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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재해 발생 책임을 노동자에게 묻겠다고?

 

김병훈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을 아는가? 노동자가 병들거나 다치면 치료와 재활을 도와주는 법이다. 이 법은 1963년 도입하고 1964년 최초 시행된 후 현재 1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강제로 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산재법의 가장 큰 특징은 사고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즉, ‘고의’로 사고를 내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일을 하다 다치면 산재로 인정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휴업급여나 장해급여 등 모든 보험급여에서 과실 여부를 따지 않고 보장을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무과실 책임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산재법의 ‘핵심적 가치’다. 이는 단순히 근로기준법의 하위 개념으로서 산재법이 아니라 사회보장법으로서의 재해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성립된 것이다.(물론 사업주의 위험 부담을 줄여 준다는 목적도 함께 있다.) 그래서 이 법의 목적 자체도 재해를 당한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 여당에서 ‘5대 노동 법안’이라며 발의하면서 산재법의 내용도 바꾸겠다고 하고 있다. 언론에는 출퇴근 재해를 인정에 관한 것이 중심적으로 보도되었지만 그것은 사실상 눈속임에 불과한 내용이다. 핵심적 안은 노동자의 중과실로 인한 재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즉, 재해 노동자가 산재로 받을 수 있는 보험급여 일부(장해․유족급여 등)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결국 재해 발생 원인에 대한 책임을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통해서 묻겠다는 것이다. 만약 여당의 의지대로 이 법률안이 관철 된다면 산재법의 핵심적 가치인  ‘무과실책임주의 원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은 중과실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교통사고처럼 과실에 따라 보험급여를 지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렇게 되었을 때는 산재 발생 원인에 대한 책임 여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망 사고의 경우는 경찰과 노동부 및 산업안전보건공단 직원에 의해 사고 원인 조사가 이루어지지만 그 외의 재해는 대부분 사업주들과 현장 관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결국 대부분의 재해 노동자는 원인 조사에 참여하지도 못한 채 사고 당시의 진술만을 할 뿐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부분의 재해 조사 결과는 산재 발생 원인을 노동자의 실수나 안전보호구 미착용으로 인해 발생 된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업주의 잘못은 사라지게 되고 노동자의 잘못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사업주가 노동자의 중과실로 인해 발생한 재해라고 주장할 때 중과실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재해 노동자가 입증을 하려고 하더라도 시간이 훨씬 지난 상태이고 현장 보존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입증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과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이냐의 문제도 남아 있다. 대통령령으로 중과실의 내용을 정의하고 그것이 근로복지공단 일선 지사의 지침으로 내려갔을 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지금까지는 업무상 질병에 대해서 재해 노동자들은 인정 여부에 대해서 근로복지공단과의 싸움을 진행했다면 이 법률이 통과되어 시행되면 업무상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중과실이라고 주장하는 근로복지공단과의 싸움을 진행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근로복지공단이 자신들의 지침에 따라 재해 노동자에게 보험급여 지급을 일부를 주지 않고 소송을 하라고 버틴다면 대부분의 재해 노동자들은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업무상 질병 불승인을 받은 후 심사 및 재심사 그리고 행정 소송을 진행하는 재해 노동자들은 10-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특히 위에서 지적했듯이 재해 조사가 사업주의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한 참 뒤에 재해 현장을 방문한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참조할 서류는 사업주가 제출한 것 밖에 때문에 재해 노동자는 더욱 큰 피해를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즉,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노동자에게 산재 발생 위험에 대해서 작업 회피권을 주고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점검 요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공익 제보를 받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것도 눈속임이다. 즉, 현재에도 산재 발생에 급박한 위험 작업에 대한 작업 중지권을 요청할 수 있지만 개별 노동자는 거의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제도란 것이다. 위와 같은 제도가 노동자에게 실질적 권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노동자에게 비례해서 사업주를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 즉, 노동자가 권리 행사를 이유로 해고나 징계를 포함한 불익을 당하면 그에 걸맛는 처벌이 사업주에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법보다 주먹이란 말이 있듯이 노동자가 권리를 행사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한 반면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너무나 미온적이고 형식적이라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 도입으로 인한 실효성가 노동자들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크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안전보건수칙을 지키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작업을 제한하는 권한을 관리자에게 부여하겠다는 것과 처벌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내용은 사업주에게 확실하게 유리한 제도다. 즉, 이렇게 되면 현장 관리자의 권한이 대폭 확대 되게 되고(정확히는 사업주의 권한이 확대 되는 것이다.) 회사의 말을 듣지 않는 노동자에게 작업 제한을 가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즉, 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노조 탄압용으로) 더구나 처벌의 범위를 넓히다 보니 사실상 노동자는 작업 제한과 동시에 과태료 처분으로 인해 이중적 처벌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누적된 노동자는 당연히 ‘일반해고’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종합계획’안에는 안전보건에 관한 사업주 책임을 명확히 묻는 것은 별로 없다. 고용 노동부는 사업주에 대한 책임을 확대한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다. 즉, 만약 노동자에게 재해 발생의 책임을 명확히 물으려고 한다면 사업주에게도(여기는 원청 사업주도 해당된다.)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살인법(산업재해특별법)을 만들어서 사업주에게 가중 처벌을 한다든지, 안전보건 위반 사업주에 대해서 영업 정지를 명령한다든지,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징벌적 손해 배상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냥 일반적인 내용만 열거 되어 있을 뿐이다.    

앞에서 보듯이 고용 노동부와 여당의 입장은 일치한다. 즉, 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명확히 묻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노동자에게 특히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는 더욱 위험하다. 따라서 노동자들 스스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들의 입장이 제도적으로 완성이 된다면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을 포함해 중소 영세 사업장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