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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김경영 (경남 여성회 대표,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감히 입에 담기 어렵고, 입에 올리기 두려운 말 , ‘낙태’ [각주:1]


사회는 그 낙태에 대해 단죄를 말하고 여성을 생명을 죽인 죄인으로 취급해왔다. 이제 여성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왜 여성에게 죄를 묻는가?  과연 죄를 묻는 그 사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낙태가 과연 죄인가?  그러면 낙태의 공범자는? 낙태가 아니라 출산했더니 미혼모? 출산해도 양육을 포기해야 하는 대한민국?  우리 사회의 금기를 향해 말을 하고 행동했다. 침묵의 출산파업이 일어난 대한민국, 이제 섹스파업을 고민하는 한국의 여성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해법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경험한다. 더욱이 한 때 인구 억제의 가족 정책 하에 국가가 ‘낙태’를 권고하고 유도했다.  또한 아들을 낳으려고 태아 감별 후 여아를 낙태를 시킨 경우는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이미 50대 60대 이상의 여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 국가의 저 출산 극복 정책으로 여성이 애 낳기를 요구했다. 여성의 몸은 한마디로 국가정책의 ‘도구’였다. 이번 ‘낙태죄 폐지’ 흐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질문한다. ‘한국에서 낙태가 죄로 처벌됐었나?’라고.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낙태’가 권장됐던 그 시절에는 낙태죄가 존재했지만 사문화되었다.  나의 할머니, 엄마,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맥락 아래에서 여성들이 임신중단을 ‘결정’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라고 말한다.

 

낙태의 죄를 묻는다?
한국은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며 낙태를 한 여성과 의료인에 대해 죄를 묻는다.

형법 제269조(낙태) ‘부녀가..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의료인의 낙태 행위 또한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각주:2]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는 기준을 두어 처벌을 면하고 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명하며 의사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여성들의 낙태죄 반대 투쟁 등으로  ‘불법 임신중절수술 처벌 강화’ 계획은 무산됐다.[각주:3]  참 재미있는 것은 이번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이 ‘내년에 신생아 2만 명 더 늘리겠다’는 저출산 보완대책을 확정한 국가정책조정회의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의료인에 대한 압박을 통해 임신중절수술을 막으면 그 만큼 신생아 수가 늘어난다고 생각한 걸까? 참 우습고 씁쓸하다.

 

낙태죄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낙태죄’는 여성들이 임신중단을 결정하게 되기까지 존재하는 무수한 삶의 맥락과 현실적 조건들은 삭제시킨 채, 단지 여성을 ‘범죄자’로, '부도덕한 선택'을 한 ‘이기적인 여성’으로, ‘무책임하고 문란한’ 여성으로 위치시키며 여성에 대한 낙인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개인, 여성에게 전가한다. 여성 혼자 임신하는가?. 그런데 임신의 결과를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덜컥 출산하면 그 여성은 미혼모, 아이는 사생아라는 비난과 낙인이 뒤따른다. 과연 그 인생은 누가 보상하는가? 낙태를 강요하거나 공조한 남성에게는 죄가 없고, 아이의 양육책임을 회피해도 비난하지 않는다. 아이의 양육은 아무도 대신해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 결정은 순전히 당사자에게 맡겨야 하며 낙태죄는 부당하다.

‘낙태죄’는 예외적인 허용 사유를 통해 국가가 인정하는 생명, 국민의 기준을 승인함으로써 기준에 맞지 않는 생명, 국민의 기본권은 무시하거나 배제한다. 그래서 엄마가 장애인이란 이유로 출산을 저지하고 장애아란 이유로 출산을 거부하는 논리 또한 문제이다. 

‘낙태죄’는 공익으로서의 태아의 생명과 사익으로서의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구도 속에서 여성의 문제는 사소한 일, 사적인 일로 치부하면서 여성을 끊임없이 공사이분법 체계 안에 가두는 성차별 구조를 은폐한다.

‘낙태죄’는 높은 수술비용, 안전하지 않은 의료 환경에의 노출 등 여성의 안전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낙태죄’는 원하지 않는 관계 유지 요구와 보복, 금전요구 등 남성의 협박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여성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진짜,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2016년 10월29일,‘낙태죄를 폐지하라’며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무수한 여성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경험. 그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무엇이 우리들의 경험을 삭제하는가? 왜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사소하게 취급되는가?’라고 여성들이 질문하고 말하기와 행동을 한 것에 답해야 한다.

 

낙태죄에 대한 국제적 인식
이미 국제 사회에서는 ‘낙태’는 여성인권의 문제이자 건강권의 문제로 인식된다. 1979년 UN 34차 총회에서 선포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법적 조항들이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폐지를 권고했고,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여성의 재생산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 시술을 받을 권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2011년에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한국 형법 조항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정부는 낙태를 합법화한 다른 나라들보다 임신중절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한국에서 낙태율이 왜 더 높은지 그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여성을 애 낳는 도구로 보는 시선 속에서 ‘법’을 무기삼아 여성의 몸을 통제·규율하려는 ‘낙태죄’로는 그토록 해결하고 싶어 하는 저 출산 현상을 바꾸지 못할뿐더러 우리 사회가 당면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성적 관계를 맺을지, 임신을 할지, 중단할지 그 선택에 대한 권리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함부로 여성의 몸을 성적대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관계는 기본이다.  쌍방 간의 사전 피임을 위한 준비, 여성의 몸과 건강을 위한 피임법 마련, 그리고 사후 피임약의 상용화를 추진해야 한다.

형법의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결정이 부담이나 낙인이 되지 않는, 여성의 사회적, 성적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적 조건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 원문 일부 : 칼럼 ‘진짜 문제는 낙태죄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김민문정 글)

  1. ‘낙태’는 임신과 출산, 피임과정에서의 권력 관계, 사회적 구조 등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삭제시키고 ‘태아를 떨어뜨리는’ 주체로서만 여성을 위치시킴으로서 여성에게 책임과 비난을 돌리는 문제적인 언어이지만 법률상 용어이기에 사용함. 다만 맥락에 따라 ‘임신중단’을 사용하기도 함. [본문으로]
  2. ①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④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임신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그러나 ‘배우자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수술 허용한다. [본문으로]
  3. 복지부는 기존과 같이 △해당 시술로 사법 처리된 의료인에 한해 △자격을 1개월간 정지로. 또 ‘비도덕적 진료행위’가 아닌 ‘형법 위반행위’로 유형을 변경. ‘비도덕적 진료행위’는 적정한 용어를 검토하여. 수정안은 규제심사·법제처 심사 후 내년 1월경 최종 공포 예정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