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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나는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한다

* 10월 13일 창원대학교에 대자보로 게시된 내용입니다. 김경민님의 대자보가 계기가 되어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며 대자보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또 한번의 새로운 교복과 함께 시작된 고등학교의 생활은 소위 이야기하는 꽉 막힌 시절만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나의 첫 국사선생님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50분의 국사 시간은 단 한번도 졸 수 없을 만큼 흥미로운 것이었다. 선생님은 교과서에 충실하게 우리들에게 역사에 대한 사실들을 가르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 외에 있던 역사적인 사실들 -그 당시의 특정 사건에 관한 자료들- 을 소개해주시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단에서만 그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당시 사회적 현상이었던 촛불집회에서 실천하시는 모습은 어떻게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던 분이셨다. 그걸 또 하나의 계기로 삼아 나는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이곳에 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모두들 위험하게 바라보았지만 당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인문학 중에 하나인 사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결국 4년의 배움에도 타는 목마름으로 심화공부를 선택하게 되었고 좋은 교수님들의 제자가 되어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학교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사회 안에서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에 대해 신중하고도 가슴 뛰는 설레임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미래의 진정한 역사학도가 되기를 꿈꾸면서.
 
하지만 지금 사회 안에서의 역사는 그 순수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여지껏 배워왔던 역사는 단 하나의 것이 아니었고 단 한명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역사는 하나의 사건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그것을 수많은 관점에서 해석하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이 지속되기도 또 뒤집히기도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었다. 특정한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고 하더라도 결코 다른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주변에서 더 많은 생각을 이어나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다양성은 과거를 미래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 사회를 변화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것이 역사였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식의 황국 신민 교육의 관성이 여전히 작용했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보면 후진적인 것이 가득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통제방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실제로 행해졌을 때가 있긴 있었다. 역사에서 절대로 사라져서도 안되고 사라질 수 없는 암흑의 시대였다. 일개 군인의 쿠데타가 혁명으로 둔갑하여 정의로웠던 4.19를 계승한다는 그야말로 사실을 왜곡하고 그것을 주입시키려는 시대에나 존재했던 그 국정화 교과서라는 것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역사는 단 하나의 해석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들을 부정하려하는 순간 역사는, 역사학은 사라진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항거하며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만들어주셨던 우리나라의 모든 독립, 민주 지사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권력의 고집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과연 올바른 사회인가.
 
대한민국 헌법에 첫 조항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국정화 교과서이며 그러한 원칙과 사회가 흔들리는 이 곳이 과연 건강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 구성원인 우리는 과연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반짝거리는 호기심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가진 한국의 수많은 역사학도들의 죽음을 보아서야 되겠는가.
 
             나는 진실로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한다.

 史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