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역사회

“‘모든 사람’이란 말 속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아 (창원은 안녕들하십니까?)


작년 말, 4.16연대(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에서 추진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이후 각 단위별, 지역별로 풀뿌리 토론회를 기획해 선언문의 내용과 그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 확대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 창원 지역에서도 지난 1월 7일, 4.16 인권선언 풀뿌리 토론회 자리를 열었다.


다시, 4월의 기억을 더듬다


예닐곱 명씩 세 개 조로 나뉘어 토론을 시작했다. 진도 앞바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아무도 구조해내지 못한 그 날 그 밤을 다시금 떠올리며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끌어낸다.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이 가장 많이 등장한 듯 하다. 그 배 안에 내가 있었다 해도 살아날 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공포, 권력자들의 뻔뻔함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컸다. 영화 <나쁜나라>에서도 보여지듯이, 대형참사에 대한 책임은 모두 회피하고 외면하면서도, 자신이 쥔 권력과 위엄은 지키고 싶어 유가족들 앞에서 ‘예의’를 들먹이며 훈계를 해대는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답답함과 분노를 그려내다가 하나 둘 눈시울이 붉혀졌다.

세월호는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 새겨진, 꺼낼 때마다 아픈, 아물지 못하는 상처다.

 


찾아와야 할 우리의 권리


세월호 참사를 겪고 문제라고 생각된 지점,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나누었다. 각자 메모지에 한 장씩 써 붙여 보니 대체로 ‘안전하게 살 권리’, ‘자유롭게 모이고 표현할 권리’,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 등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고, 평등을 원하고,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하고, 모두가 같은 것은 불공평하다 하며, 사람은 사람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비용으로 여겨야 가장 효율적이라 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안전 시스템들을 두고 생산을 저해하는 비용이라 말한다. 그런 이들이 바로 자본을 쌓고 있는 이들, 이 사회의 권력을 쥔 이들이다. 그들이 사활을 걸고 지키려는 부와 권력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일뿐더러, 결코 부분적인 힘의 분배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권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찾아와야 한다. 빼앗아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동등한 힘으로 다른 힘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이 과제는 그 어떤 힘 좋은 대리인에게도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라는 말 속에 모든 사람이 있기를

 


내가 속한 1조에는 유독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이 많았다. 장애인들에게 이동수단은 다양하지도 않은데다, 멀고 가까운 정도를 떠나 아직도 우리 주변엔 그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까지 활발히 움직이며 존재의 존엄성을 외치는 그들이었다. 우리는 토론회 마지막 주제로 ‘4.16 인권선언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하나씩 꼽아보고 이유를 설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멋진 문장들을 골라내던 중, 한 조원은 이 선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하나가 가장 마음에 꽂힌다고 했다. 어떠한 권리를 설명하더라도 그 주어가 되어 나오는 말. ‘모든 사람’. 그러고 보니 꼭 인권과 정의를 논하는 글이 아니라도, 주변의 수많은 광고와 방송에서 참 쉽고 당연하게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현실에서 냉혹하게도 당연치 못한 말이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고,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다’한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어떤 사람은 높지 않은 턱 하나 앞에서 멈춰 설 수 밖에 없으며, 먹고 사는 돈도 모자란 어떤 사람은 삶을 즐길 여유가 없다.

고통과 억압 속에 사는 이들은 너무도 많다. 바로 나 자신이자 내 옆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 속 한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내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 내 옆 사람을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흐르는 역사 속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일은 이토록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