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
어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을 먹던 중이었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던 분에게 이주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명함을 건넸습니다. 그때 명함을 유심히 보던 나이가 지긋하신 한국인 조합원분이 제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나요?”
순간, 전 어디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매우 원칙적인 답변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란 그림의 떡 인걸까?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고용허가제라는 새로운 외국인력제도를 시행을 앞둔 한국정부는 기존에 한국에 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모두 내쫓겠다는 원칙을 정하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살인단속과 강제추방을 몰아붙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 모였고 강제추방 저지와 노동비자 쟁취를 요구하는 380일간의 농성투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의 성과로 2005년 4월 24일에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TU, Migrants Trade Union)(이주노조)”가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하였습니다.
사실 이주노조는 창립과 동시에 한국정부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았습니다. 노동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조합원이 많다라는 이유로 노조 설립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주노조에서 법원에 낸 설립신고 반려 취소 소송에서도 1심재판부는 노동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 와중에 초대위원장을 비롯하여 노조 지도부들이 표적단속과 강제추방을 당하는 일이 거듭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미등록이주노동자라해도 노조 결성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노동부는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또 대법원에 항소하여 현재까지 무려 8년 동안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주노동조합이 합법화 판결이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년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고용허가제 철폐의 날, 세계이주노동자의 날등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알려내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 이맘때 큰 이슈가 되었던 포천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고발사건 역시 이주노조를 비롯한 단체들이 함께 노력해 해결한 사건이었습니다. 올해는 이주노조 창립 10주년입니다.
조만간 대법원에서 이주노조 합법화 승소 판결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온 사람들과 기쁨의 술잔을 나눌 그날까지, 이주노동조합과 함께 연대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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