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훼방 70년 ⑦ : 108년 후의 금수회의록



최형록 (필통 필진)

 

1. 레닌이 ≪철학노트≫를 쓸 때 안국선은 108년 후의 금수회의록을 썼다.

“...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 나올 줄 모르고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 ... 도척이 같은 도적놈은 청천백일에 사마(네 필 말 수레)를 달려 왕궁 국도에 횡행하되 사람이 보고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안자(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같이 누항(좁고 더러운 거리)에 있어서 한 도시락밥을 먹고 표주박 물을 마시며 간난을 견디지 못 하되 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 하니 슬프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다. 같이 천리에 어기어지고 덕의가 없어서 더럽고 어둡고 어리석고 악독하여 금수만도 못한 이 세상을 어찌하면 좋을꼬?...”(주1)

 

장영실과 홍대용 그리고 최한기의 나라에서 신정정치와도 격이 다른 “무당정치”가 자행되어 온 나라에서 살고 있다. 말기 암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모르고 암 세포가 신나 죽겠다고 활개치는 나라에서.

 

1895년 17세에 제 1차 관비 유학생으로 동경 경응 의숙을 거쳐 동경 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안국선은 대한제국의 난세를 이렇게 진단하며 “금수 초목이 도리어 사람의 무도패덕함을 공격하려”한다며 여덟 동물을 등장시켜 왜 민중이 “사람을 하늘 같이 대한다”(事人如天)라는 동학사상을 지지했던 지 그 더럽고 혼탁하며 악독한 당대를 질책한다.

 

2. 모습만 사람이지 개만도 못한 년놈들의 세상

 

2.1. 까마귀는 ‘효도는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며 형제 간 재물 다툼, 저만 생각하고 부모가 굶주려도 돌보지 않으며 여편네는 시부모를 어리석은 물건 같이 대접하고 심지어는 원수 같이 미워’함을 한탄한다. 108년 후인 오늘날 어떤 자식들은 아버지 사별 후 홀로 된 어머니 노후를 위한 주택연금 문제를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해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거리에 나앉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주2)

 

이런 문제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첫째 국토의 75%가 산지인 한반도에서 토지와 집을 부의 증식 수단으로 투기하는 “합법적 강도행위”를 근절해야한다. 둘째 노후 부양책임을 가족이 아니라 국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 이런 지극히 이성적이며 인간적인 방도가 명백히 있음에도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살 때 고아로 버려진 영아를 키웠는데 키워준 어머니와 유산다툼을 해서 상속받은 재산을 3년 만에 모두 탕진하고서는 그 어머니를 속여 재산을 가로챈 패륜아도 있다. 공자는 효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야함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한다.


2.2. 호랑이의 권위를 빌리는 여우는 사람들이 더 그러함을 지적한다. 외세에 의존해서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으려는 놈들이 그런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부정부패와 거짓이 일어나는 나라이기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명박산성”을 쌓게 한 놈의 통치기에 진행된 쇠고기 파동 역시 그런 것이 아닌가? 그 파동에서 미 쇠고기 업계를 편든 통상 대표를 한 놈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직으로 승진하지 않았는가?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국정 농단은 그 절정이 아닐까?


 

2.3. 우물 안 개구리가 감히 바다를 말하는 어리석음

제 나랏일도 잘 모르면서 외국인 상종함을 영광으로 알고 아첨하는 노예성은 여전하지 않은가?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벌어지는 헛소리들을 보라.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휴전조약 체결 당사국에 이 “지옥 조선”(헬-Hell 조선)은 제외되어 있음을 알고 있을까? 휴전조약에 도장을 찍지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처지에 미국의 전략핵을 다시 불러오자는 멍청한 짓거리, 한반도 평화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망언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무식의 극을 보여주는 것은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개가 욕할 “개소리”다. 이 망한민국이 미 제국주의의 핵우산 아래 있다는 뜻은 한국의 국방부가 미 국방부의 “한국지청”에 불과함을 뜻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자나 깨나 안보 타령”을 하는 나라면서 자국의 안보와 관련한 “전시 작전 지휘권”을 외세에 넘겨준 나라가 “정상”인가?

