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가 승리하여 1974년생 젊은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가 그리스의 새로운 수상이 되었다. 시리자의 집권은 첫째, 유럽에서 1936년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 이후 급진좌파의 집권은 80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 둘째, 2008년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공황과 그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시리자 집권의 핵심 원인이라는 점, 셋째, 11월 총선을 앞둔 스페인에서도 신생 좌파정당인 포데모스(Podemos) 집권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등 시리자의 집권이 유럽의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에서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자의 집권과 그것이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최형록 (경남노동자민중행동 필진) 님이 글을 보내왔다. 읽는 이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필자의 양해를 얻어 서면 대담 형식으로 정리해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필통>
* * * * * * *
*시리자 그리고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의 연합 (1) http://gnfeeltong.tistory.com/24
<필통> : 필자는 지난 3월 17일 개최된 경남지역 시리자 다큐멘터리 상영회에서 시리자가 연정 파트너인 우익정당 그리스독립당(ANEL)의 대표를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에 대해 우려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형록> : 올해 2월 ≪International Socialism≫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 잡지의 편집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시리자의 중앙위원인 쿠벨라키스(Stathis Kouvelakis)에게, 나 역시 우려하는 점, 국방장관을 우익인 놈으로 임명한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캘리니코스 역시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의 역사적 패배를 상기시키면서 이것은 일종의 제 5열을 정부에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올바른 지적을 하고 있다. 이미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측이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고 지배 권력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에도 방치한 점을 비판하지 않았던가?
이에 대해서 쿠벨라키스는 러시아 혁명이 당초 사회주의 혁명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당면 문제인 평화와 토지개혁 문제로부터 시작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람시의 관점을 언급하면서 시민사회의 사회적 세력들을 정치적으로 기존 질서로부터 해방시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부르주아 국가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자신이 변모하게 됨을 역설한다. 그는 유럽연합이 시리자의 제안에 압력을 가하고 협박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철의 새장”(Iron Cage)에 그리스를 여전히 가두어 두려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리자와 민중이 이미 이 새장을 깨트리고 있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필통> : 다큐멘터리를 보면 2012년 6월 총선에서 집권에 아깝게 실패한 뒤 시리자의 대표 치프라스가 독일에 갔을 때, “독일 사회민주당이 우리를 돕고 싶다고 하길래, “메르켈을 이기세요!” 라고 말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시리자 집권의 성패가 시리자와 그리스 노동자․민중에게만 달려있는 것은 아님이 분명한 것 같다.
<최형록> : 앞서 말한 토론회에서 청중들 중에서도 강력히 피력했듯이 쿠벨라키스는 유럽 다른 지역의 발본적 좌파가 지지해주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현재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약한 고리”로서 유럽 전역의 반자본주의 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격발장치”의 잠재력일 수 있음에 유의해야한다. 이 같은 점의 연장선에서 그리스 문제는 역시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의 계급구성 역시 주목해야하는데, 시리자 성원인 아리스티데스 발타스(Aristides Baltas)에 따르면 제 2세대 노동자가 많지 않는 까닭에 노동계급이 전통적 그리고 신생 소부르주아와 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러운 점은 많은 지식인들이 좌파로서 대학 내 무려 40%가 좌파이며 배우와 감독 그리고 음악가들의 40% 이상이 좌파라는 것이다(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감독의 “유랑극단”은 예술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그리스 극단의 난관 속 꿋꿋함을 그리고 있다). 1
<필통> : 그리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그리스 현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는 비슷해도 현재 처한 그리스와 한국의 상황은 다른 것 같다. 그리스의 현대사와 현재적 상황에 비추어 한국이 처한 현재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최형록> : 제 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의 역사는 한반도의 비극적 투쟁의 역사와 유사하다. “악의 축”인 미 제국주가 한반도의 남쪽을 대소 전진기지로 구축하는 동안 그리스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영국 제국주의가 반파쇼 저항투쟁을 주도한 사회주의 세력을 궤멸시킨다. 반파쇼세력 조직인 엘라스는 코뮤니스트 세력이 주도했는데 해방지역에서 임시 정부를 구성하며 여성 참정권을 시행한 점이 이채롭다. 대전이 종식되기 전 엘라스는 영국과 미국의 괴뢰정권인 자유주의자 파판드레우 정권에 비해서 그리스의 3/4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1946년 부정선거로 우익이 승리하자 그리스는 1947년~1949년 내전을 겪는다. 이미 내전 이전에 무장해제 당한 좌파는 수백 명이 체포-재판-처형당하고 18,000 명에 달하는 엘라스 전 대원들이 투옥 당한다. 2
주목할 점은 1944년 10월 모스크바 회담에서 스탈린이 처칠에게 영국의 그리스 지배와 소련의 루마니아 지배를 제안하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군은 그리스 내전에서 악명 높은 네이팜탄을 사용하며 심지어 교회와 학교도 공습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런 역사 속에서 그리스는 1974년에 민주화를 이룩하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오늘날 치프라스가 지도하는 시리자의 집권에 이르게 되었다.
시리자가 처한 역사적 맥락은 한국과 유사성이 있는 한편, 한국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분단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47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트루만의 냉전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유럽의 비중을 중시하여 그리스와 터키에서 대소 전진기지 구축을 하려한 맥락에서 미군정을 이해하면서 오늘날 사드배치를 접근해야한다. 이제 한국은 “대중 전진기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3
한국의 상황을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기 위기와 비교를 할 때 긴장하게 되는 이유는 당시 중국은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빌빌 거리던 국가였던 것에 비해서 21세기 중국은 중화주의적 자본주의 강대국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의 해킹 능력을 비롯해서 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역사상 전례 없는 초강대국의 잠재성, 사회주의의 탈을 쓴 강대국이 향후 한반도에 미칠 영향력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두텁고 두터운 먹장구름이 드리운다!
이 중대한 쟁점에 더해서 환태평양 경제협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통합 진보당이 강제해산당한 상황에서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 세력”은 어떤 정치노선을 선택해야 할까? 시리자 정도의 좌파 연합정당을 건설하고 그 당에 직접 가입하지 않은 세력이 이 당과 협력하는 동시에 “민중의 정치 세력화”가 의회주의 내에 한정되지 않도록 국회 내외의 세력이 단결 투쟁해야할 절박한 시점이 아닌가? (2015-03-29)
- Aristides Baltas, Leo Panitch, “The Rise of Syriza: An Interview with Aristides Baltas”, ≪Socialist Register 2013 : The Question of Strategy≫, 120-135 [본문으로]
- “Greece the Hidden War”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투브(https://youtu.be/-tXb5YkQeDM)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문으로]
- Bruce Cumings 엮음, ≪Child of Conflict : The Korean-American Relationship,1943-1953≫, 1983, 169~193에 실린 제임스 마트레이의 글 [본문으로]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내사를 받게 된 까닭은 (0) | 2015.04.21 |
---|---|
무상급식은 철학의 문제다... (0) | 2015.04.03 |
시리자 그리고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의 연합 (1) (0) | 2015.04.01 |
존엄한 분노 그리고 존엄한 “정치-문화적 복수” (0) | 2015.02.24 |
진보정당의 정책에 대한 오해 (0) | 201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