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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재벌의 사회화,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으로부터 시작하자

 백종성(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현장정치특별위원장)

“600만표를 잃어도 노동개혁 추진한다”는 김무성의 말이 노동개악에 대한 정부 여당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4·24, 7·15, 9·23 파업 그리고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는 아래로부터 고조되는 노동개악저지 총파업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정부 여당 입법시도의 성패와 무관하게, 향후 노동과 고용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 곧 ‘헬조선’에서의 생존은2016-2017년 권력재편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재벌과 재벌의 소유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이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시작했다. 일단, 한 재벌의 일화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재계 3위 재벌회장의 막장드라마
지난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SK 최태원 회장의 애초 구속사유는 회사돈 450억원의 횡령이었다. 선물(先物) 금융상품 투자의 손실을 메꾸는 과정에서 회사 돈을 빼돌린 것인데,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하고많은 재벌총수들의 비리사건 중에서도 뭇 사람들의 실소를 유발했던 것은, 이 과정에 김원홍이라는 ‘무속인’이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최태원은 주가를 정확히 맞추는 ‘점쟁이’로 유명한 김원홍을 ‘경영 멘토’로 극진히 대접했으며, 무려 6천억원의 돈을 맡겼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터졌다. 말하자면, ‘재계 3위의 재벌총수가 신통하다는 점쟁이에게 6천억원이라는 돈을 갖다 맡겼는데, 점쟁이는 그 돈을 모두 잃고 2천억을 빼돌려 자기 회사를 세우기까지 했고, 재벌총수는 손실을 메꾸기 위해 회사 돈에 손을 댄 것’이다. SK, 150조가 넘는 자산을 움직이는 재계 3위 기업집단의 총수가 청취하는 ‘경영 멘토링’의 본질은 결국 ‘점’이었다. 막장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 자본주의와 재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일종의 ‘역사성’까지 띠고 있다. 

재벌, 노골적인 약탈자
예로 든 최태원의 사건이건, 현대차 계열사 자금 1390여억원을 횡령한 정몽구의 사건이건, 재벌을 변호하는 이들은 그런 사건들이 돌출적인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돌출적인 사건이야말로, 드러나지 않던 문제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즉,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 자의적·제왕적으로 경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바로 소유권 개념이 아니냐고, 억울하면 재벌로 태어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들은 애초에 기업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다. 다음은2015년 기업집단별 지분보유 현황이다.

 

 

10대 재벌의 총수소유지분은 평균 0.87%, 총수 및 총수일가 지분을 다 합쳐도 평균 3.2%에 지나지 않는다. 도표에서 이들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분을 뜻하는 ‘내부지분’의 태반은 계열사의 순환출자를 통해 형성된 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들은 일가의 경영권 구축을 위해 사내유보금이라는 공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부를 사적으로 전용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 재벌총수 일가의 권력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권력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이들의 ‘경영능력’을 든다. 그러나 토지 매입에만 이미 10조5천5백억원(감정가의 3배)을 쏟아붓고, 개발비용까지 포함한 예상투입비용만 20조원이라는 정몽구 회장의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사업’이 극명하게 드러내듯, 이들이 경영성과에 근거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주지하듯 해당 뉴스가 전해진 이후 현대차의 주가는 반토막 났다. 이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시장’이 정몽구 회장의 경영을 그렇게 평가한다는 뜻이다. 연구개발도 생산설비도 아닌, 부동산에 20조원을 쏟아붓다니!
그럼에도,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정몽구의 2014년 연봉 215억7000만원은 국내기업 등기임원 연봉 중 최고액이었다. 이뿐인가? 2013년 기업 등기임원 연봉 중 최고액인 301억원을 받은 사람이 바로, 한 달을 제외하고 수감되어 있던 최태원이었다. 생사자체가 불투명한 이건희의 보수는 공개조차 되지 않는다. 등기임원이 될 경우 상법상 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자본시장법에 따라 보수를 공개해야 하는바, 이건희와 이재용, 정용진 등 많은 재벌 일족들은 미등기임원으로 남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제로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기업을 경영하고 있고, 실제로 경영하고 있지도 않은 기업에서 경영보수를 챙겨기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부에 대한 합법적 약탈이다.