 

사드배치는 미 제국주의가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의 한 고리다. 북핵이 문제가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전략에 가시가 되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지정학의 조건이 변하고 있음을 직시한다면 이런 백치 같으며 무책임한 경거망동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왜 주민의 일부가 그토록 어려움을 무릅쓰며 탈출하는 나라에서 엄청난 국방비 부담을 지면서 핵개발을 하는 것일까? 정권유지를 위해서 의지할 수 있는 최선의 위협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과 북한 동포를 분별하며 한반도 평화와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려면 “휴전조약을 평화조약으로” 대체하는 길을 가야함은 명명백백하다. “햇볕정책”이라는 4대 열강 속 현명한 정책을 부활시켜야할 것이 아닌가?!(주3)

 

개구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한번만 벼슬에 오르면 붕당을 세워서 권리 다툼하기와 권문세가에 아첨하러 다니기와 백성을 잡아다가 주리 틀고 돈 빼앗기와 무슨 일을 당하면 청촉(청을 넣어 위촉하기) 듣고 뇌물 받기와 나랏돈 도적질하기와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기로 종사하니 날더러 도적놈 잡으라 하면 벼슬하는 관인들은 거반 다 감옥서 감이요... 불란서라 하는 나라 양반들이 우리 개구리의 우는 소리 듣기 싫다고 백성들을 불러 개구리를 다 잡으라 하다가 마침내 혁명당이 일어나서 난리가 되었으니...”

 

최태민-최순실-최순득 일가의 “무당정치”에 홀린 듯한, 사이코패스적이며 정신분석학적 환자 같은 여편네를 둘러싸고 친박이 “진박”-“원박”(원조 친박)하고 싸우는 꼬락서니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당쟁을 하다 2천만 한반도 민중을 금수만도 못한 일본 제국주의의 어육이 되도록 만든 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재탕하는 작태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지금 다시 “한-일 군사 정보 교류협정”은 이런 “일본 놈 일어나 다시 온다”라는 “훼방 원년” 이래 우려하던 노래의 전조가 아닐까?

 

빠르면 2~3년 내 “박씨 왕조실록” 제 1부 드라마로 제작되어 중국에서 한류 돌풍을 불러일으킬 흥미진진한(?) 주인공으로 등장할 최순실은 19대 비례대표 명단에도 관여했다.(주4) 3포 세대를 넘어 7포 세대를 양산해내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소시민적 윤리의 상상력을 월장(越墻)하는 통치계급의 암투에 민감한 관상감(觀象監) <조선일보>는 이미 “민란”의 잠재성을 경고해왔다.


 

2.4. 꿀벌이 “입 발린 소리를 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口蜜腹劍) 세태에 앵앵 거린다

“거죽은 사람의 형용이 그대로 있지만은 실상은 승냥이와 이리와 마귀가 되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먹어서...조금만 미흡한 일이 있으면 죽일 놈 살릴 놈하며 무성포(無聲砲)가 있으면 곧 놓아 죽이려 하니 그런 악독한 것...”.

 

108년 전 꿈도 꾸지 못한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이런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들” 같은 년놈들을 구경만하고 있을 것인가?!

 

2.5. 무장공자(無腸公子: )는 관리들의 썩은 창자를 개탄 한다

“... 남의 압제를 받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되 깨닫고 분한 마음 없고 남에게 그렇게 욕을 보아도 노여워할 줄 모르고 종노릇하기만 좋게 여기고 달게 여기며 관리의 무례한 압박을 당하여도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소?

