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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무법천지 조선소, 노동조합으로 하청노동자의 삶을 바꾸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통영과 고성 인근의 중소조선소 물량팀에서 8년간 일 해온 노동자입니다. 먼저 조선소 하청노동자를 위하여 먼 길 마다 않고 거제까지 내려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에게는 저를 포함한 네 식구가 있습니다. 내가 귀찮을 정도로 애교가 많은 아내, 입시 준비와 사춘기로 말은 없지만 항상 엄마 아빠를 제일 먼저 생각해주는 믿음직한 큰딸, 그리고 막둥이지만 항상 의젓하고 배려심 많은 막내아들, 이렇게 네 식구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네 식구의 생계와 행복을 담보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이곳엔 저희를 지지해 주시고자 모이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희 하청노조 설립을 감시하고 방해하기 위하여 각 조선소의 노무 팀에서도 나와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들은 이 자리에 누가 왔는지 신상을 털려 할 것이고, 털려진 신상을 조선소들 끼리 공유하여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선소 취업은 당연히 힘들어 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지난 8년간 일 해온 무법천지 비정상 덩어리인 우리나라 조선소 현실을 고발하고, 누구도 바로 잡지 못한 비정상을 우리 노동자 스스로 힘을 모아 정상으로 바로 잡아 보자고 외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법천지 비정상 덩어리 한국 조선소

 

우리나라의 조선소는 말 그대로 무법천지입니다. 원청에서 사내하청을 주고 사내하청은 물량팀, 돌관팀으로 다시 재하청을 줍니다. 이런 시스템은 우리나라 모든 조선소에서 사용되고 있고 각 조선소 대부분의 공정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8년간 조선소에서 일 해오면서 국가가 보장하는 4대 보험에 가입해 본적이 없었고, 국민의 의무인 소득세를 한 번도 내 본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물량팀에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물량팀장들은 사업면허를 내지 않고 사람만 모아 사내 하청업체에 들어가 일을 합니다. 사업면허가 없으니 당연히 4대 보험 가입을 할 수 없고 소득세도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직업전문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그 곳에서 취업 알선을 받아 들어간 곳이 조선소 물량팀 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물량팀이 업체에 소속된 부서인줄 알았습니다. 입사하고 한 달이 지나 월급을 받았는데 4대 보험료와 세금이 공제되지 않아 팀장에게 4대 보험을 가입해 줄 것을 요구 했습니다. 그러니 팀장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 하나 때문에 4대 보험 신고하면 지금까지 내지 않은 보험료랑 과태료 다 내야 하는데, 그거 니가 내주면 4대 보험 들어 줄게. 그렇게 할래?”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지만 물량팀의 실체를 알고나니 이해가 되더군요.


(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8년 동안 4대 보험료와 소득세 내 본 적 없어

 

조선소에서 물량팀은 가장 힘들고, 가장 더럽고, 가장 위험한 일을 맡아 합니다. 물량팀에 입사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조건 손이 빨라야만 합니다. 잘 하는 것 보다는 빨리 하는 것이 첫 번째 입니다. 주어진 물량을 빨리 빨리 쳐내지 못하면 물량팀장은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법, 규정, 절차, 안전을 무시하고 작업지시를 합니다. 조선소 현장을 가보면, 블록이 이제 막 세워져 취부를 하고 있는데 취부사 똥구녕을 따라 가면서 용접사가 용접을 하고, 또 용접사 똥구녕을 따라오면서 사상공이 사상을 해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장은 취부, 용접, 사상 모두 물량팀이기 때문입니다.

 

각 공정의 물량팀장들이 지 주머니에 채워야 할 돈 때문에 준비도 되지 않은 작업현장에 작업을 투입 시킵니다. 족장이 놓이지 않은 고소(高所)현장에 작업을 지시하고, 가림막이 없는 복층 현장에 아래 위로 작업을 지시합니다. 특히 월말이 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집니다. 월말이 되면 주어진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철야 작업도 마다 안고 시킵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중 철야 작업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빡세게 일을 해도 물량이 떨어지거나 업체장과 물량팀장 사이에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어제든지 쫓겨나기도 하고 스스로 나오기도 하는 것이 물량팀입니다.


