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중심에 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영화, 암살

 

 

손제희 ( '아이들과 책 읽고 글 쓰는 사람' )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우면서 한편 현 정권의 뜨거운 감자인 친일문제를 이야기 소재로 잘 버무려 놓아서 영화에 없는 이야기까지 생각하게 된다. 출연 배우를 보면 전지현과 하정우는 ‘베를린’(감독 류승완, 2012)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정재, 전지현, 김해숙, 오달수는 이 영화를 만든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2012)에 함께 출연시켜 흥행에 성공했던 조합이다.

영화의 내용과 형식면에서 암살은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것을 활용하면서 살짝 엇갈리게 비틀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선택의 갈등이 적을 수밖에 없다. 대중의 심리, 흥행요소를 잘 반영한 이 영화는 현재 누적 관객 1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내 마음대로 상상해본 암살 영화 기획회의

‘소재는 독립운동이지만 너무 진지하게 가면 안 돼. 영화는 상품이야, 잘 팔리려면 누가 봐도 쉽게, 재미있게 가야 해. 여성 독립운동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거야. 새롭잖아. 이야기 소재가 무거우니까 주연급은 출연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한 배우여야 해. 그리고 내로라하는 조연들이 받쳐줘야겠지. 그래야 관객이 웃고 쉬어가며 지루하지 않게 볼 거 아냐. 독립운동에서 친일파를 빼놓을 수 없지? 이 역할은 기회주의자 같은 인상의 뻔한 인물이어서는 안 돼. 주인공에 버금 갈만큼 매력적이어서 관객의 호감을 살 수 있어야 해. 개봉은 광복절 전후로. 어때? 될 거 같지 않아?’

영화의 줄거리는 일제 강점기 1933년, 실존인물로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김원봉이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 암살 계획을 세우고 독립군 중에서 세 명의 무장투사를 선발한다. 지청천 부대의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전문가 황덕삼이다. 
임시정부의 경무국 대장인 염석진은 선발된 인물을 작전지로 데려오는 과정과 작전 전반에 깊이 개입하며 암살 정보를 일본에 넘긴다. 염석진은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에게 세 명의 암살실행자를 제거해달라고 청탁하지만 하와이 피스톨은 그들이 독립운동가임을 알고 돕게 된다. 해방 이후 염석진은 반민족행위특별법 법정에 서지만 오히려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고초를 겪었다고 항변하며 유유히 빠져 나와 호의호식한다. 국가는, 법정은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안옥윤은 ‘밀정이면 죽이라’를 임시정부 김구 선생이 준 임무에 따라 훗날 염석진을 처단한다. 안옥윤에게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있었고 아버지가 강인국이라는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긴 하다. 하지만 저격수 안옥윤과 친일파 아버지 덕에 호화로운 삶을 사는 미츠코로 1인 2역을 하는 전지현을 보는 재미가 있다.

 

 

관객의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여러 명의 주인공

속사포(조진웅)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실리를 좇으면서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을 던지는 인물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 독립운동가들의 전형이 아닐까. 영화의 주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속사포가 신흥무관학교 졸업 때 혈서로 썼다는 ‘낙엽이 지기 전 무기를 준비해서 압록강을 한 번 건너고 싶다’는 문장은 독립운동가 김경천의 실제 수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안옥윤(전지현). 우월한 신체비율에 예쁜 얼굴 배우로 전지현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있을까? 암살 대상자 두 사람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는 하와이 피스톨의 말에 안옥윤이 대답한다.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 일제에 맞서 싸웠던 모든 독립군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숙연해진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지주의 자식으로 한때 친일파 아버지를 아들들이 대신 죽여주는 모임 살부계(殺父契 : 역사에 있음)소속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영감이라 불리는 머슴(오달수)과 살인청부업자로 사는 인물이다.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은 아슬아슬 연애감정이 스친다. 외모에서 소위 그림이 되는 두 배우, 특히 하정우는 ‘작정하고 너무 멋있게 묘사되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친일 반역자인 염석진(이정재).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더 큰 권력 일본제국에 몸을 판 자의 최후 변명이다. 해방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해방 후 독립운동가로 신분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현실의 친일파와 닮았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배신자로 처형당한다. 영화는 영화다.

돈 내고 시간 들여 볼만 한 영화인가

영화 암살은 항일 독립운동사에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1900여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활동기록이 남아있는 여성 독립운동 유공자 수,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통계)가 있지만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만 있는 줄 안다는 우스개도 있다. 지금은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인터넷 포털에서 ‘암살’을 검색하면 관련 역사정보가 아주 많이 나온다. 특히 실존인물과 관련된 자료도 쉽게 눈에 띈다. 영화 한 편이 1000만 명 이상의 관객과 네티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갖게 만든 셈이다. 끝내 영화에 머물러 유관순 외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묻는 질문에 안옥윤이나 전지현을 외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화려한 이미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뭔가 새로운 생각이나 다짐 하나 얻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누가 봐도 재미있게 볼 만한 하다. 다만, 영화에서는 친일파가 그야말로 ‘영화답게’ 단죄되지만 반대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친일 청산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으로 오롯이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