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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집단적 비핵평화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장규 ( '필통' 필진)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이슈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들자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위성 발사 및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일 것이다. 이 중 북한 핵실험 관련 사태는 주로 새누리당의 선전 내지 공격소재가 되고 있고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는 범민주당 계열의 선전 내지 공격소재가 되고 있지만, 이 둘은 생각보다 서로 대립되거나 분리된 이슈가 아니다.

 이 두 사안은 모두, G2라고까지 이야기되는 미·중간의 상호 협력/견제 체제 하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미국은 중국과 경제 및 국제관계적인 측면에서는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지만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있다. 경제적 실리나 중동 문제 등 국제질서의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이 동북아 및 아세안 역내에서의 주도국가로 부상하는 것은 최대한 억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북아 및 아세안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군사적인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핵심 동맹국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동맹국 상호간의 협력 관계 역시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의 태도 특히 한·일 관계였다. 한국은 오랜 미국의 동맹국이었지만, 정치적 민주화 시기의 남북관계 개선과 중국과의 대외교역 증가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한편으로, 식민지 경험과 일본의 우경화에서 비롯된 대일 경계심리가 겹쳐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가동하고 중국 주도의 AIIB에 참가하는 등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미국이 의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해서도 일본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에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다.

 따라서 다시 불거진 한·일 과거사 문제의 조속한 청산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했으며, 적절한 기회를 노려 독자적 재무장 등 우경화를 꾀하는 일본의 의도와 안보 이슈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한국정부의 의도 등이 이에 맞물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경제침체의 활로를 군수산업 등에서 찾고자 하는 한미일의 군사 관련 자본이나 국방 예산을 확대하려는 관료들의 이해 또한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결국 한·일 위안부 합의는 단순히 과거를 털고 가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에서의 재균형 즉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를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진행되었고 2월 7일 로켓/위성 발사가 이루어졌다. 한·일 위안부 합의 때만해도 한국정부의 합의에 비판적이었던 여론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으며 현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를 철저히 활용했다. 속으로는 대단히 환영했을 가능성도 크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으로 노리는 바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인데, 이를 위한 확실한 명분을 북한이 준 셈이기 때문이다. 즉 북핵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간의 긴밀한 협조 관계가 필요하므로 위안부 문제라는 과거사는 털고 가는 것이 맞다는 식의 논리가 가능해진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여론이 드센 국면을 안 그래도 전환해야 할 판인데, 마침 이와 본질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북핵 이슈가 터졌으니 누군가의 표현대로 남북 정권 간의 ‘여여공조(與與共助)’라도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남한의 현 정권을 도우려고 핵실험이나 로켓/위성 발사를 했을리는 없다. 북핵은 뚜렷한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북한의 ‘주적’인 미국에 대한 일종의 무력시위이며 평화협정을 통한 체제보장 요구가 북한의 기본적인 의도이기에, 남한의 정치상황 따위는 그들이 고려할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의도와 관계없이 북핵은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매우 강경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사드 배치 협의 및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카드는 사실 쉽게 꺼내기 어려운 카드였다. 사드는 그 특성상 미국 본토나 태평양 지역의 미군기지에 대한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체계이지 북한의 대남 공격에 대한 방어체계가 아니다. 성공 가능성도 불확실하거니와, 설사 성공한다 해도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사드에 요격되어 추락할 경우 낙진 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남한이 입을 판이다.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 남한의 피해를 자청하는 것이 사드 배치이기에, 그간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남한에는 사드가 배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스스로의 피해를 자청하면서까지 미국과 사드 배치를 협의한 이유는 결국 중국에 대한 압박용이라 할 수 있다. 사드의 레이더망은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의 상당 부분을 탐지할 수 있고 중국의 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기에, 사드 배치는 중국 입장에선 일종의 군사적 위협요소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중국은 사드 배치 협의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 북핵을 억제하기 위한 대북경제제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간의 3차에 걸친 핵실험에 따라 이미 대북경제제재가 시행되고 있었음에도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던 것은 중국이 실제로는 이에 거의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령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은 석탄 등 대중 광물무역이며 북한의 대외교역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동북아에서의 현상 유지를 바라고 북한에서 어떤 급격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을 압박해서 대북경제제재에 동참시키지 위한 압박용으로 사드 배치가 논의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후의 사태 전개는 실제로 이와 유사하게 진행되었다. 미국이 사드 배치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대신 중국이 강도높은 대북경제제재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의 주 수입원이었던 대중 광물무역을 중단하는 등 중국 입장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 또한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중국은 그간 대북경제제재에 동참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한국도 개성공단을 유지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남한도 북한과 일종의 교역을 하고 있으면서 왜 중국의 대북교역을 문제삼느냐는 논리다. 따라서 중국을 대북경제제재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개성공단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측의 이야기다. 또한 원래부터 개성공단에 대해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해왔던 미국 역시 개성공단 중단을 요구했다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이 북한에 미치는 경제적 압박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끼치는 경제적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정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드 배치든 개성공단 중단이든 둘 다 우리 입장에선 군사적/경제적 피해가 훨씬 크기에 일종의 지해행위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일부 야당 지지자들이 인터넷에서 떠들듯이, 정부가 멍청해서 이런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는 식의 선동은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다. 정부는 자해행위를 해서라도 중국을 끌어들여 실효성있는 대북제재를 실행하는 것이 북핵 억제를 위해서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현재까지로선 정부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중국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강도높은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으므로.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멍청해서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야당 지지자들의 자기만족에 그칠 뿐 제대로 된 비판도 아니다. 경제를 위해서 중국을 자극해서는 안 되므로 사드 배치는 곤란하고 개성공단 중단도 안 된다는 논리는 설사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북핵을 일정 정도 용인하는 결과를 낳는다. 일부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이야 북핵을 용인하는 것도 찬성할지는 모르나 반핵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좌파가 그런 입장을 취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현 정부나 새누리당이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응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대북 강경책 내지 대중 압박책을 통해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북핵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이 계속 대북경제제재를 지속한다는 보장이 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현상유지를 바라며, 북한 정권의 붕괴 등 급격한 상황변동으로 혹시라도 친미정권이자신과 국경을 맞닿는 사태를 가장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평화협정 등을 통한 체제보장이라는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압박이 심해진다고 해서 북핵을 포기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경제적 압박은 오히려 북한 인민들에게만 고통을 가중시킬 위험이 크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핵에 대한 대응이든 한·일 위안부 합의든 단기적으로는 한국이 주요 플레이어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이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라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에 결부되어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한미일이 지속적으로 한 팀으로 움직인다는 판단을 중국이 하게 될 경우 중국과의 각종 협력관계도 상당히 흔들릴 수 있다. 개성공단 역시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었던만큼, 개성공단의 영구중단은 한국이 대북관계에서 그간 가지고 있었던 어느 정도의 독자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한미일 동맹체제에 완전히 편입된다는 신호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제적 피해만이 아니라 군사적 악순환을 불러일으켜 동북아 평화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남한의 민중들이 입게 될 것이며, 극우적 정부와 군사 관련 자본의 이익에 봉사할 따름이다.

