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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훼방 70년” ① : 적대적 공존의 공통분모 무지와 공포감

 

 

최형록 (필통 필진) 

지뢰가 젊은 청춘의 다리를 불구로 만든 사고로 준전시상태로 몰아가는 한편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는 국민 대 합창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축제를 벌이고 있다. 정신분열증적 상황!

강박증적 확신편향

정말 북한이 지뢰를 매설해서 도발한 것일까? <뉴욕타임스>의 한국 주재 기자 최상훈은 8월10일자에서 남측의 강박증적 확신편향(Confirmation Bias)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홍수로 느슨해진 오래 된 지뢰는...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위험물이 되고 있다. 2010년 수십 개의 지뢰들이 홍수 탓으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 마을 사람 1인을 사망시키고 접경지대 근처 강가와 해변에서 여름휴가 중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비무장 지대에는 지뢰가 하도 많아서 “야생 사슴들이 지뢰를 밟아서 폭발하기”도 하며 더욱이 “북한과 접경지대 중 하나인 강원도에서는 이제까지 마을 주민 116명이 지뢰로 희생되었다”.

요컨대 이번 사고는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이 아니라 홍수 혹은 토양의 이동을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한정부와 사실상 미군인 유엔군 사령부는 이런 가능성을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통일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1993년 그러니까 22년 전 대구 민주시민운동협의회 주최 교육 프로그램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팀스피릿 훈련”을 강연한 원고를 살펴본다. 라일락이 생명의 화사한 향기를 뿜어내기를 무려 22회나 반복하는 동안 남북 간 적대관계는 얼마나 해소되어왔을까?

이 강연은 3부로 구성했다. 무엇보다 우선 “무지”의 핵심인 “문제를 보는 기본관점”을 다룬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은 이전과 달리 “통일세력”으로 변신한다. 이 통일노선이 성장해 온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성격을 띤 통일이라는, 그 성격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 전경련이 남북경협을 제시한 점은 이런 사정의 적극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교역량이 많아진 중국시장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세에 있으며 이제까지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모든 부문에서 밀려나는 추세 그리고 북한의 지하자원을 비롯한 경제부문을 중국이 모두 선점하기 전에 일부라도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 계산”에서 나온 절박성을 볼 수 있다.

 

대소 전진기지에서 대중 전진기지로

2부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한-미-일 3각 군사동맹 그리고 팀스피릿 훈련”을 다뤘다. 당시 그 훈련은 핵전은 물론 생물-화학전 훈련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진보진영의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1978년 미 하원 군사위 보고서에서는 “...남한 땅 그 자체도 미군의 군사 훈련장으로서 대규모 기동훈련장으로서 그리고 무제한적 자유사격장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곳”임을 밝히고 있다. 중국이나 과거 소련에게 북한은 이런 류의 훈련장을 제공한 적이 있었던가? 남한 정부 몰래 살아있는 탄저균을 반입해도 약간 귀찮은 구업(口業)만 하면 의사 윤봉길이나 이봉창처럼 원시적인 도시락 폭탄 같은 것을 선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선량”들 역시 대강 넘어가는 “백치 민족”의 나라. 그리고 북한이 중국이나 소련과 1993년 당시는 물론 그 전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합동 군사훈련을 한 적이 있었던가?

오늘날 남한은 과거 대소 전진기지의 지정학적 역할에서 이제는 대중 전진기지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일본 파시스트 군국주의자 놈들은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정상국가”가 (여기서 “정상”은 이성적이며 민중복리 지향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請禍臺에 세든 여편네가 이제 노동부문에 대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파괴적”으로 펼치는 그런 “정상”과 동일하다) 되어 한반도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일본의 수상 나까소네는 1983년 1월 남한에 대한 군사적 보호역할까지도 포함하는 “침몰할 수 없는 항공모함론”을 호언했는데 2차 대전의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인 아베의 군국주의의 뿌리는 이토록 깊고 집요하다.

