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만5천 볼트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의 투쟁이 12월 5일로 10주년을 맞는다. 그 10년 동안 두 분의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경찰청 집계로 총 383명이 입건되었으며 2012년 이후에 총 69명이 기소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200여 세대의 주민들은 한전의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면서 ‘밀양의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투쟁 10주년을 맞아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이하 ‘밀양대책위’)에서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백서>와 <밀양 투쟁 화보집>을 발간하고 ‘10주년 기념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밀양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태철 활동가를 만나 10주년을 맞는 밀양 송전탑 투쟁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필통>
<필통> : 밀양 송전탑 투쟁이 10주년이라고 하는데, 언제부터 투쟁이 시작된 것인가?
<밀양 대책위> : 2000년 1월 정부의 제5차 장기전력수급계획이 확정되면서 밀양 송전탑 문제가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2005년 5월 송전탑 공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가 나오고 같은 해 8월 한전이 주민설명회를 열 때까지 이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주민설명회에도 송전탑이 지나가는 밀양 5개 면의 인구 21,069명 가운데 0.6%인 126명만 참석했을 뿐이다. 어쨌든 송전탑 건설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5년 12월 5일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가 밀양 송전탑 투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2015년 12월 5일이 밀양 송전탑 투쟁이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필통> : 하지만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결하시기 전까지는 밀양 송전탑 투쟁이 거의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다.
<밀양 대책위> : 그렇다. 2012년 1월 16일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은 주민들이 외롭게 싸웠다. 2012년 1월 보라마을에 한전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고, 며칠 동안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우면서 주민들은 용역깡패의 욕설과 폭력에 시달렸다. 결국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셨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밀양 송전탑 투쟁에 대해 알게 되고 지역과 전국에서 대책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치우 어르신 분신 대책위였다가 이후 송전탑 반대 대책위로 바뀌었다.
(사진=오마이뉴스)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에도 꺾이지 않는 싸움
<필통> : 2014년 6월 11일 정부는 2000여 명의 경찰과 한전 용역을 투입해서 주민들의 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이라는 폭력을 휘둘렀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나?
<밀양 대책위> : 밀양시 5개 면을 지나면서 76만5천 볼트 송전탑이 69개 세워지는데, 그 중 청도면은 주민들이 일찍 합의를 해줘서 청도면에 17개 송전탑이 먼저 세워졌다. 나머지 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에 계획된 52개의 송전탑도 어르신들의 투쟁으로 지연되기는 했지만 하나씩 세워졌고, 2014년 6월 행정대집행 직전에는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부북면 위양마을 127번,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네 곳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경찰을 동원한 국가폭력으로 네 곳의 농성천막 마저 철거됐고 이 네 곳에도 송전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송전탑 공사가 끝나고 전선이 연결된 상태이고, 2014년 12월 27일부터는 신고리 1,2호기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시험운전을 하고 있다. 대책위에서는 시험운전에 맞서 115번 철탑 아래 농성천막을 짓고 지금도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필통> : 아직까지는 시험운전이지만 송전탑 공사가 끝나면서 주민들에게 어떤 변화나 피해가 있을 것 같다.
<밀양 대책위> : 지금은 설비용량의 10% 정도의 전기를 흘려보내는 시험운전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전자파가 10밀리가우스 정도 측정된다. 이후에 상업운전이 시작되면 전자파가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주민들의 불안이 심할 수밖에 없다. 어르신들 말씀이 예전에는 밭에서 일할 때 뱀을 자주 봤는데 올해는 뱀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송전탑이 환경에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 직접적으로는 밤 농사를 지으려면 항공방제가 필수인데 올해는 어찌어찌 해서 겨우 항공방제를 했는데 앞으로는 송전탑 때문에 항공방제를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항상 송전탑을 보며 살아야 한다. 10년 동안 싸워왔는데, 결국 송전탑을 하루 종일 보며 살아야 하는 주민들의 심리적인 상처가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필통> : 2014년 6월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대책위와 주민들의 투쟁과 활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밀양 대책위> : 행정대집행 이후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의 투쟁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34만5천 볼트 송전탑에 반대해 투쟁하고 있는 군산이나, 풍력단지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창녕 등 전국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 열심히 연대하러 다녔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직접 전국의 핵발전소와 송전탑 현장을 돌아보고 그 내용을 정리해 올해 5월에는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탈탈원정대> 북콘서트나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밀양아리랑>과 <즐거운 나의 집 101>의 상영회 등으로 전국을 다니고 있다. 오늘도 오후에는 충북 제천에서 <밀양아리랑> 상영회가 있어 어르신과 함께 다녀올 예정이다. 또한 지금도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저녁엔 영남루 계단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필통> :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산물 판매도 하고 있지 않나?