따라서 한국의 좌파는 단기적인 대응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북핵을 용인하는 것은 좌파가 취할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원래 미국의 의도인 한미일 군사동맹에 편입되어 외교적 자율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동북아의 긴장을 강화하는 것 역시 좌파가 용납할 수 있는 입장이 더더욱 아니다. 미일이든 북중이든 (북한과 중국은 사실은 상당히 다른 입장이지만), 상호적대를 이용해서 평화를 위협하고 인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잘못된 두 체제 중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좌파는 오직 인민의 이익에 봉사할 뿐이므로.

반핵평화라는 원칙에 입각한다면 최근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변국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보장되는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급속한 붕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한, 북핵을 포기시키려면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을 통한 체제보장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선핵포기만을 주장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선평화협정을 통해 핵보유를 용인해서도 안 된다. 선후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일괄타결이 필요하며 이를 주변국들이 집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다.

북한은 선평화협정을 주장하면서 평화협정은 북미간의 문제이므로 북미접촉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반도 비핵화는 어차피 북미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일괄타결 방식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필수적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오히려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도 일정하게 확보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설득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북핵을 용인할 수는 없는 이상, 대북제재 등 북한에 대한 압박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대북압박의 최종목표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과 상호협력을 통한 공동의 이익증대가 최종목표임을 진정성있게 북한에 납득시키는 일이며 실제로도 이것이 우리의 최종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