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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의 경제적 의의

 

이장규 (노동당 경남도당 정책위원장)

민주노총은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을 올해 5580원에서 대폭 인상하여 1만원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 또한 이 요구에 동참하고 있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인상률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니, 너무 지나친 요구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최저임금을 1만원이나 주게 되면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경영계는 주장한다. 평소에는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를 신경쓰기는 커녕 온갖 불공정거래나 하청업체 및 프랜차이즈 점주 쥐어짜기로 일관하던 대기업들이 이 때만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를 챙기는 척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이 글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이 가지는 경제적 의의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무엇보다도 소비를 진작시켜 내수 경기를 활성화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고소득자의 경우 소득이 더 늘어난다고 이것이 소비로 연결되는 정도가 약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소득의 상승은 바로 소비로 연결된다. (이른바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 또한 이러한 소비의 증가는 자영업자의 매출 및 소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소득 내지 임금을 증가시킴으로써 소비를 확대하고 이에 따른 투자를 촉진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최근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소득주도 내지 임금주도 성장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라 오바마 미국대통령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기도 했다.

물론 소득주도 내지 임금주도 성장이론이 모든 국가에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업이 이윤을 선제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성장을 이끄는 이윤주도 성장도 일정 국가의 일정 시기에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이 선제적으로 생산적 투자에 나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들은 500조가 넘는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명분은 투자전망이 불확실하다는 것이지만, 원래 투자는 일정 정도의 불확실성을 가질 수밖에 없거니와 투자를 통해 역으로 경기가 활성화되고 수요가 창출되는 측면이 강함에도, 한국의 대기업들은 안전하면서 이윤율도 높은 투자처만을 찾고 있다. 한 마디로 이윤주도 성장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 역사적으로도 이윤주도 성장보다는 임금주도 성장이 오히려 더 타당성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경기가 좋았던 때는 90년대 초반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급격한 임금 상승과 내수의 대폭 증가가 경기를 이끌었던 것이다. 그 이전 즉 80년대 중반까지는 정부주도 성장이었으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임금주도 성장이었다. 즉 한국에선 이윤주도 성장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97년 IMF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대기업의 이윤은 대폭 늘어났지만, 경기가 좋아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반짝 좋아졌을 때조차 카드나 가계부채 증가를 통한 경기상승이었다. 카드대란이나 가계부채 증가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반짝 경기조차 자본의 투자가 아니라 가계의 소비 중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생산적 투자를 회피하고 부동산에나 관심을 쏟는 한국 대자본의 행태상 한국에서 자본 주도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에선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가계소득 즉 임금을 대폭 상승시킬 필요가 있다.

임금을 대폭 상승시켜야 한다고 할 때, 우선 순위가 어디인지도 명백하다.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OECD 최고 수준으로 미국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2013년 25.1%로 1위, 2014년 25.1%로 2위.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10%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또한 OECD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미국조차도 압도적으로 앞서는 저임금 노동자 비중을 기록하게 될 것인 바, 부끄러운 일 아닌가? 또한 경제적으로도 이미 말했듯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소비 증가와 경제 성장에 가장 효과적이다. 최저임금 1만원 쟁취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고리다.

경제 성장에의 기여 이외에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효과를 낳는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첫째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역시 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의 노동시간은 숱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낳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제1의 요인이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될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시간으로도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므로 장시간 노동의 유인이 줄어든다. 또한 이는 보수경제학계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로 흔히 거론하는 고용 감소를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은 야간노동 등 에너지과소비형 생산구조로 인한 에너지 낭비를 줄임으로써 탈핵사회로 가기 위한 생태적 전환의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둘째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여성정책으로서의 중요성도 가진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 또한 OECD 최고 수준인 바,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상당수는 여성들이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이들의 사회경제적 처지가 나아지는 바, 이는 여성 고용율을 높임으로써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킨다.

이제 흔히 이야기되는 최저임금 인상 반대 논리를 생각해보자. 대표적인 논리는 글머리에서 언급했듯이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이유로 드는 것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과연 임금수준 때문인가? 그들의 어려움은 일차적으로는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본사의 부당한 요구 등 각종 불공정거래 때문이다. 또한 좋은 일자리가 계속 축소됨에 따라 자영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짐으로써 경쟁이 격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공정거래와 경쟁의 격화라는 더 중요한 요인을 그대로 둔 채 마치 임금 상승이 핵심 요인인 양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오히려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원가상승분을 제대로 반영해줄 것을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에 강력히 요구하고 정부기관을 위시한 제반 사회적 기구들이 이의 관철을 지원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또한 최저임금 상승은 노동시장 내에 남아있을 유인을 높임으로써 자영업 비중을 줄여 경쟁의 격화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즉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에게 나쁠 것이 없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인건비 상승이 부담이 되는 측면이 확실히 있으므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에게 일정한 지원책이 강구될 필요는 있다. 이에 드는 재원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가령 저임금개선부담금 등을 대기업에 부과하는 방법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부담되어서라도 불공정거래 개선이나 고용 유지 등의 선택을 하게끔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말로 종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불공정거래 개선이나 고용 유지가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 되도록 제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한편 보수경제학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의 감소 즉 실업의 증가를 가져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경쟁시장이론의 수요 공급 모형에 따라 균형임금 이상의 최저임금은 고용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형에서는 균형임금이 노동자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바, 이는 편의상의 가정일 뿐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모형의 가정처럼 노동자가 자유롭게 모든 임금 관련 정보를 얻고 자유롭게 직장을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 내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 비해 모든 면에서 약자이며, 자신의 노동생산성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가정이야말로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임금 상승율은 노동생산성 상승율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애초에 임금이 노동생산성 이하로 책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임금과 노동생산성의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비현실적인 가정에 입각한 실업증가 논리는 실제로는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실제로도 많은 실증적인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시간당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효과 또한 고용 감소를 저지한다.

물론 이 또한 특정 분야 가령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아서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과 노동생산성이 거의 비슷한 산업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노동생산성이 낮은 분야는 어차피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실업은 실업급여와 전직훈련 및 노동력 재배치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스웨덴이 연대임금정책을 쓰면서 연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임금/저노동생산성 분야를 구조조정한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구조조정은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이 낮은 산업분야를 노동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재배치하는 체계적인 산업정책과 노동시장정책임에도 한국에선 반 노동정책을 구조조정으로 포장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은 오히려 꼭 필요하거니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이를 촉진하는 효과도 지닌다.

결론적으로, 거시경제 전체와 중장기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되기는커녕 매우 긍정적이다. 단기적인 부작용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통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노동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최저임금은 1만원으로 인상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