<밀양 대책위> : 정식 이름은 <미니팜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이다.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2주 1회 배송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동면 특산품인 감(반시)을 판매했고 그 밖에도 감말랭이, 건대추, 햅쌀, 팥, 검정콩, 쥐눈이콩, 오징어젓갈, 콩자반, 조청고추장, 감식초, 매실청 등도 판매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투쟁 ‘시즌2’, 다시 긴 여정을 준비한다
<필통> : 10주년을 맞아 어떤 행사를 준비하고 있나?
<밀양 대책위> : 크게 두 가지 행사를 준비해왔다. 하나는 10주년을 맞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백서>와 <밀양 투쟁 화보집>을 펴냈다. 그래서 12월 3일 서울에서 투쟁 백서와 화보집 발간 기자간담회와 북콘서트를 준비했다. 또 하나는 10주년이 되는 날인 12월 5일 기념문화제를 준비했다. 낮에 마을별 순례행진을 하고 저녁에 밀양역 광장에 모여 문화제를 할 계획이다. 그런데 12월 5일에 제2차 민중총궐기가 잡혀서 고민이 많다. 또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백남기 어르신이 지금 위중한 상황에서 잔치를 여는 것이 맞는지도 고민이 된다. 그래서 일단은 계획돼 있던 12월 3일과 5일 일정을 모두 보류해 놓고 있는데 곧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다.
<필통> : 10주년을 행사가 밀양 송전탑 투쟁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밀양 대책위> : 송전탑 공사는 끝났지만 어르신들은 투쟁을 계속해 왔다. 우리는 이를 밀양 송전탑 투쟁 ‘시즌2’라고 불러왔는데, 이번 10주년 행사는 밀양 송전탑 투쟁의 공식적인 분기점이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밀양대책위도 싸움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법인 설립 등을 통해 체제를 정비하고 안정적이고 새로운 공간도 마련하고자 한다.
혹자는 언제까지 투쟁할 거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밀양 송전탑 투쟁은 처음부터 마을 주민과 어르신들의 의견을 모아 모든 투쟁과 활동을 결정해 왔고, 그것이 밀양 송전탑 투쟁이 이렇게 오래 끈질기게 계속 될 수 있었던 힘이다. 이후 투쟁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의지와 열의가 매우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밀양 송전탑 투쟁을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싸움을 끝내는 시기는 어르신들이 결정한다. 어르신들 마음속에서 ‘이만하면 됐다’싶을 때 싸움은 마무리될 것인데,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진= 한겨레신문>
<필통> : 밀양 송전탑 투쟁과 관련해 노동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밀양 대책위> : 바라는 점보다는, 어르신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어르신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 공감하고 연대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2012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송전탑 고공농성이 그 시작이었는데 이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심히 함께 해왔고, 얼마 전 스타케미칼 투쟁에도 큰 관심을 갖고 함께했다. 옆에서 보면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어르신들만이 갖고 있는 깊은 공감과 포용력이 있다. 사실 어르신들도 송전탑 투쟁 이전에는 노동자들이 데모하는 걸 보면 배불러서 하는 짓이다 생각했는데, 송전탑 싸움을 시작한 이후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철탑에 오르고 시위 현장에서 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연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니 노동자들의 투쟁에 깊게 공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필통>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인데, 김태철 활동가는 어떻게 밀양대책위 활동을 하게 되었나?
<밀양 대책위> : 밀양대책위에는 지금은 사무국장을 포함해 3명의 상근 활동가가 일하고 있다. 내 경우에는 이전에는 목회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3-4학년부터 환경문제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농사를 짓고 살 생각을 하게 됐다.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하면서 <녹색평론>을 구독했는데 거기에 실린 이계삼 선생님(현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의 글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래서 2013년 처음 밀양에 오게 된 뒤 여러 번 밀양을 오가게 되었고 2013년 6월 군에서 전역한 뒤 밀양에서 2-3개월씩 지내다가 작년 8월부터 아예 밀양에 정착하면서 밀양대책위 상근활동을 하게 되었다. 밀양대책위 활동에 정신없이 지내왔는데, 내년부터는 애초에 계획했던 농사도 시작해 볼 생각이다.
<필통> :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맙다. 밀양 송전탑 투쟁 10주년 행사가 이후 ‘시즌2’ 싸움이 힘 있게 계속되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10주년 행사 일정이 확정되면 알려주기 바란다. 창원에 있는 노동자와 시민들도 마음을 모아 함께 하겠다. (정리 : 이김춘택)
* 밀양투쟁 다큐멘터리 <즐거운 나의 집 101> 홍보영상 https://youtu.be/M5hWFiyyKsI
*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https://www.facebook.com/my765kVOUT
http://my765kvout.tistory.com/
* 미니팜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 https://www.facebook.com/minifarm2014
http://cafe.daum.net/my765kv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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