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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기료 누진제 폐지는 과연 옳은가

이장규 (노동당 경남도당 정책위원장)

 

올해 여름은 정말 더웠다. 1994년 여름 이후 가장 더웠던 해였고, 어떤 지역은 기상관측을 시작한 136년 동안 8월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에어컨이라도 마음껏 틀 수 있게 누진제를 폐지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실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른 때보다 전기를 두 배 정도 더 썼다고 해서 요금은 3~5 배나 더 나오는 전기료 누진제에 대해 충분히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누진제의 특성상, 전기 사용량이 적을 때에는 원가 이하의 싼 요금이 적용되는 대신 사용량이 많은 경우 특히 월 500kWh 이상을 쓸 경우 전기요금이 급격히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름에 냉방을 풀가동하다보면 평소보다 더 쓴 사용량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전기요금을 내게 되므로 얼핏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에 비해, 산업용 전기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거니와 주택용에 비해 (비교적 싼 요금이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의 낮은 단계를 제외하고는) kWh당 단가가 훨씬 싼 요금을 적용받고 있으므로 ‘주택용 전기도 산업용처럼 누진제를 적용하지 말고 대량으로 사용해도 싸게 해달라’는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누진제 폐지 주장은 일부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 게다가 실제로 누진제를 폐지하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매기는 종량제를 적용할 경우, 대부분의 서민가정들은 여름을 제외한 평소에는 오히려 전기요금을 더 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여름 한두 달을 생각하고 누진제 폐지 주장에 동조했다가는 평소에도 전기를 많이 쓰는 부자들만 좋은 일 시켜주고 서민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위험성이 높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누진제 폐지 논란과 관련해서, 주택용에 비해 산업용 전기가 특혜를 받고 있으므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틀림없이 타당하다. 현재의 전기요금은 주택용과 산업용 등 종별로 원가회수율이 다르며 그간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 사용자들에게 높은 원가회수율을 적용함으로써. 원가회수율이 낮은 산업용과 농업용 전기 사용자에게는 주택용과 일반용 사용자들이 일종의 전기료 보조를 해주는 셈이었다 (이를 교차보조라고 한다). 한 마디로 일반 국민들 주머니를 털어 기업이 내야 할 전기료를 대신 부담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매년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까지의 전기요금 혜택을 받아왔다. 기업에 제공되는 산업용 전기가 워낙 싸다보니, 기업이 에너지 절감노력을 굳이 하지 않고 오히려 전기로 등 전력를 대규모로 소비하는 설비투자가 일반화되었고 이로 인해 외국에서 덤핑판정까지 받을 정도였다. 한전이 싸게 산업용 전기를 공급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덤핑행위라는 판정이었다.

 

기업들은 작년 등 최근에는 산업용 전기도 원가회수율이 100%가 넘었다는 걸 강조하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간 받아왔던 막대한 특혜를 감안한다면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최근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이 100%를 넘은 것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해서가 아니라, 저유가와 핵발전의 확대 등으로 발전원가가 싸진 탓이므로 이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원가가 올라가고 회수율이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현재의 원가 계산방식도 사실은 불투명하다. 핵발전의 원가를 매우 싸게 계산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이를 핵발전 확대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단순히 발전 당시의 원가가 아니라 이후의 핵발전소 폐기비용이나 사용후 핵연료 관리비용 등을 감안할 경우 핵발전의 원가는 지금보다 한참 더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은 매우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인상해야 한다. 당장은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에너지 절감노력에 투자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미 말했듯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싼 탓에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과다한 편이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3배가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도 20% 가량 높다.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독일이나 일본 등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주택용이 아니라 산업용 전기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탓이다. 2015년 기준으로 주택용 전기는 전체 전력량의 15% 가량에 불과한 반면, 산업용은 57%에 달한다.

 

한편 2020년부터는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에너지 과소비 산업구조로는 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부담은 당연히 그간 특혜를 받아온 기업이 부담해야지 이를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왜 에너지 절감 설비나 기술에는 투자하지 않는가? 게다가 이 자체가 새로운 미래산업이기도 한데? 결국 현재 산업용 전기가 싸므로 굳이 여기에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에너지 과소비 구조는 장시간 노동과도 관련이 있다. 전기가 싸므로 최대한 전기를 가동해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익이 되고, 이는 장시간 노동이 유지되는 원인 중 하나이다. 노동자를 위해서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인상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를 인상해야 한다고 해서, 주택용은 누진제를 폐지하고 지금보다 싼 값에 전기를 펑펑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현재의 누진제는 여름 한두달 냉방을 풀가동하는 경우를 제외한 평소에는 오히려 대부분의 서민가정에 원가 이하로 싸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가정용 전기요금은 1단계(100kWh 이하)부터 6단계(500kWh 이상)까지로 누진구간이 구분되어 있는데, 이 중 3단계 중간 이하 즉 대략 250kWh 이하로서 전기요금을 4만원 이하로 내는 경우는 원가 이하의 전기료를 내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가구가 전체의 60% 가량 된다. 반면 원가 이상의 전기료를 내는 400kWh 이상 (400kWh까지는 원가와 비슷한 수준임)의 전기 사용가구는 전체의 7%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여름 한두달에는 이 비율이 좀 더 올라가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여름 한두달 전기요금 적게 내자고 누진제 폐지를 주장했다가는 평소에는 지금보다 더 비싼 전기요금을 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누진제를 폐지하더라도 원가는 보전해야 하는데, 그간은 대량소비가구에 높은 누진율을 적용함으로써 소량소비가구에 원가 이하로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진제를 폐지하면 그간 원가 이상의 전기요금을 내왔던 7%는 지금보다 요금을 적게 내겠지만 60% 가량의 서민가구는 지금보다 요금을 더 내게 된다. 이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누군가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면 거기서 얻은 이익으로 주택용은 원가 이하로 공급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를 인상한다고 해서 원가 이상으로 무리하게 대폭 인상할 수는 없다. 그간의 특혜를 시정하고 기업이 에너지 절감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 기업이라고 무조건 원가보다 한참 높은 전기요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주택용 전기는 그 자체로 원가를 감안해야 하는바, 서민가정에 원가 이하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전기 대량소비가구에는 원가 이상의 높은 누진율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를 유지하자는 것은 아니며 현재의 누진제를 개선할 필요는 있으며 이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이다. 첫째로, 가구원 수가 많은 경우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구 단위로 요금을 부과하다보니 가구원 수가 많을 경우 1인 가구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따라서 가구원 수가 많은 경우 가구원 1인당 일정 사용량까지는 누진율을 경감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둘째로, 에너지 기본권의 차원에서 전기를 소량사용하는 경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싸게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원가 이하이긴 하지만, 현재의 전기요금도 부담이 되어 기본적인 전기 사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전기는 이미 필수품이므로, 일정 수준 가령 200kWh 이하의 전기는 거의 무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싸게 공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럴 경우 원가보전의 차원에서 전기 대량사용자에게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높은 누진율을 적용해야 한다. 가령 현재는 누진제 최고구간이 500kWh 이상인데 이 구간을 좀 더 세분화해서 700kWh, 900kWh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200kWh 이하는 지금보다 요금이 더 싸지고 700kWh 이상은 지금보다 요금이 더 비싸지므로 누진비율이라는 측면에선 지금보다 누진제가 더 강화되는 것이며 이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전기요금과 관련해서 노동자서민의 입장에서 올바른 주장은 다음의 두가지이다. 첫째는 산업용 전기료를 적절한 수준으로 인상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주택용 전기료는 오히려 누진제를 강화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싸게 공급하되 가진 자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비싼 요금을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