중소기업의 육성도,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도 재벌의 대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을 중소기업들로 해체해야 하는가? 그러나 중소기업 주도의 경제가 더 공정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중소자본 역시 시장 속의 존재이며, 경쟁자를 패퇴시키지 않는 한 자본으로서 확대재생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대자본의 피해자인 중소·영세 자본은, 때로는 최저임금조차 지불하지 않는 악질적인 자본가로 역할한다. 항상 본사의 부당한 수탈에 시달리는 작은 편의점 사장은, 때로는 최저임금 지급조차 거부하는 악질적인 자본가로 행동하고는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소기업의 목적은 스스로 ‘재벌’이 되는 것에 있을 뿐이다.

한편, 재벌해체론은 이른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선호와 일정하게 맞물리는 것을 보인다. 많은 진보정당 역시 재벌해체와 중소기업 육성을 강령으로 내걸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대안적 경제체제의 구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진보정당들이 이를 대안으로 내걸지 않더라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그리고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과 함께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따르면, 사회적기업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기업이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 인증받은 자를 말한다” 즉, 사회적 기업은 법적 정의상 복지정책의 일환이다.

 

출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협동조합역시 마찬가지다. 「협동조합 기본법」에 의하면,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취지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을 주로 수행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별도로 도입하며, 협동조합 등의 설립·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자주·자립·자치적인 협동조합의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의 유행은 복지와 호혜성 또한 ‘상품’이 될 수 있으며 응당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제 경제활동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취지의 이야기는 흔하다.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대기업 총수가 공개강연에서는 호혜성의 가치를 설파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국가와 자본 역시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의 해체’를 보완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는 바로 그 산물이다. 이른바 ‘사회적 경제’는 약탈적 경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동거하며 한축에서 보완할 뿐이다. 즉, 복지와 고용에 대한 국가적 대안부재의 상황을 지속시키는데 일조한다.

재벌의 사회화,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으로부터 시작하자

 


범죄를 저지른 재벌이 휠체어를 타고 국가권력의 사면을 받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마치 ‘자연’과도 같다. 오죽하면 ‘휠체어’를 일컬어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고 했겠는가. 형제의 난으로 떠들썩했던 롯데그룹의 얽키고설킨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도, 자산 총액 300조원을 초과하는 삼성그룹의 승계를 증여세 16억원으로 마무리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도, 이 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풍경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편에 부가 쌓여갈수록 다른 한편에 빈곤이 쌓여가는, 이 기형적 경제구조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재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현 상황의 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관건은 그런 힘을 더욱 크게 형성해갈 대중적 정치운동에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의 방향은 재벌의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 즉, 재벌을 사회적 소유로 환수해야 한다. 우리는 그 시작을 사내유보금의 환수, 즉, 재벌이 축적한 이윤의 통제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표에서 드러나듯, 30대 재벌은 710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축적하고 있다.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의 추산에 의하면, 이중 157조만 환수해도 최저임금 1만원 실현, 청년실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의료기반 확충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현재는 850만명의 비정규직, 100만명의 청년실업과 6030원에 지나지 않는 최저임금, OECD 2위에 달하는 노동시간과 최하위의 복지비 지출비중, 하루 6명의 산재사망과 40명의 자살로 축약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권과 자본은 ‘노동개혁’으로 모두가 더 쉽게 해고되어야 하며, 더 평등하게 비정규직이 되자고 한다. 이제는 더 쥐어짤 여력이 없음에도 더 쥐어짜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정규직 노동자를 욕하며, 스스로를 더욱 쥐어짤 것인가?

현재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자본이고, 재벌이다. 재벌의 축적과정 자체가 부당한 것이었다면, 재벌은 사회적으로 환수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를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가? 물론 재벌의 사회화가 쉬운 과정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이 땅을 지배하게된 과정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에 분명하다. 애초 일본인 자본가가 남기고 도망한 재산(적산積産)을 헐값에 불하받는 과정, 즉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가를 국가권력주도로 창조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나온 이래, 온갖 탈세와 비리를 통해 몸뚱이를 불림으로써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된 그들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