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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판도라를 닫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한다.

곽빛나 / 환경운동가 
 


판도라가 개봉한 지난해 12월 7일 어머니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개봉 전부터 탈핵 운동 진영에서는 판도라 공동체 상영부터 자체 홍보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혹자는 몇 년간 탈핵 운동한 효과보다 영화 한 편이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며, 내가 이러려고 탈핵운동하나, 자괴감이 든다고 표현했다. 나 역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발전소를 포기하는 세계의 기류를 역행하고 있는 한국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상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떴었다.

 

4년 전에 제작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반과 중반기까지의 몰입도는 굉장했다. 최근 계속적으로 경주에 발생하는 지진사태와 수명을 연장해서 사용하고 있는 오래된 핵발전소까지, 게다가 부산 기장에 위치한 고리원전의 반경 30km 이내에는 인구가 약 340만명이 살고 있어 사고 시 대피가 불가능한 지점까지,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에도 소름 돋는 진실을 담고 있어 가상이라고 하기에는 현실과 너무나도 맞다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격공했던 장면은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핵발전소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기차를 타기위해 몰려든 장면과 항공편을 사기위해 몰려드는 장면이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이미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시민들에게 알려진 시간은 꽤나 시간이 지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공포로 휩싸인 사람들의 발버둥, 영화 속에서도 막연히 멀리 도망치라고만 하는 모습, 실제로 사고가 일어난다면 우리 모두 사고지역에서 멀어지는 것 밖에 모른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방사능 재가 날아올 때는 오히려 차안이나 집안으로 피하는게 낫다는 정보도, 바람에 따라 방사능의 오염도가 달라지니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바람의 방향을 파악해 피해가 심한 지역에 위치한 주민들부터 대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 어느 병원에 방재복이나 요오드가 비치되어 있는지,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문자 또는 지정된 채널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계획이 우리에겐 없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서야 지진대비훈련을 시작한 것처럼 핵발전소가 터져야 핵발전소사고대비훈련을 시작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핵발전소가 터진 이후의 미래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망가질텐데... 우리는 방사능방재훈련도 제대로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으며,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계획도 없다. 뿐만 아니라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가 있어도 폐쇄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았다가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이 나서야 핵발전소를 해체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아직 해체하는 기술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다.

 

영화 중반기에서 후반기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감정 몰입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배우들의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배역들이 가지는 감정이 약간 핀트가 어긋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재혁(김남길)의 마지막 대사는 구구절절 길었지만 “내가 왜 죽어야 되는데, 나 죽기 싫어, 무서워, 엄마” 대사로 영화가 한국사회의 또 다른 민낯을 드러내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계급사회와 하청노동자들이 강제로 영웅이 되는 구조이다. 전기를 값싸게 이용하는 안전지대에 놓인 수도권 사람들과 핵발전소의 위험을 안고도 하청노동자의 삶으로 전전하는 지역민들, 사고를 책임져야하는 정부와 기술과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직원들은 사라지고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한 소방대원들과 어차피 죽게 될 피폭자들이 몸을 던지는 대서사시로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게 된다.

 

영화의 엔딩은 재혁의 희생으로 마치 사고가 끝난 것처럼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시점부터 우리사회는 재난의 시작점에 놓인 것이다. 방사능이 뒤덮이는 순간 밖에서 뛰어가는 사람들과 수습현장에 투입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어지는 수습과 방재에 노출된 사람들이 겪을 삶들에 대해서, 고리핵발전소 주변에 위치한 도시와 공장들의 중단으로 다가올 경제위기들 그리고 방사능으로 오염된 한반도를 재염하는 작업과 단순히 폭발직전의 상황만 모면한 여전히 위험한 핵발전소까지도 말이다.

 

판도라가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다.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했는지 아닌지,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래픽이 좋았는지, 스토리가 탄탄한지 아닌지를 넘어서는 이야기꺼리가 많은 영화라는 것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영화관을 벗어나면서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영화는 끝났지만 오히려 질문은 끊임없이 나오는 영화라는 것과 사람들로 하여금 논쟁거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딸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처럼 탈핵운동이 이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숙제라는 점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한반도에 핵발전소를 지으면서부터 열려버렸다. 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빠져나가지 전에 판도라의 상자를 닫아야 한다. 영웅 한명이 판도라를 닫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
 400만을 돌파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판도라를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그린 ‘판도라2’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