 

어느 조부모가 자신의 손자-손녀-외손자-외손녀의 행복을 바라지 않을까? 그런 소망을 가졌다면 어떻게 전경련의 돈에 매수되어 세월호 진상규명을 절규하는 유족들과 그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반대 집회를 하며 심지어는 단식농성을 하는 절박한 유족들 옆에서 치킨파티를 벌이는 천인공노할 망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장기 떼서라도 특조위 이어갈 수 있다면...”이라고 “4-16 세월호 참사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라”며 8월 17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유경근씨의 모친(72세)은 절통한 심정을 토로하신다.(주5)

 

그런데 참으로 믿기지 않는 개탄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대 총학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시국 선언문에 고 백남기 선생 문제를 넣으려 하자 80명도 아닌 무려 800명의 재학생들이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서로 관련이 없는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백남기씨 사망 사건을 왜 함께 얘기하느냐, 정부의 노동개혁과 세월호 메르스 사태에 대한 비판까지 시국 선언문에 끼워 넣는 건 억지다”라는 역사적-사회구조적 사고와 가치관이 결여된 억지를 부리고 있다.(주6) “시국”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것일까? 대화할 줄 모르는 가정과 사회에서 자라며 자폐적인 사회 관계망 서비스나 떠돌아다니는 세대가 언어의 내연과 외포에 무감각하며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관계”란 직접적이며 좁은 자기만의 이해관계, 집단적으로는 실증주의적 자유주의로 표출되는 관계에 다름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자아라는 감옥”이라고 지적한 냉혹한 도구적 이성-계산적 이성의 몸짓 바로 그 자체다. 다윈이 합리성을 “상이한 종류의 느낌을 종합하는 데 필요한 기교”라고 정의한 점을 배워야한다.(주7)

 

故김상협 총장이 고대정신을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라고 멋지게 정의한 사실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이런 한심하고 심각한 작태는 이미 지난여름 학교 당국이 학위장사를 하려는 데 분노해서 일어난 이화여대생들이 집회를 하면서 운동권 학생이 발언하려는 것을 제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학생을 집회에서 축출한 행태와 동일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4-19 세대가 군사 쿠데타 세력이 만든 제도에 적응하고(이런 보수화의 절정은 전 대통령 故김대중씨와 김종필의 DJP 연합이다) 광주 민중항쟁 세대와 1987년 386 세대 역시 소련과 동구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을 성찰하지 않고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단맛에 안주하기로 결단하면서 파시스트와 동침할 수도 있는 체제를 용인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30년 가까이 내려온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업보다.


 

2.6. 똥을 찾아 왔다 갔다 하는 파리는 간사한 소인배 인간들을 질타한다

“누구누구는 가난하고 미천할 때 사귄(貧賤之交) 벗을 저버리고 조강지처 내쫒으니 그것이 사람이며 아무아무 높은 뜻을 지니고 살아가는 선비(有志之士) 고발하여 감옥서에 몰아넣고 저 잘 되기 희망하니 그것도 사람인가?”.

 

혼밥-혼술-혼행은 거미줄 보다 허약한 사회 관계망에 유폐된 “최악 임금 세대”의 얄팍한 교우관계(貧淺之交)의 풍경이 아닌가? ≪조국이 버린 사람들≫(김효순 한겨레 대기자, 2016)에서 분노감과 측은지심으로 읽은, 중앙정보부의 온갖 악행들에 청춘을 상실한 분들은 “훼방 70년 역사의 유지지사”들이다.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의 희생물이 된 탈북자들을 다룬 영화 “자백”의 시사회조차 CGV와 롯데는 거절하지 않는가?!(주8) 그 롯데는 유산을 둘러싼 형제 간 결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미르 재단에 45억에 더해서 70억 원을 갖다 바치고 재단은 이 보험금을 도로 돌려주는 추악한 범죄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억만금의 비자금이 어떻게 쌓인 것인가? 남한 노동자의 90~9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700만 명에 육박해가는 비정규직의 고혈(膏血)을 짜낸 것이 아닌가?!