그런 한편 1983년은 미 제국주의 군국주의자 놈들이 “유능한 궁수(弓手) 83”(Able Archer 83) 작전을 개시한 때이기도 하다. “궁수”. 이미 1963년 기시 정권은 제 1차 장기 방위력 증강계획을 발표하며 한반도에 대한 일본군의 역할을 연구하는데 그 이름이 “세 개의 화살”(三矢)이었다. 군국주의자 놈들의 용어는 이렇게 파괴적 호전성을 명백히 띠고 있다. “유능한 궁수 83”은 소련에 대한 핵 선제공격 계획으로서 소련에 크나 큰 부담을 주는 군비경쟁을 전개하여 소련의 붕괴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대해서 소련은 “전쟁 공포감”(War Scare)에 사로잡힌 것으로 미 국립문서 보관소의 기밀해제 문서에 역력히 드러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소련 공산당 총서기 유리 안드로포프는 유럽에 퍼싱II 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의 배치가 임박했음을 알고 레이건 행정부의 특사에게 네 차례나 “오산”에 따른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소련 사회주의에 크고 작은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기본적으로 평화적 외교노선을 밟음에 비해서 미 합중국은 “세계의 침략적이며 파괴적 군경”인 것이다. 이는 아이젠하워가 미 의회 고별연설에서 밝힌 군산복합체, 오늘날에는 군-산-학-연 복합체로까지 변신한 미 제국주의 자본의 근본 성격 그리고 인간의 이성 파괴적인 탐욕스런 증오감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현재 그리고 향후 남북관계의 향방의 초점은 계속해서 북한 핵무기의 무장해제가 될 것이다. 자국민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나라에서 그리고 남한의 연간 국방비가 390억 달러에 이르는데 비해서 100억불인 북한에서 엄청난 부담을 안고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금 말한 소련에 대한 압박과 동일한 성격의 압박으로부터 정권이 생존할 수 있는 최후수단이 바로 핵무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이미 미 공군의 폭격기가 평양상공에서 핵전쟁 리허설을 했으며 미국의 파업 노동자들을 진압했던 맥아더는 북한 해안선을 따라 30~50개의 핵폭탄을 투하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1995년 미 합동 참모본부 의장 콜린 파웰은 미국은 북한을 “연탄”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2010년 4월에도 미 국방장관 레온 파네타는 북한에 대한 핵공격을 배제하지 않았다. 2년 전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백악관은 “놀이책”(PLAYBOOK)이라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요컨대 그 계획의 골자는 핵무기를 탑재한 B-2 폭격기로 북한에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동북아 정세와 노동자 계급의 통일운동

나의 강연 제 3부는 통일운동의 과제였다. 그 골자는 전략적 차원에서 통일운동을 노동자 계급운동과 연계해서 추진해야한다는 것이다. 1993년 이 강연을 한 이래 오늘날까지 남북의 평화적 통일운동과 관련해서 획기적인 일은 문익환 목사 등 진보적 통일운동을 계승한 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라고 단정할 수 있으며 “사(詐-邪)대강” 정권과 현재의 “파괴경제” 정권은 이 현명한 정책을 전복해왔다.

올바른 투쟁노선을 천명한 민주노총은 한반도 노동시장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통일정책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 향후 결성될 “대중적 진보정당”은 생각하건대 아마 전경련이 수년간 연구한 결과 남북경협을 경제난의 중-장기적 탈출구로 제시한 것으로 생각되니 만큼 중국이라는 엄청난 변수를 고려하는 동북아 정세의 전략적 변화를 고려하며 복지정책을 한반도 통일문제와 연계해서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1993년 1월26일자 <한겨레신문>은 재무부가 1991년 국민 총 생산이 서독이 1조 300억불임에 비해서 남한은 2800억불에 불과하며 2000년 경 독일식으로 통일할 경우 독일의 통일비용 992조원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통일비용만 문제일까? 동서독은 통일 전 이미 상호방문도 할 수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남북 간 인적-문화적 교류는 필수적이다.

왜 “해방”이 “훼방”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1945년 “자주적 민주 공화국의 수립”이라는 꿈이 미 제국주의 군국주의자들 그리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는 친일파가 잔재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나무를 이루어 “해방의 꿈나무”가 성장하는 데 70년 간 대체로 “훼방”받아왔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주민이 4대 열강의 각축 속에서 분단된 나라의 비극적 경험을 했을까 싶은 깊고 깊은 슬픔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을 느끼며...

※ 이 글은 8월 24일 밤 남북고위급회담이 타결되기 전에 투고 된 것임을 알려둡니다. <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