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제 알 것입니다. 노동자의 힘을...”
마산분회장 서기환
마산센터분회는 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시작과 그 뜻을 같이 하며, 함께 투쟁해왔습니다.
1. 분회의 설립 및 상경투쟁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년 7월 14일 설립됐고, 저희 마산분회는 2014년 3월에 와서야 분회설립을 했습니다. 뒤늦은 설립이었습니다. 우리가 뒤늦게라도 분회를 설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2013년 12월부터 이어오던 노사협의회의 협의과정에서의 사측((주)마산서비스)의 지지부진한 태도와 2013년 가을 최종범 열사의 유지, 그리고 해운대 ? 이천 ? 아산 센터의 위장폐업의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동종업의 동료들이 삼성으로부터 받는 탄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저 최종범이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 최종범 열사의 유서 中
2014년 3월 노조설립과 동시에 교섭요구를 했고 8차례의 교섭 끝에 조정신청에 들어갔습니다. 조정중지가 떨어지고 쟁의권이 나오기 전까지 마산분회는 지역 센타의 사측이 아닌 삼성을 향한 규탄의 목적으로 아침, 저녁으로 출근투쟁 및 퇴근투쟁을 진행했습니다.
2014년 5월 조정중지가 내려지기 6일 전 5월 17일에 또 하나의 동료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염호석 열사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여러분 곁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쁨이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 염호석 열사의 유서 中
곧바로 서초동 상경투쟁이 지회차원으로 잡혔습니다. 조정중지가 떨어진 마산과 창원분회는 곧바로 서울 상경투쟁에 함께했습니다. 수 백명의 인원이 서초동 삼성 사옥 앞을 지키며 6주차까지 거듭되는 파업투쟁을 지속했습니다. 사측의 위임을 받은 경총과 금속노조의 기준단체협약이 6월 28일 체결되면서 기나긴 상경투쟁이 종료되었습니다. 2013년 7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조합 인정, 근로기준법 준수, 살인적인 건당 수수료 폐지,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를 요구하며 투쟁한 지, 1년이 지나서야 거둔 성과였습니다.
2. 후속 교섭 및 폐업
2014년 7월 기준 단협을 보충하는 후속교섭을 위해 마산분회는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내근 팀장들이 조합원만 대상으로 업무 중단을 위해 접수 도우미들에게 지시하여 콜 수임 중지 전산 작업을 한 것이 분회에 발각되었습니다. 사측에 항의 하였으나 관리업무상 이상 없다고 하며 후속교섭은 처음부터 마찰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그동안 착복한 금품으로 남지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연차수당 및 연장수당등과 투명하지 않은 임금 등으로 노동부 진정중인 와중에 보란 듯이 재력을 뽐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측의 후속교섭 해태와 팀장들의 콜 수임업무 중단 등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자 마산분회 독자적으로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사측은 협의를 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휴대폰 이동 서비스차량(B/S차량)을 센터 주차장으로 진입시키며 또 다시 노동조합의 파업을 무력화시키려 했습니다. 육탄저지와 조합원들의 밤샘 저지 투쟁으로 현재까지 구두로 협의되었던 내용들을 문서로 합의문을 조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건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11월 조인식을 앞두고 사장은 ‘연락을 받지 못했다’, ‘도장을 집에 두고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조인식을 취소하다가 결국에는 11월 노사 합의에 의해 12개 단체협약의 세부사항에 관해 8개 항목에 대해 협의를 (주)마산서비스와 마산센터분회가 협의하였고 조인식 후 실행할 것을 약속 하고 날인했습니다. 그러나 이 협의는 이미 폐업을 결심하고 난후 노동조합의 활동을 저해 하고 기만할 목적으로 선심 쓰듯 협의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1월 26일 조인식 협의를 진행한 바로 다음날인 27일 (주)마산서비스는 폐업공고를 하게 됩니다.
(주)마산서비스가 폐업이 확정되고 올뉴마산서비스라는 새로운 업체로 비조합원과 계약직을 채용하여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번 조합원들은 해고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위장폐업이었습니다.
3. 폐업 후 고용승계투쟁
이전에도 사장과 업체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마산의 경우만 해도 이전에도 4번 이상의 업체와 사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신규채용이나 경력과 근속이 승계되지 않았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진주센터와 함께 시행된 마산센터의 폐업은 명백히 노동조합을 말살하고자 하는 삼성의 매뉴얼에 의해 철저히 자행된 것이었습니다.
폐업통보가 나자마자 전국을 누비며 위장폐업을 자행하는 삼성그룹의 만행을 폭로하러 다녔습니다. 삼성의 신임 사장단 만찬이 벌어지는 신라호텔 앞에서 집회를 열고 만찬장에서 끌려나오기도 했고, 이재용 특공대를 꾸려 구미와 광주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노조 가입선전전을 진행하며 삼성을 압박했습니다.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노사협의회가 난항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가 노조가입 선전전을 했고, 11월에 새롭게 금속노조에 가입한 창원의 삼성테크윈 노동조합과 함께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1월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차원으로 임금교섭요구를 진행했고 사측은 2개월간 답이 없다가 마산분회 등의 강한 투쟁에 대한 압박으로 결국 3월에 임금교섭 본교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교섭에서 현안문제인 마산센터 위장폐업이 드디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3월 24일 드디어 약간의 세부 쟁점을 제외하고 업무복귀를 합의했습니다.
4.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위장폐업 이후 100여일의 투쟁기간 동안 사측은 시간 끌기를 통해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만남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노조 측을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폐업으로 지켜야 할 사업장도 없는 와중에 생각한 것은 우리 조직을 무너트리면 우리는 삼성그룹에 조직을 만들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삼성의 불법을 시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을 누비고 지역의 삼성그룹 산하 노동조합과 연대한 활동으로 인해 결국 삼성테크윈지회가 생겼으며, 이를 도화선으로 삼성토탈도 민주노총 화섬연맹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삼성에 효과적인 압박이 됐고 전략은 유효했습니다.
이번 싸움으로 삼성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 노조라는 큰 벽을 만나면서 노조와 노동자들의 힘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삼성은 이제 알 것입니다. 노동자의 힘을..
위장폐업의 만행을 알리고 또 다른 삼성 노조 건설을 독려하기 위해 마산분회 이재용특공대가 삼성전자 광주공장에 떴습니다.
삼성그룹 신임사장들의 신년만찬회에서 이재용 사장을 만나 위장폐업에 항의하기 위해 신라호텔에 입성했다. 이날 태어나서 가장 비싼 커피(한잔에 18000원)를 마셨다.
위장폐업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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