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장)
지난 2015년 1월 15일부터 지부장 일을 시작했으니, 4월 30일 현재 지부장 취임 110일쯤 돼 가는 것 같다. ‘하는 일 없이’ 바쁘다. ‘바쁜 게 게으른 것’인데, 하루하루가 참 빨리도 흘러가 버린다. 벌써 4월말일이구나. 휴~우. -,.-
출근해서 하루 계획 올리고 조금 지나면 점심시간이고 그러다 조합원들과 얘기 조금 나누고 돌아서면 하루가 금방이다. 지부장 맡기 전 신문홍보팀 있을 때보다 시간이 더 잘 가는 것 같다.
한 해 한두 번 가면 많이 가는 서울. 올해에만 2월과 3월에 각각 한 번씩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다. 5월에도 5·1세계노동절 대회 등 갈 일이 많을 것 같다.
지난 3월 12일(이날 이완구 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던 날. 가는 고속버스 텔레비전으로 봤다) 사측의 부당인사, 불성실 교섭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국언론노조 대전일보지부 사무실 개소식에도 다녀왔으며, 공정방송, 지역방송의 공적 책임 실현을 위해 전면파업 34일차(4월 20일 현재)를 맞는 제주방송지부에도 가보려고 했으나, 평일이었음에도 표를 구하지 못해 갈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직에서 부르면, 시간만 맞으면 어디든 가보려고 애는 썼던 것 같다. 연대의 기본은 자주 만나고, 어깨동무 하는 것 아니겠나. 우리는 다 연결돼 있다!
지부장 일을 해보니, 그냥 조합원으로 있을 때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생각도 많이 해야 되고,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합원들마다, 부서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의견을 모아내고,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맞춰나가고…. 노동조합 일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종종 ‘경남도민일보 같은 민주적인 조직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어허 참~. 노동자 있는 곳에 노동조합 있다. 이렇게 생각하자. 경남도민일보 노사관계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다. 회사 주요 의사결정은 노사동수로 꾸린 노사공동위원회에서 공동으로 결정하고 처리한다. 노조가 없다면,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노조가 없다면 대표이사나 경영진의 선의에 기대거나 구걸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노동자 있는 곳에 노동조합 있다, 이렇게 생각하자.
참고로 경남도민일보지부도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전임자가 있었던 건 아니다. 노조 전임자가 생긴 것도 불과 10년 전 일이다.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의 산물인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기본적으로 조합원 고충처리나 임단협 이런 것들은 당연히 잘 해야 한다. 여기에 경남도민일보 노사관계 특수성을 얹힌다면, 노동조합도 경남도민일보 생존 문제에서 분명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가 노동조합에 대놓고 돈을 벌어오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노동조합에서도 충분히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회사 생존 문제와 관련한 제안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합원들이 어떤 조합원들인데. 조합원들이 다양한 제안을 할 수 있고, 그 제안이 조직에 녹아들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독립 언론 종사자들은 늘 가난해야만 하는가. 돈 버는 것, 행복해지는 것 두려워하지 말자. 경영이 튼튼해져야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래야 경남도민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필통’ 독자들이여, 제발 경남도민일보 좀 많이 구독해 주시길. ^^/
올 초 조합원들에게 밝힌 지부 전체기조에서 우리 지부만 잘 살고자 운동하거나 활동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된 연대활동 못했던 것 같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마산센터분회와 일상적인 교류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허송세월’ 해버렸다. 반성한다. 그러고 보니 4·24 총파업도 힘 있게 조직하지 못했네. 부끄럽다.
아무튼, 조합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이 토론하고 더 시끄러운(?!) 그런 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장은 서되, 강요하지 않고, 부탁은 하지만 구걸하지 않는 지부장이 되겠다. 선배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지부장이 되고 싶다.
5월부턴 ‘노동조합 농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임금협상에 들어가는지라 요즘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그래도, 노동조합 일 재밌고, 할만하다. 누구 말마따나 ‘가문의 영광’인 것 같다.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앞으로 2년 동안은 노동조합만 바라보고 일할 생각이다. 지부장 취임 100일에 즈음해서 ‘주절주절’ 떠들어봤다. ‘그러려니’ 생각해주시길.
※군더더기: 경남도민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조직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경남도민일보 창간사’ 남긴다.
>>>>>>>>>>>>>>>>>>>>>>>>>>>>> 경남도민일보 창간사 <<<<<<<<<<<<<<<<<<<<<<<<<<<<<<
오늘 우리는 두렵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존 신문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지역언론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6,000여명의 각계각층 도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일간신문을 만들었다는 것은 경남 언론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거니와, 이를 위해 우리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쏟아 부었던 지난 6개월을 돌이켜 볼 때 벅찬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먼저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경남도민일보 창간을 위해 기꺼이 피와 살점을 떼어 준 6,000여 주주들의 높은 기대와, 예사롭지 않은 신문에 쏟아지는 전국적인 관심이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중압감 속에서도 우리는 경남도민일보의 창간이 경남의 역사는 물론 한국언론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일로 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선 경남도민일보는 '신문'의 주인과 '신문사'의 주인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도민의 신문'으로서 특정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흔들려 온 한국언론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언론은 민주화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피 흘려 쟁취한 언론자유를 소유자본이나 언론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던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부도덕한 권력과 자본의 횡포를 감시하고 비판하기보다 스스로 권력화 함으로써 참언론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의 근본이 언론의 잘못된 소유구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경남도민들은 전국에서도 유례가 드문, 전혀 새로운 신문의 소유구조를 창출했습니다.
예로부터 경남은 외세의 침탈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의병의 구국혼과 형평사운동으로 표출된 인간해방의 정신, 그리고 3.1독립운동과 3.15의거, 10.18항쟁으로 이어져온 자주·민주·정의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고장입니다.
개혁언론의 기치를 든 경남도민일보가 이 고장에서 창간하게 된 것도 이처럼 불의를 용납치 않는 경남인의 혼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찍이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언론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으로서 도민에게 드리는 21가지 약속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깨끗한 언론만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원론적인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뒤틀린 현실 속에서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첫마음으로 돌아가 스물 한 가지 약속을 되새기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만이 경남도민일보에 쏠린 300만 도민의 관심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며, 오늘의 이 두려움과 설레임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1999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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