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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노란봉투법으로 노동자와 가족의 삶과 권리를 보호하자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https://twitter.com/sonjabgo47

 

2013년 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회사와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을 배상하라는 선고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걱정을 쏟아냈다. 당시만 해도 22명의 희생자를 냈던 쌍용차해고자와 가족들이 손배 판결로 인해 더 절망해서 목숨을 잃을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당시, 쌍용자동차 외에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손배대상자 노동자 2명이 200일 넘도록 철탑 위 고공농성을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손잡고는 손배가압류의 고통에 빠진 노동자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로 2014년 2월 출범했다. 노동계 뿐 아니라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 법조계 등 500여 명의 시민이 뜻을 모았다. 시민들은 국가와 기업이 국민에 행하는 손해배상소송 및 가압류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시기 시민모금 캠페인도 펼쳐졌다. 손배가압류 대상자 뿐 아니라 가족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상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간지 시사인 독자인 배춘환 씨가 4만7천원씩 10만명이 모아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자며 제안했다. 이것이 노란봉투캠페인으로 112일동안 4만7천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14억7천여만원을 모금했다.


 

노란봉투캠페인 모금액 가운데 모집비용을 제외하고, 90%는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긴급생계의료비지원으로 쓰이고, 10%는 법제도개선활동에 쓰였다. 이 기금을 종자로 법률 전문가의 논의를 거쳐 ‘노란봉투법’이 탄생했다.

 

노란봉투법은 손배가압류의 근거가 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안이다. 주요 내용은 노조법 제3조를 개정해, ▲국민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제한 ▲조합원 개인과 가정까지 파괴하는 손해배상가압류 제한 ▲노동조합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금액을 제한하는 것이다.

 

정권이 거듭될수록 손 쉬워진 손배가압류

 

노동자 손배가압류는 과거 노태우정권에서 정부지침으로 시작되었다. 최병렬 당시 노동부 장관은 “노동운동의 준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노조 쪽의 불법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 이후 사법부 판례에서 “불법 파업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며 쟁의행위를 두고 ‘불법’, ‘합법’을 판단해 손해배상을 하기 시작한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분신,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희생으로 손배가압류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심각성이 널리 알려졌으나, 제도적 개선까지 이뤄내진 못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창조컨설팅’으로 대변되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쟁의를 유도해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노조원 개개인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실시하는 등 손배가압류가 기획적 노조파괴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더니 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는 파업을 하지 않아도 손배청구를 하기 시작한다. 구호를 외쳤다고, 소식지를 나눠주었다고, 노조 조끼를 입고 회사로비에 모여 있었다고, 경영진 사진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열사가 발생한 지회에서 지회장의 울분이 기사화되었다고 회사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사법부는 이를 받아들여 재판을 시작했다. 그리고 청구 금액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해 전월세 보증금까지 가압류해갔다. 그렇게 현재 누적된 손배가압류가 민주노총 사업장만 해도 청구금액이 1,600여억원, 가압류가 175억원에 달한다.


(사진=노컷뉴스)

노동권을 넘어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는 손배가압류

 

사실상 쟁의의 합법-불법 여부를 떠나 물리적 손해 외에 명예, 모욕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노조와 조합원에게 책임을 물으며, 거액의 손배청구와 재산을 가압류한다. 하지만 1심 선고가 나기까지 1년에서 길게는 6년 이상 걸리는 손배소의 특성상,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 시간을 노조와 조합원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고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손배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조합 활동에 따른 손배가압류로 인해 가족까지 고통 받는 것이다. 심지어 생계비, 임대보증금까지 가압류하기 때문에 가족 전체의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실제 개인의 노동권은 노동조합을 통해 행사되지만 노동조합의 활동은 엄연히 단체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개별 조합원에게 노조 활동 결과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합원 개인 뿐 아니라 가족, 신원보증인, 노조활동에 연대한 시민에까지 책임을 묻기도 한다.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경우, 손해배상가압류는 또 다른 노동탄압 수단이 된다. 대부분의 손배가압류 사업장은 손배대상이 된 개인에게 ▲노조탈퇴, ▲퇴사, ▲소송포기(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정리해고 소송 등) 등을 종용한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금액에 대한 연대책임을 묻고 있는 손배소의 특성 상 개인의 ‘권리 포기’는 곧 동료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때문에 손배가압류는 개인에게 심각한 인간성 박탈을 경험하게 한다.

 

손배가압류는 심지어 노조와 조합원의 항소할 권리마저 앗아간다. 건당 수억에서 수백억에 달하는 손배청구금액은 그에 비례해 늘어나는 법률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인 조합원에게는 항소마저 포기하도록 한다.

 

이처럼 헌법이 보장한 쟁의행위를 사유로 민사상 책임을 묻는 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노조에 대한 손배청구는 기업이미지만 악화시켜 자제하고 있다. 영국은 노동법에 각 조합의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하고 있으며, 사실상 손배소가 결국 갈등만 부추긴다는 이유로 노조에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는다.

 


20대 국회 입법 가능할까?

 

시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노란봉투법’은 단 한명의 국민도 노동3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일이 없게 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권리 찾기운동이다. 그러나 10년을 넘게 노조파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은 손배가압류제도를 없애기란 만만치 않다. 노란봉투법은 2015년 19대 국회에 발의했으나(국회의원 은수미 대표발의), 새누리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이렇게 국회가 주춤하는 사이 손배가압류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의 현실은 심각해졌을 뿐이다.

 

법개정을 바라는 많은 시민들과 손배소 당사자의 염원으로 지난 1월 18일 다시 20대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국회의원 강병원 대표발의). 적폐청산과 개혁입법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지금, 노동자 손배가압류 제도 금지하자는 요구 역시 개혁입법 과제의 하나로 요구되고 있다. 노동과 시민이 하나되어 크게 목소리 높인다면 20대 국회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20대 국회에 반드시 통과시켜달라는 시민 입법청원운동도 활발히 진행 되고 있다

 

* 노란봉투법 입법청원 하기 : www.bit.ly/노란봉투법_입법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