 

2.7.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

이 경구는 ≪예기≫ 단궁 편에서 유래한다. 공자는 어느 날 길을 가다 어떤 여인이 세 무덤 앞에서 애절하게 울고 있기에 그 사연을 묻는다. 이곳에서 시아바지에 이어 남편이 호랑이에 잡혀 먹혔는데 이번에 다시 아들마저 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에 공자는 그렇다면 왜 진작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곳에 살면 마구 뜯어가는 세금을 재촉 받을 걱정은 없으니까요”라는 대답에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던 것이다.(주9)

 

지난여름 전기세 소동은 이 나라의 조세제도가 얼마나 기업 중심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실례다. 부동산과 각종 증권이 부 증식의 주 된 수단임을 직시한다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함과 동시에 양도세와 증여-상속세를 중과세해야 하며 법인세 역시 증세해야한다. 그리고 소득수준을 무시하고 일률 과세하는 부가 가치세를 폐지해야한다.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바 안국선은 호랑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사람으로 못 된 일을 하는 자의 종자를 없애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하옵네다”.(주10)

 

2.8. 원앙이 남녀 평등한 절개를 강조 한다

“...계집이 두 사나이를 두면 변고로 알고 사나이가 계집을 두는 것은 예사로 아니 어찌 그리 편벽되며 사나이가 남의 계집 도적함은 꾸짖지 아니 하고 계집이 남의 사나이를 상관하면 큰 변인 줄 아니 어찌 그리 불공하오?...”

 

이런 개방적 가치관은 1894년 동학 농민 전쟁기 농민군이 제시한 폐정 개혁안 중 한 가지로 “과부의 재가”를 주장한 것에 안국선이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오늘날 이혼율이 세계 최고이며 노인 자살률 역시 최악이며 황혼 이혼이 많은 것은 60대 이상의 경우에는 가부장적 억압이 그 악업의 응보를 받는 것이며 젊은 세대의 경우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소외”의 귀결일 것이다.

 

정치적 성격을 달리 하는 다양한 여성 해방운동이 최소한 합의한 생존 방책으로서 남녀 별산제를 법적 장치로 마련한 것은 사유 재산제에 토대를 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한편 그 장치가 남녀 간 상호 이성적인 평등과 함께 상호 정념(Affect)의 공유에 토대를 둔 화목한 가족생활에 충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방금 지적한 가족의 해체와 함께 젊은이들 사이의 데이트 폭력 역시 이런 양식의 이성과 정념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결여되었거나 부족한 것으로부터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2.9. 안국선의 해결책 하느님의 사랑, 그 타락

“오늘날로 보면 제일로 악하고 ...제일 음란하고...제일 어리석은 것은 사람이로다...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도 모르고 여우보담도 간사하고 호랑이보담도 포악하고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파리와 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창자 없는 일은 게보다 심하고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도다. 사람이 떨어져서 짐승의 아래가 되고 짐승이 도리어 사람보다 상등이 되었으니 어찌 하면 좋을꼬?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회개하면 구원 있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안국선은 공화주의를 주장한 독립협회에 관련되어 체포 투옥되었는데 수감 중 아펜젤러를 통해서 개신교도로 개종한다. 안국선이 108년 전 그린 이 한국인의 자화상은 오늘날 얼마나 케케묵은 상이 되었는가? 한국인의 봉건적이며 소인배인 근성을 뿌리 뽑아버리려면 맑스의 사상과 함께 불교 사상을 수용해야한다. 맑스 사상이 원래 연구 계획의 1/6 밖에(≪자본≫ 자체도 제 1권만 맑스가 완결한 것) 성취하지 못한 만큼 불완전하나 어떤 세속 사상보다도 그 “현실성”은 그의 시대보다 21세기인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한국인의 소견머리 좁은 파당성은 최악이랄 정도인 아상(我相)에의 집착의 산물이기에 그런 약점을 극복하는 데에는 불교야말로 사상과 가치관 혁명의 인삼이자 녹용이다. 이 중대한 문제는 다시 주제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맑스 사상에 부족한 인간의 심리와 언어에 대한 보완을 꾀하는 작업에서 불교의 “중도 사상 그리고 언어에 의존하는 동시에 언어를 넘어섬”(依言而離言)은 필수 불가결하다. 언어에 대한 불교의 관점은 프롤레타리아 민주-독재 국가를 이용하면서 그 국가 자체를 소멸시켜나가려는 맑스의 변증법 사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통감부는 ≪금수회의록≫을 발매-반포 금지한다. 자신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풍자하던 안국선은 “인력거 꾼”에서는 총독정치의 공정함에 감사하는가 하면 “시골노인 이야기”에서는 동학운동과 의병활동을 무모한 야만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도 그리고 맑스 사상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놈들이 있는 한편 역도 이승만과는 달리 함석헌 같은 무교회주의자 그리고 안병무 같은 민중 신학자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맑스 사상과 불교 사상의 상호보완성은 자연스런 것이다.


