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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체이탈, 선조, 그리고 박근혜

정부권 (민중행동 웹진 '필통' 필진)

최근 유행하는 말 중에 유체이탈 화법이란 게 있다. 유체이탈이라 하면 8, 90년대 즐겨보던 만화가 생각나는데, 아마 당시에 유체이탈을 주제로 한 만화들이 많이 성행했던 듯싶다. 그때 알게 된 유체이탈의 개념은 ‘영혼과 신체를 자유자재로 분리할 수 있는’ 일종의 초능력이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유체이탈은 신비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요즘 떠도는 유체이탈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혼이 빠진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착각하고 있는 사람, 대체로 이런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내뱉는 말이 곧 유체이탈 화법이다.

 

 

물론 이 희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언어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가 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대체 그녀가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 흔히들 ‘무뇌아’라고 한다. 교활해서? 이 경우는 매우 영악한 인간이다.

그러나 여하튼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유체이탈 화법의 근원이 무엇이든 그녀가 매우 교만하고 책임감이 없으며 받들어지기를 좋아하고 군림하려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만은 모두들 인정하는 공통분모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신공주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우연이 만들어낸 것일까. KBS 대하사극 <징비록>에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 유신공주 박근혜에 버금가는 인물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선조다. 선조는 고종과 더불어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한 임금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우리가 알기에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한 일이 있다면 전쟁이 나자 당장 짐을 꾸려 도망부터 갔던 일이다.

 

선조의 몽진 (역사저널 그날에서)

 

피난가는 선조

하지만 드라마 초반에 등장한 선조는 매우 영민한 인물이었다. 강단도 있고 의지도 분명한, 그러면서도 노회한 사대부들을 간단하게 제압하는, 뭐랄까 그런 면에서 그는 대단히 유능한 군주였다. 교활하기까지 한 그의 인사권 행사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붕당정치를 이용해 자기 권력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상을 빗나간 인물 묘사에 시청자들은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선조를 너무 미화한 것 아니냐는 일부 원성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혹은 연출가)의 의도가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역사는 선조가 원래 독서를 좋아해 안 읽은 책이 없을 정도이며 이여송이 친필을 청할 정도로 글씨에도 능했다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선조를 무식하기로 소문난 박근혜에 빗대는 건 부당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유야 어떠하든 선조 역시 유체이탈 화법이 몸에 밴 인물이었다. 선조가 탁월한 지적능력을 바탕으로 영악하고 교활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자기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는 선수였다. 

전쟁이 터지자 마침내 선조의 적나라한 본색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나는 이때 <징비록>의 작가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아, 그토록 권위적이던 선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교활함을 숨긴 안면에 근엄한 빛을 띄우며 대신들을 조종하던 선조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허둥대며 이리저리 안절부절 못하는 왕을 보며 김태우가 참 연기를 잘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징비록>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게 되겠지만, 선조는 전쟁이 끝나고 류성룡을 배척해 파직하고야 만다. 그리고 공신첩을 만들게 되는데, 왕을 호종한 호성공신을 앞에 세우고 직접 전쟁을 수행한 선무공신은 그 뒤에 세운다. 게다가 호성공신은 86명인데 반해 선무공신은 그 오분지일도 안 되는 18명이다. 호성공신에 왕자들에다 내시도 스무 명 가까이나 된다니 말 다했다. 

선조의 정신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에서도 보지만 선조는 수시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신들을 탓하고, 백성을 탓한다. 바른 말 하면 불편하니 이유를 달아 내쫓고 상황이 위급해 필요하면 다시 불러들이길 반복한다. 주인공 류성룡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왕이다.  

그런데 굳이 400여 년 전에 죽어 없어진 선조와 박근혜를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대통령의 성완종 사태와 이완구 총리 사퇴 관련 메시지, 그것도 직접 국민 앞에 나서기를 꺼려 꾀병을 핑계로 비서실을 통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서 아, 어찌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이다지도 냉혹할 수 있을까 하여 소름이 끼쳤다.

내가 보기에 오늘의 대국민메시지는 고 성완종 회장을 무덤에서 꺼내 다시 죽이는 짓이었다. 아마도 무덤 속에서 고인이 이 메시지를 들었다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을 것이다. “박근혜, 네가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내가 너를 위해 돈도 대고 몸도 대고 모든 걸 다 바쳤는데, 네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하고.

그는 자살하기 전 작성한 메모에 박근혜의 이름을 크게 적어 넣지 않은 것에 대해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지만―고인이 생전에 벌인 일들은 사실은 범죄다―그 경위야 어떠하든 자기를 위해 돈도 쓰고 조직도 대고 몸도 바친 사람을 그렇게 난도질 할 수 있을까.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의리, 양심 같은 단어를 떠올리기 전에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저는 부정부패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도 그런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박근혜는 4월 15일 남미로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책임의 몸통으로서 할 말은 분명 아니다. 이런 게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이다. 자기 탓은 없고 남 탓만 내세우면서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것이다. 오늘 4월 28일 내놓은 대국민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정작 측근들의 부정에 대해선 일절 언급 없이 노무현정권이 연이은 특사를 안 했으면 이런 사단이 났겠냐는 식으로 교묘하게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문제는, 이따위의 유체이탈 화법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런 어쭙잖은 짓도 고도의 전략이요 합목적적 정치행위로 치부된다. 그러기에 누구 말처럼 “꾀병(?)을 부려 누워버리는 것도 핵심메시지를 던지기 전에 앞뒤로 배치되는 일종의 명분의 배분”이 되어 정치적 복선으로 깔리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것을 통감해야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2015. 4. 28.

ps; 4·29 보궐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결국 유체이탈 화법도 철없는 공주 흉내 내기도 다 명분의 배분을 위한 복선으로서 고도의 전략이요 합목적적 정치행위가 되고 말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 부터 따져야 할 듯하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