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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불편해도 괜찮아

 

정봉화 (언론노동자)

‘발로 뛰는 기자가 되어라’는 말은 지금도 언론사 선배들이 후배에게 자주 하는 충고다. 취재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사건 또는 사고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 살아 있는 멘트나 생동감 있는 문장이 나오는 법이니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거나 집을 고를 때도 발품을 팔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헛걸음할 때도 있겠지만, 어차피 확률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연륜이 된다.
어느덧 기자생활 15년차인 나는 과연 발로 뛰는 기자였을까? 함축적 의미를 떠나 나는 본의 아니게 발로 뛰었다. 자동차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내가 차가 없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직업적 특성상 기동성이 중요하니 그런 반응이 자연스러울 법도 하다. 기동성이 떨어지니 게으를 수 있다는 오해는 약간 억울한 면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더 빨리,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며칠 전에는 창원에서 김해까지 취재 갈 일이 있었다. 시간 맞춰 일찍 출발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목적지까지 걸어서 2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반면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는 자동차를 얻어 탔는데 창원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최근 들어 자동차 구매 욕구가 확 솟구친 날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자동차를 굴리고 싶지 않다. 사실 운전면허증도 없다. 변명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차를 갖고 싶은 욕구가 없기 때문에 면허증을 굳이 딸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차를 사지 않더라도 조만간 운전면허증은 따볼 생각이다. 여행할 때 필요해서.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노동자 평균임금에 못 미치는 저임금노동자로서 자동차는 버거운 소모품이다. 경차를 굴리더라도 기름 값에 보험료, 차량 유지·보수비 등 적잖은 돈이 든다.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자동차에 쏟아 붓는 돈을 가급적 다른 품위유지에 쓰고 싶다. 자기만족의 기준이 각자 다르겠지만, 나에게 차는 오래 쓰면 닳아서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일 뿐이다.
내가 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유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주위에 필요 이상으로 자동차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차들을 보면 가끔 혐오감을 느낄 때도 있다. 대체 저 차들은 어디서 어디로 가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동차가 주요 소비재라는 걸 알면서도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일상화된 자동차 소음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집 앞쪽에 있는 8차로에서 밤낮없이 ‘쌩~’ 하는 소리가 여전히 귀에 거슬린다. 걸어다니면서도 자동차 매연을 신경 쓰고, 골목마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비켜 다녀야 할 때면 불쑥 부아가 치밀기도 있다. 주차 문제로 이웃끼리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음주운전만 해도 그렇다. 차가 없으면 불편할 거라는 무의식이 한순간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셈이다.
자동차가 편리한 이동수단이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포화상태인 것 같다. 승용차 선택요일제나 보행자 중심의 교통정책들이 점차 확산하고 있지만, 보다 강력한 자동차 억제 정책과 대중교통 우선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지구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대기오염 주범인 매연을 줄이려면 자동차를 줄여야 한다.
창원에 살면서 그나마 만족스러운 정책을 꼽으라면 창원버스정보시스템과 누비자 서비스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처지에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가지지 못한 자의 어설픈 항변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차가 없어서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걸어 다니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누리는 것도 많으니까.
오늘도 나는 걸어서 출근했다. 여름을 알리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아 하늘도 보고 가로수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