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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나는 권고사직 대상자였다

 

전준택 (stx조선해양지회 노동자)

 

9월 회사에서 권고사직 대상자라고 통보를 받았다. 그 전부터 어느정도 현장에 소문이 들았던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232명이라는 권고사직 대상자..
어떤 기준인지? 어떠한 근거인지로 권고사직대상자(이하 '권사자')들은 억울해 했고 망연자실 했었다. 한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술에 기대어 패닉상태에 빠져 산 게 사실이었다. 쟁대의 회의 때나 노동조합으로 올라와 무슨 기준이냐? 무슨 근거냐? 라고 따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노조나 회사에서는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권사자들의 기준과 근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광분해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권사 철회가 목적이라고 쫓아다니며 설득을 했다. 나 역시 권사자였으니 말이다.

소수가 분열되어 우리 안에서 고립된다면 더 힘든 상황이 닥쳐올 것만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빠르게 권사자와 비권사자들 간에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권사자가 나가야 다른 사람들이 산다' '너희가 권사자임에도 우리가 이만큼 도와주니 감사해해라' 소수의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힘들어 나간 동료들도 물론 있었다. 어제까지 형,동생,친구라던 그들이..마치 우리는 어느순간 잠시 괴물이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같이 권사자인 것 마냥 팔,다리 다 걷어붙이고 내 일인 것 마냥 같이 힘들어해주고 같이 해결책을 찾으려 뛰어주는 동료들도 많았다.

쟁대의회의에서도 따지고 짚어가며 하나하나 꼬집어가는 그런 동료들 덕분에 나 역시 버틴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안에서의 분열로 회사의 회유와 종용에 버티지 못해 희망퇴직과 아웃소싱으로 내몰린 동료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1년 전 지회장 선거 때 조합원들 앞에서 '걱정마시라 만약 회사가 우리를 조여온다면 지회는 싸우고 투쟁한다'고 호언장담했던 그 말을 듣고 이번 일을 겪으며 느낀 것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이 나가는 사람들 막자고, 막아달라고 지회장에게 오죽답답하면 조합원들이 따지듯 물으면 당당하게 지회장 입에서는 자의로 나가는 사람 어떻게 막겠습니까? 라며 오히려 우리들에게 역정내듯 물어왔다.

맞다. 지회장 말이 그렇게 자의로 사직서 쓰고 나가는 사람을 어떻게 막을수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걸 물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사직서를 쓰지 않게 확신과 믿음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다면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어려워서? 그럼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직원들을 더 뽑아준적이  있었던가?
애시당초 사업장의 이 상황은 경영진 탓이라고 항상 떠들던 지회였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은 책임을 어느정도는 같이 지자고 어느정도의 피해는 감수하자고  종용했었다.
어쨌든, 한 고비를 넘긴건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현장의 전환배치, 회사 매각에 따른 또 다른 형태의 구조조정을 대비해야 한다.
우리 사업장 동지들도 더이상 '나는 모른다. 누가 하겠지? 누가 해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내 일이다! 내일을 맞이하고 싶다면 그건 누가 해주지 않는다. 내가,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서로 비판할 수 있고 비난할 수있다 그러면서 그것을 토대로 보다 나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고 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7백여 명 밖에 남지 않은 우리 지회동지들! 또다시 어떤 난관과 시련이 우리에게 온다해도 굳건히 당당하게 똘똘 뭉쳐 나갔으면 한다.
함께 가자! 함께 살자! 같이 가자!  

 

* 마창거제산추련 소식지'산재없는 그날까지'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