3. 19세기 말 제국주의(西勢東漸)에 대한 세 방향의 대응과 21세기 민중운동의 과제

≪금수회의록≫에서 안국선은 여우의(2.2) 입을 빌려 반제국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 생의 말기에 친일분자로 변신하였지만. 전신과 자동차-기관차 그리고 증기선이라는 통신-교통 혁명을 이용하는 제국주의에 대해서 우리 조상은 세 방향으로 대응했다. 유학에 기초한 위정척사-친일적인 개화파-동학에 기초한 농민전쟁.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전 지구에 자본주의의 뿌리를 내리는 압도적 시대에 위정척사파는 자주적인 한편 봉건적이었다. 개화파는 근대적이었으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멍텅구리였다. 김옥균이 신분이나 출신지를 가리지 않고 일본에 유학생을 보내고 귀국하면 적합한 일자리를 주선해줌에 당파를 가리지 않음은 그의 그릇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다.(주11) 동학 농민전쟁세력은 반봉건-반제국주의라는 가장 올바른 노선을 지향했으나 “국왕환상”의 틀에 갇혀 대담한 정치적 전망을 지향하지 못 하는 한(恨)을 남겼다.(주12)


 

인터넷과 이동 전화기 그리고 초음속기와 외계 탐사선의 정보-통신 및 교통 혁명의 시대 그리고 19세기 말과 달리 자본주의 “대장정”을 걸어와 부르주아 초 강대국화한 중국과 자본주의적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 한반도 민중은 민주-민중적이며 자주적인 평화국가의 축조라는 막중한 과제 앞에 서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청화대(請禍隊)와 그 밀정 같은 국정원이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최태민 일가의 세도정치가 위협하고 있음이 엄연한 현실이기에 그 과제는 더더욱 절실하지 않은가?!

 

21세기에는 1871년 파리의 코뮈나르들과 1894년 동학 농민 전사들 그리고 1917년 볼셰비키들 모두를 포함하면서 넘어서는(抱越) 변혁 주체를 형성해야한다. 당면 과제로 2016년 11월 12일 촛불들을 화톳불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각주)

1. 안국선, ≪금수회의록≫, 권영민 엮음(뿔, 2008년), 7~8면.

2. <조선일보> 2016-10-06 일자 A12 면.

3. “훼방 70년 ① : 적대적 공존의 공통분모 무지와 공포감“. 경남 노동자 민중행동 필통 2015-08-25

4. <조선일보> 2016-10-29 일자 A8면.

5. <한겨레> 2016-09-30 일자 1면.

6. <조선일보> 2016-10-29 일자 A 12면.

7. 최형록, “보론: 새로운 변혁주체의 형성”, ≪다윈과 함께≫, 김세균 엮음(사이언스북스, 2015).

8. <한겨레> 2016-09-30 일자 23면.

9. ≪사서오경 고사성어≫(한국 교육 출판공사, 1986년), 11~12면.

10. 안국선의 앞의 책, 41면.

11.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8 민중의 함성 동학 농민전쟁≫ (한길사, 2003), 83~84면.

12. 조경달, ≪이단의 민중반란≫ (박맹수 옮김, 역사비평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