄를 저질러 왔다.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내세운 기초연금 학대, 의료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철도 민영화 추진 반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그가 국정을 운영하는 동안 하나같이 그 반대쪽으로 추진되었고, 언론은 이러한 박근.. 더보기
훼방 70년 ⑦ : 108년 후의 금수회의록 최형록 (필통 필진) 1. 레닌이 ≪철학노트≫를 쓸 때 안국선은 108년 후의 금수회의록을 썼다. “...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 나올 줄 모르고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 ... 도척이 같은 도적놈은 청천백일에 사마(네 필 말 수레)를 달려 왕궁 국도에 횡행하되 사람이 보고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안자(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같이 누항(좁고 더러운 거리)에 있어서 한 도시락밥을 먹고 표주박 물을 마시며 간난을 견디지 못 하되 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 하니 슬프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다. 이 같이 천리에 어기어지고 덕의가 없어서 더럽고 어둡고 어리석고 악.. 더보기
무법천지 조선소, 노동조합으로 하청노동자의 삶을 바꾸자 안녕하십니까?저는 통영과 고성 인근의 중소조선소 물량팀에서 8년간 일 해온 노동자입니다. 먼저 조선소 하청노동자를 위하여 먼 길 마다 않고 거제까지 내려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에게는 저를 포함한 네 식구가 있습니다. 내가 귀찮을 정도로 애교가 많은 아내, 입시 준비와 사춘기로 말은 없지만 항상 엄마 아빠를 제일 먼저 생각해주는 믿음직한 큰딸, 그리고 막둥이지만 항상 의젓하고 배려심 많은 막내아들, 이렇게 네 식구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네 식구의 생계와 행복을 담보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이곳엔 저희를 지지해 주시고자 모이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희 하청노조 설립을 감시하고 방해하기 위하여 각 조선소의 노무 팀에서도 나와 있을 것으로 판.. 더보기
세월호 900일을 보내며 *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창원 수요촛불에 참여하고 있는 고구마님께서 900일을 보내며 보내온 편지입니다. 동지여러분! 10월1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10월 1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900일째였고 오늘은 911일 째입니다.(10월 12일 기준) 무려 약 2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인양도, 처벌도, 유가족 분들의 요구도, 정신적 트라우마도 해결된 것이 없고 뻔뻔한 정부와 자본가들은 여론몰이와 힘을 통해 폭력을 행사하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금 우리는 세월호 911일째를 맞이하여 지금을 다시 되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희망의 불꽃으로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를 추모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시민, 노동자, 유가족, 학생 등이 전국적으로 지금도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 더보기
10월 29일 거제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두 번의 죽음과 두 번의 싸움 지난 5월 11일 새벽 서른여덟 살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어린이날 연휴, 대통령이 정한 임시공휴일에 모처럼 가족들과 3박4일 캠핑을 다녀온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회사는 월요일 출근한 노동자에게 부당한 조치를 했고 그는 결국 고민 끝에 사직서를 썼습니다. 하지만 “개 같이 일하다 개 같이 버려졌다”는 모멸감은 끝내 견딜 수 없었고, 다음 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아홉 살 아들과, 일곱 살, 다섯 살 딸을 둔 세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일곱 살, 다섯 살 동생들은 아직 죽음이 뭔지 몰라서 장례식장에서도 회사 앞에 차려둔 빈소에서도 웃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아홉 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