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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리자 그리고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의 연합 (1)

 

 

올해 1월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가 승리하여 1974년생 젊은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가 그리스의 새로운 수상이 되었다. 시리자의 집권은 첫째, 유럽에서 1936년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 이후  급진좌파의 집권은 80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 둘째, 2008년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공황과 그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시리자 집권의 핵심 원인이라는 점, 셋째, 11월 총선을 앞둔 스페인에서도 신생 좌파정당인 포데모스(Podemos) 집권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등 시리자의 집권이 유럽의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에서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자의 집권과 그것이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최형록(경남노동자민중행동 필진) 님이 글을 보내왔다. 읽는 이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필자의 양해를 얻어 서면 대담 형식으로 정리해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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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통> : 시리자의 집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시리자의 정책과 주장이 집권을 위해 계속 오른쪽으로 움직여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나누자면 필자의 글은 시리자의 집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최형록> :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시리자의 노선과 실천에서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이 극복해야할  “과거의 낙엽”은 무엇이며 “미래의 희망과 불길함”은 무엇인가?

시리자 정권의 재무장관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의 정책을 현대판 “유화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좌파의 판단[각주:1]이 시리자를 주목할 필요가 없는 충분한 이유일까? (宥和: 역사적으로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군국주의적 내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달래는 외교로 전쟁을 피하려한 노선을 가리킨다)
 
집권한지 이제 2개월 정도 밖에 안 된 시리자의 기본 노선은 무엇인지 그들이 공개적으로 천명한 노선을 얼마나 충실히 실현하려 노력하고 있는지 주목해야할 것이다. 구경꾼 혹은 호사가에 불과한 입장이 아니라면 특히 그들이 노선대로 하지 않을 경우 어떤 국내외적 장애물들이 있으며 어떤 조직적-의식-사상적 이유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지 심사숙고하는 자세가 “이성적이며 끈질긴” 자세일 것이다.

<필통> : 시리자는 최근에 만들어진 정당이 아니다. 13개 정파의 선거연합으로 시리자가 시작된 것은 2004년이지만, 그 모태가 된 좌파연합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는 1991년에 만들어졌으니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리스 정치도 수십 년 동안 극우를 대표하는 신민주당(ND)와 보수를 대표하는 PASOK이 서로 번갈아 집권해온 극우-보수의 양당정치 구도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1991년 이후 약 5%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해 오던 시리자가 2012년 5월과 6월 선거에서 16.8%와 26.9% 득표로 돌풍을 일으키더니, 2015년 1월 선거에서는 결국 집권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2012년 이전까지는 시리자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약 10%의 지지를 받아오던 그리스공산당(KKE)이 아니라 시리자가 대안세력이 된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최형록> : 우선 시리자의 성원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 모택동주의자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좌파가 연합한 조직이다. 그런 만큼 그리스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 고 풀란차스(Nicos Poulantzas)의 노선, “의회 투쟁과 의회 밖 투쟁을 절합(節合)”하는 노선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각주:2] 즉 발본적(Radical) 좌파에 만연한 “합법적 정부 구성 혐오증”(Governophobia)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시리자의 활동에서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이 주목할 부분은 “대중 연결성”(Mass Connectivity)라는 실천방식이다. 이 대중동원 방식은 유연한 방식으로 다양한 행동, 창의적 제안(Initiatives) 그리고 제반 운동들을 “통일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국가정책을 변화시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민중권력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각주:3] 따라서 2004년 창립한 이래 시리자의 국회의원들은 거의 모든 사회-정치적 대중동원에 적극 참여해왔으며 Kiosk(가판 매점)에서 판매되는 신문을 통해서 유권자들과 부단히 접촉해왔다는 것이다.

<필통> : 필자는 시리자 활동의 ‘대중 연결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이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의 통합진보당의 강제 해산에 이르기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리자의 활동 및 집권에 비추어 진단해 본다면?

<최형록> : 한국의 좌파는 정세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에 따른 투쟁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공통부분을 추구하되 이견은 실천으로 검증될 때까지 상호존중(求同存異)”하는 정치문화를 실천하고 있는가? 이제까지 대체로 이렇게 하지 않아왔기에 단합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마저 하지 않음으로써 각 정파의 실력은 물론 좌파 전체의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 경험”이 천박하며 자신을 전체 운동의 역동성 속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했기에 교조적이었던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강령의 구체성”을 사회주의 기획(Project)의 사회적 기반이 힘을 축적해나가는 방향에 맞추는 방식 역시 성찰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적지 않은 노동자 민중이 “대안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도 악질적인 재벌체제와 기회가 주어져도 파벌적 권력투쟁으로 민중투쟁의 땀과 눈물을 낭비하는 보수 야당에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이 물음에는 여러 수준의 답이 있다. 가장 원리적 차원의 답, “대안은 마르크스적 사회 구성체 지향”이다. 그 다음 보다 구체적 차원의 대안은 국회 내외의 다양한 민중투쟁을 통해서 “상충하는 경제정책들을 비롯한 모든 영역의 정책들 가운데서 민중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기 결정권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 세력화” 이다. (계속)

* 시리자 그리고 한국의 "마르크스적 민주주의자들"의 연합(2)  http://gnfeeltong.tistory.com/25  


 

  1. http://www.wsws.org/en/articles/2015/02/21/varo-f21.html [본문으로]
  2. 2015년 2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International Soscialism 주최 토론회 “Syriza and Socialist Strategy Debate”에서 시리자에 비판적인 알레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의 규정. 토론회 동영상은 유투브(https://youtu.be/FV2jCTBjlpQ)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3. 시리자 활동가 미할리스 스푸르달라키스(Michalis Spourdalakis)의 글, “Left Strategy in the Greek Cauldron: Explaining Syriza’s Success” ≪Socialist Register 2013 : The Question of Strategy≫, 98-11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