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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올 여름, 전기요금을 갑자기 내린 까닭은?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전기요금 인하 깜짝 발표

지난 6월 21일, 산업부는 한시적으로 여름철 주택용 전기요금 인하와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토요일 전기요금 인하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이는 지난 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에 유가 절감분이 반영되도록 하라고 언급한 것의 후속 조치의 성격을 띠고 있는 한편, 최근 메르스 등으로 인한 경제 상황이 어려운 점도 감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액면 그대로 이유를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곤란하다. 우선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유류를 원료로 하는 발전기의 비율은 크지 않기 때문에 유가와 전기요금 원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 조치로 혜택을 볼 집단이 과연 경제 상황이 어려운가 하면 더더욱 아니다.

 

 

전기를 더 많이 쓰라고 부추기는 정부

구체적으로 보면, 주택용 전기요금은 올해 7~9월 동안, 산업용 요금은 8월 1일부터 1년 동안 요금이 인하된다. 이에 따라 주택용은 누진제 3구간과 4구간을 통합해 647만가구 평균 8,3678원(약 14%) 전기요금 인하가 이뤄지고, 산업용은 중소기업 경부하요금제 시행을 토요일에도 적용하여 총 3,450억원, 업체 평균 437만원(약 2.6%)의 전기요금 효과가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혜택을 보는 가구는 전기를 아껴쓰는 서민 가구가 아니라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라 한 달에 47,260원~217,350원을 전기요금으로 내는 에너지 다소비 가구들이다. 즉 에너지 다소비 가구에게 전기를 더 많이 쓰라고 부추기는 꼴이며, 누진제의 애초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산업체에 대한 토요일 경부하 요금 적용은 산업계에서 줄곧 요구해온 것인데, 이는 산업체의 평일 전력 수요를 분산하기 보다는 토요일의 추가 조업을 부분적으로 늘리거나 그저 한 번의 생색내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어쨌든 그렇잖아도 주택용에 비해 너무도 저렴하여 전력다소비 시설 도입과 야간 조업을 부추겨 왔던 산업용 요금을 ‘현실화’하기는커녕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고착화하는 분위기를 만들 우려마저 크다.

요컨대 전기요금을 인하하면 뭔가 요금 폭탄에서 벗어나고 가계와 기업의 주머니에도 몇 푼이라도 돌아갈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전기를 아껴쓰는 가구와 산업체에는 별 이득도 없는 조치라는 것이다. 핵발전과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한국의 에너지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 전기요금의 점진적 인상을 강하게 요청해왔던 환경단체와 에너지 운동 진영에서는 전기요금의 선별적 인상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거꾸로 가는 요금 인하를 단행한 정부의 엉뚱한 포퓰리즘에 오히려 당황하고 황당해 하고 있다.

정부와 핵발전 업계의 불안감

이러한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 발표의 배경에는 정부와 전력회사의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짐작해 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정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예상되는 전력 수요를 채우기 위해 신규 핵발전소 2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한국의 전력수요 증가 추세가 꺾이는 징후가 보임에 따라, 핵발전소가 계속 필요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를 더 많이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전력수요는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은 이미 2000년대 들어서 정체 상태에 들어섰고 산업용도 수출경기 둔화가 구조화되면서 전체적으로 1%가 못되는 수요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예상했던, 그리고 전력산업 특히 핵발전 산업이 원한 만큼의 발전소 건설과 가동이 이루어지려면 연 3-4%의 전력수요 증가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전기를 많이 쓰는 국민과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에 전기요금 부분 인하의 꼼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꼼수는 궁지에 몰린 이들이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이번 전기요금 인하가 과연 정부가 의도한 만큼 전력수요를 늘리게 될지도 지극히 의문이거니와,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재생에너지 보급에 익숙해지고 또 관심을 갖게 되는 ‘에너지 시민’이 늘어날수록 이런 꼼수는 통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 에너지 수요증가 정체 시대는 오히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