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영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1908년 3월 8일 러트거스 광장, 1만 5천 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시민으로의 동등한 권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시 3월 8일 전후로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고 지난 3월 4일 경남에서도 ‘제29회 경남여성대회’가 열렸다.
상남분수광장에서 플래시몹을 하고 창원광장으로 거리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시끄럽다!”
진행자의 말이 잠깐 멈춘 사이, 시끄럽다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다’, 더이상 말하지 말라는 의미의 그 말. 그런 종류의 말은 너무 자주 들어왔다. 여성혐오 살인사건, 세월호 참사,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서도 꼭 누군가 던지는 그 말. 시끄럽다, 지겹다, 그만(말)하라.
그러나 우리는 더 크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노래 부르며 시청광장에 모였다.
다들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는 사회, 각자의 이야기를 광장에 모여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는 아래와 같은 목소리를 내놓았다.
세상을 바꾸는 사칙연산: 최저임금 올리고(+) 노동시간 줄이고(−) 돌봄은 나누고 (÷) 존중을 곱하자(×)
2016년에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자회의 슬로건을 공모했고 ‘세상을 바꾸는 사칙연산’이 선정되었다. 앞으로 여성노동자회는 ‘최저임금, 노동시간, 돌봄노동, 노동존중’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여성노동자회는 오랫동안 최저임금 현실화를 주장해 왔다. 그때도 적었지만 지금은 최저임금이 여성 최고임금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생겨났고 실제 여성노동자 6명 중 5명이 최저임금 영향권이라는 발표도 있다. 1 2
저임금은 장시간노동을 불러온다. 먹고 살만큼은 벌어야 하고, 시간당 임금은 적기 때문에 오래 일한다. 그나마 길게 일해서라도 벌 수 있는 직종은 한정적이어서 요즘같이 시간제 일자리만 늘리는 정책을 쓰면 시간제 일자리를 두 개 세 개 구해야할 판이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요즘, 최저임금은 인상되어야 한다.
돌봄노동은 단어 그대로 무언가(누군가)를 돌보는 것인데 좁게는 가사와 육아를 들 수 있겠다. 가사와 육아는 오랫동안 여성의 노동이었다. 남성은 임금노동을 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보니 임금노동을 한다고 해서 돌봄노동은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니더라. ‘일‧가정 양립’ 정책도 대부분 여성이 대상인 것 같은데 특히 시간제일자리가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라는 걸 보며 여성에게 일(임금노동)도 하고 가사‧육아(돌봄노동)도 하라는 ‘은밀한’ 메시지를 받는 것만 같았다.
돌봄노동은 누군가 보호하거나 수발을 드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먹고, 입고, 자고, 쉬고 등) 해야만 하는 노동(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챙기고, 살아가는 공간을 가꾸고, 주변(공간과 사람)을 돌보는 모든 행위. 그런데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되지 않는 노동이었고 그래서 누군가(주로 엄마)에게 미루어버렸다.
사람이 살기 위한 꼭 필요한 노동, 돌봄노동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또한 누군가에게 미루고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함께 나누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최저임금일까? 임금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니까 노동은 돈으로 대체될 성질의 것일까? 내가 마트에서 내는 돈은 물건 값일까, 마트노동자의 서비스 값일까?
종종 눈에 띄는 ‘갑질 논란’을 다루는 이슈. 그때마다 놀라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하나, 혀를 차지만 뒤돌아 톺아보면 나역시 ‘서비스’ 타령을 했던 적도 있고,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인 적도 있다.
얼마 전 놀이동산에 갔을 때 청년 노동자의 옷에 뱃지가 달려 있었다.
“저도 집에서는 귀한 자식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문구라 웃음이 터졌는데, 그래 모두 누군가의 귀한 가족이고 친구이다. 내가 돈을 내고 사는 것이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매순간 나의 편리가 누군가의 노동에 의한 것임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기계 뒤에 전화기 너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1908년 그날 거리에선 여성 노동자들은 굶주리지 않고 살 권리와 남성에게만 부여했던 참정권을 요구하며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생존권을 의미하고 장미는 인권을 의미한다.
빵과 장미는 여성에게만 필요한가? 오늘날 빵과 장미는 모두에게 주어졌는가? ‘사람답게’, ‘살’ 권리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고 있는가?
경남여성대회 당일 나에게 여성의 날을 축하한다며 그런데 축하한다고 인사하는 게 맞냐고 묻는 분이 있었고 나는 ‘투쟁’이라고 대답했다. 아직은 축하할 때가 아니며 누가 누구를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도 아니다.
빵과 장미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생존권과 인권은 모두가 평등하게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당연히 누리는 것을 누군가는 조금도 누리지 못한다. 하루는 24시간으로 공평하게 주어졌다지만 실제 하루를 보내는 방식은 평등하지 못하다. (주로 힘없고 소수인) 무엇은 소외되고 가려지고 소거(입막음)된다.
세계 여성의 날은 단지 여성이 남성보다 잘 살고 싶어서 기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여성이 남성만큼 살고 싶다고 기념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사람이기에 평등하게 존중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끝나지 않은 외침이고 투쟁의 날이다.
최저임금은 인권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라.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다. 노동시간을 줄이자.
돌봄노동에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 돌봄노동을 나누자. 노동은 평등하다. 노동을 존중하라.
- 2001년 여성노동자회는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함께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전국의 528명 여성노동자의 저임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당시 법정 최저임금 421,490원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4.7%에 달할뿐 만 아니라 너무 낮은 최저임금 때문에 저임금이 고착화된다는 것을 알려냄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불을 당겼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일하는 여성, 100호, 8쪽) [본문으로]
- 한국고용정보원에서 고용노동부의 2015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해 최저임금 이하~최저임금 10배까지의 구간에 남녀 노동자들이 얼마나 분포해 있는지 분석했고 그 결과 여성 6명 중 5명은 최저임금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경향신문, 여성노동자 6명 중 5명 ‘최저임금 영향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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