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기 (사회보험노조 전 위원장)
입법자가 정한 것을 집행자가 맘대로 해석하여 폐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온갖 협박과 궤변이 난무한다. 종편에서는 정규직 너희들 다 죽었다고 각오하라는 협박이 넘친다.
이들이 왜 이리 광분할까?
일단 법에 임금체계 개편을 강제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무리수를 둔다고 본다.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 정년 조항과는 달리 제19조의2 제1항에 따르면 임금체계 개편, 즉 임금피크제 등의 도입여부는 노사가 협의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규정과 유사한 조항이다. 근기법에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을 할 경우에는 종업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규정은 임금체계 개편은 사실상 노사 간 합의를 거치라는 것이다.
법 규정이 이러니 노동부 장관이 나서서 요상한 논리를 들고 나섰다.
대법 판례를 인용하면서 ‘노조의 권리남용’을 근거로, 이번 정년연장과 임금 피크제 맞교환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고 나선다. 따라서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 아니므로 사측이 일방적으로 변경하면 된다는 논리이다.
정부의 논리는 입법자가 정해놓은 법 규정의 취지를 집행부인 정부가 제 마음대로 해석하여 효력을 없애겠다는 참으로 뻔뻔한 주장이다.
동시에 정부는 노동자를 향한 여론전 공격을 해댄다. 그것도 참으로 한심한 논리들이다.
첫째, 임금피크제로 절약한 임금으로 청년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논리이다.
청년취업 여부는 정부가 책임질 수도 없고, 또 그런다고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은 얼토당토않은 논리이다. 현 재벌경제 체제에서 재벌들은 일자리가 나면 무조건 비정규직을 쓰려고 하지 정규직 채용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상태에서 임금을 낮춘다고 정규직을 늘린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절약한 임금만큼 사내유보나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갈 것이다.
일자리는 투자를 활성화해야 늘어나지 단순히 인건비 몇 푼 깎는다고 늘어나는 게 아니다. 투자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정부의 부패를 줄여야 늘어나지 인건비 절약만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다. 결국 정부의 임금 피크제 주장은 재벌의 현금 곳간만 채워주는 사업일 뿐이다.
둘째, 지금의 호봉제가 정규직 과보호의 수단이므로 전면적으로 성과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이다. 한마디로 취업 초임과 고령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커서 기업이 신규채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임금제도는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호봉제는 입사 초기에 저임금을 견뎌내야 나중에 제대로 임금을 받는 제도이다. 초임과 고령자간 임금의 격차가 클 수밖에 없는 임금제도이다. 우리나라 호봉제는 기업 입장에서 큰 이점이 있는 제도이다. 입사 초기에는 적은 월급을 받지만 나중에 돈이 많이 들어갈 때 어느 정도 임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히 높다. 처음부터 성과급제를 실시했다면 얻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런 충성심을 통해 밤낮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확보하여 우리나라 재벌들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2-30년 뼈 빠지게 근무하여 아이들 대학교육비를 대야할 시기에 이르자 임금피크제로 총액임금을 깎겠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미국처럼 입사 초기부터 성과급제로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면 개별 노동자가 자녀들 대학교육비를 자신의 의지로 저축을 하여 대비했을 것이다. 대신에 기업에 대한 충성심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호봉제에 대한 공격은 입사 초기에는 호봉제로 저임금 주고 부려먹고, 고령자가 되면 피크제로 깎겠다는 도둑놈 심뽀이다. 노동자를 평생 저임금으로 부려먹겠다는 논리이다.
전체적으로 정부의 공중전 논리는 재벌에게 퍼주기 논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지 왜 이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까?
한마디로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향수에서 보듯 보수정권은 경제를 살려야 국민적 정당성을 얻는다. 그런데 현 정부는 3년이 다 지나가도록 뭘 보여준 게 없다. 속 좁은 협량인사로 끊임없이 국민을 걱정되게 하고, 문제만 생기면 외국출장에 패션쑈나 하니,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현 정권의 무능을 탓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공무원 연금 문제만 해도 공무원의 수장인 대통령이 자신의 안을 갖고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노력은 않고, 여야 정당들이 합의한 일에 평론과 훈수만 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무능을 자인한 것이다.
그래서 대공장 정규직과 공공기관을 두들겨 패서 계급전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층의 관심을 얻어 자신의 레임덕을 늦추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레임덕이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무능한 대통령과 결별하려는 보수 정치인들이 많아질 것이다.
우리의 대처는 느긋하게 가되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첫째, 입법자가 만든 법률의 효력을 노동부 장관이나 청와대가 행정해석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리,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지 않는 무도한 행위임을 널리 알려내야 한다.
둘째, 임금 피크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내걸어야 한다.
혹시라도 정부가 임금 피크제 도입을 내걸고 먼저 타결하는 기관부터 성과급을 더 지급하겠다는 식으로 조합원 내부 분할을 시도할 수도 있으므로, 세대간 단결을 도모하는 교육사업을 정밀하게 펼쳐야 한다.
셋째, 내년 총선이 가까워지는 하반기에 임금 피크제는 현 보수정권의 재창출에 위협이 되는 사안이라고 보수 정치인들, 특히 새누리당을 설득하되, 원만한 타협이 안 될 경우 실질적 총파업을 펼쳐서라도 저지해야 한다. 노동계 전체의 연대투쟁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싸움은 정당성 측면에서, 노동자들의 생존이 달린 절박한 문제라 점에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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