임금체불 다반사, 받을 길 없어

 

물량팀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임금체불입니다. 물량팀장들은 본인 앞으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량팀을 꾸리기 전에 재산의 모두를 마누라나 자식명의로 돌려놓고 물량팀을 꾸립니다. 이것은 하청업체 사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들은 물량팀장이던 하청업체 사장이던 처음 시작 할 때부터 임금체불을 염두에 두고 시작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량팀에서는 정해진 임금이 없습니다. 물론 처음 입사 할 때는 임금을 정하고 들어갑니다. 어떤 달은 100% 임금이 지급되기도 하고 어떤 달은 20%, 30%씩 임금이 적게 지급되기도 합니다. 그 달의 기성이 임금보다 많으면 100% 지급하고 기성이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팀원들 임금을 깎고 지급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날 팀장이 잠수를 탑니다. 연락도 안 됩니다. 이런 경우 팀장이 기성을 가불하여 다 땡겨먹고 튀기 때문에 임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원청이나 하청업체에서 책임져 주지도 않습니다.

 

재수가 좋아서 팀장을 잡게 되더라도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물량팀장 대부분이 본인 명의에 재산이 없기 때문에 소송을 하더라도 받아내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법대로 하라고 더 큰소리 치는 인간도 있습니다.

 

조선소는 생명을 담보로 일 해야 하는 곳입니다. 조선소 현장 자체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조선소는 반병신이 되거나 죽어 나가야만 산재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물량팀 노동자는 죽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청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에서는 보상 한 푼도 없습니다. 법적으로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런데 원청은 수많은 법들을 어기며 하청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습니다. 저들은 법을 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물량팀을 전 산업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

 

지금 조선업이 위기라고 합니다. 정부와 자본들은 조선업이 위기라는 이유로,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아래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밥줄을 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박근혜씨는 정규직 노동자를 짜르고 그 자리를 기간제와 파견 노동자로 채우기 위해 노동법까지 바꾸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소득세도 내지 않고 4대 보험 보장도 받지 못하는 일자리! 더럽고, 힘들게 일하면서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 받지 못하는 일자리! 뼈 빠지게 일 하고도 그 대가인 임금을 보장 받지 못하는 일자리! 작업 현장에서 주검이 되어 나와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일자리! 이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인 당신이 추구하는 일자리 입니까?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진정 좋은 일자리 입니까?

 

기간제와 파견제 노동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은 조선소의 물량팀을 합법화 하여 전 산업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것이 당신 눈에는 정상으로 보입니까?

 

박근혜 정부와 조선소 원청사들에게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인력소 사장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조선소 사내하청과 물량팀을 즉각 폐지하고 원청사에서 직접고용 하십시오! 이것만이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진정한 구조조정이고 조선산업을 살리는 길입니다.

 

단 한 번의 용기를 내어 조선하청노동조합 가입하자


그리고 10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께 절규하며 호소합니다. 노동자는 혼자서는 절대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소리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뭉쳐야만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뭉치면 상상할 수도 없는 막강한 힘이 생깁니다. 지금 원청 자본은 하청노동자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1회용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뭉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1회용 소모품 신세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로 뭉쳐 싸워야만 할 때입니다. 수시로 벌어지는 임금체불, 불법적인 임금삭감과 임금공제, 현장에서 죽어 나가지 않는 한 받을 수 없는 산재처리, 부당해고 등등 우리가 힘이 없어 당하고 있는 수많은 부당 한 것들! 언제까지 당하고만 사시겠습니까?

 

이제는 속으로 참지만 말고 밖으로 분출 합시다! 뿜어냅시다! 그러면 바뀔 것 입니다. 나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이 바뀔 것 입니다. 단 한 번의 용기만 내면 그 다음 부터는 쉬워집니다. 여러분 딱 한번 용기를 내어 하청노동조합 가입합시다. 그래서 저 못 돼먹은 정부와 자본에게 우리는 1회용 소모품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시다.

 

10만 조선 하청노동자여 노동조합 가입하자!


※ 이 글은 10월 29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행진' 본 대회에서 한 하청노동자가 이야기한 내용의 전문입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