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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말해주는 것들

(사진=경남도민일보)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말해주는 것들

- 하청중심 생산구조, 위험의 외주화 바꿔내고 박대영 사장 구속해야 -

  

어제, 전국 곳곳에서 제127주년 세계노동절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오후 2시50분,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충돌사고로 지브크레인(jib carne) 붐대가 무너지면서 휴식 중이던 노동자들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명이 목숨을 잃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가 나자 언론과 정치권 모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노동절 휴일에 발생한 사고이고, 사상자들이 전원 하청노동자라는 점이 그 관심을 더 키웠다.

 

이번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뼈아프게 확인시켜 준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노동절 휴일이 아니었다면?

 

언론과 정치권이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사고 당일이 노동절 휴일이었고, 사상자 전원이 하청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법적 휴일인 노동절에 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쉬었는데 하청노동자들은 쉬지도 못하고 나와서 일을 하다가 목숨까지 잃는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는 '절반의 사실'이다. 만약 노동절 휴일이 아닌 평일에 사고가 발생했다면 과연 달랐을까? 아마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소 생산직, 특히 사고가 난 해양플랜트 관련 부서의 생산직은 90% 이상이 하청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열에 아홉'이 하청노동자이므로 사망사고가 나도 '열에 아홉'이 하청노동자가 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라고 하여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해왔다.


실제로 안전보건공단이 지난 4월 11일 발표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 만인율은 0.39로 정규직 사망사고 만인율 0.05보다 8배 가까이 높다.

 

그러므로 이번 삼상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사망하고 부상당한 사람이 모두 하청노동자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하청노동자가 노동절 휴일에도 근무를 한 사실 보다 조선소 해양플랜트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열에 아홉은 하청노동자인 '하청중심 생산체제'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하청중심 생산체제를 변화시키지 않는한 위험의 외주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표=헤럴드경제)


'포괄임금제'라는 올가미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은 대부분 쉬는 노동절 휴일에도 왜 나와서 일을 해야 했을까?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힘없는 하청노동자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제도적으로 하청노동자의 휴일노동을 강제하는 것은 '일당제'나 '직시급제'라고 불리는 '포괄임금제'의 올가미다.

 

포괄임금제는 최근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후보들 간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선에서는 주로 사무직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무료 노동의 원인으로 이야기되었는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도 포괄임금제는 커다란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평일 결근 없이 일을 하면 일요일을 유급으로 쉴 수 있다. 또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이상 초과노동을 하거나 휴일노동, 야간노동을 하면 각각 50% 가산임금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물량팀 노동자들은 '일당제'나 '직시급제'와 같은 포괄임금제로 되어 있어 주휴일도, 가산수당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일한 날 수와 시간에 일당이나 직시급을 곱한 만큼만 임금을 받는다. 일당이나 직시급에 주휴수당, 초과노동수당, 휴일노동수당, 야간노동수당이 다 포함되어 있는 포괄임금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절이나 공휴일 같은 휴일에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휴무를 해도 임금이 나오고 일을 하면 가산임금을 받지만, 일당제나 직시급제 하청노동자는 일을 하면 평소와 같은 임금을 받고 일을 안 하면 아무런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즉 일당제, 직시급제 노동자에게는 노동절 휴일이 아무 의미가 없고, 공휴일이라고 일을 안 하면 오히려 그만큼 임금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노동절 휴일에 일을 해서 불만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노동절 휴일인데도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워 했을지 모른다. 노동절 휴일이라고 일을 쉬었으면 하루치 일당만큼 월급이 줄어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 마음 놓고 쉴 수 있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들이 저마다 공약한 포괄임금제 폐지 약속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만약 휴식시간이 아니었다면?

 

언론에서는 저마다 이번 사고를 보도하며 사고 시간이 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이었고 노동자들이 휴게공간에 모여 있어서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 같은 보도를 보여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식시간이어서 노동자들이 모여 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휴식시간에 노동자들이 쉬고 있는데도 크레인 작업은 계속 이루어진 것이 진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자, 삼성중공업 협력사 대표는 사고 당시가 오후 2시50분으로 정해진 휴식시간인 오후 3시가 아니었는데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10 - 20분 먼저 화장실 근처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을 제대로 안 지켰기 때문에 대형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인가?

 

만약 오후 2시50분에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오후 3시에 크레인은 과연 작업을 멈추었을까? 삼성중공업은 크레인 운영규정이나 작업지침에 작업자들의 휴식시간인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크레인 운영을 정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제출해야 한다. 또한 규정이 있다면 그것이 평소에 제대로 지켜졌는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현장의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작업자들의 휴식시간과 무관하게 크레인 작업은 계속해 왔다고 하기 때문이다.


(출처 = 삼성중공업)

 

골리앗크레인은 정규직이, 지브크레인은 하청노동자가

 

구로역 스크린 도어 사고 등 최근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최소한 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사고원인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역시 안전과 직결된 업무의 외주화, 비정규직화가 중요한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고가 난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공사현장에는 골리앗크레인과 지브크레인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의 사고 설명도 그렇고, 직접 사고현장에 가서 보니 작업의 특성상 골리앗크레인과 지브크레인의 작업공간이 서로 겹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즉 두 크레인은 언제라도 작업 중 충돌 가능성이 있었고, 그 만큼 두 크레인을 운전하는 작업자 사이에 그리고 밖에서 크레인 운전자와 신호를 주고받는 두 크레인의 신호수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골리앗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는 삼성중공업 정규직노동자인 반면 지브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는 하청노동자였다. 두 크레인이 정규직노동자와 하청노동자로 나뉘어 있어서 의사소통이 안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두 크레인 작업자가 모두 정규직노동자였다면 작업을 위한 의사소통과 조정이 더 원활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되었고 삼성중공업 책임자는 크레인 장비를 담당하는 노동자만큼은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하청에 재하청, 다단계 착취구조

 

어디 크레인 작업자뿐일까? 이번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6명의 노동자는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니다. 6명의 노동자가 5개 하청업체에 각각 소속되어 있다. 부상당한 노동자를 포함한 31명의 노동자의 경우 8개 하청업체에 각각 소속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현실이다. 한 작업공간에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의 소속이 서로 다르다. 그들은 소속이 다르므로 서로 아무런 상관없이 한 공간에서 일을 한다. 이처럼 생산관리와 안전관리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 현장에 각기 다른 수십 개 업체 노동자들이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작업 기한에 쫓겨 가면서, 그래서 안전은 쳐다볼 겨를도 없이. 이와 같은 현실을 한 물량팀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조선소 현장을 가보면, 블록이 이제 막 세워져 취부를 하고 있는데 취부사 똥구녕을 따라 가면서 용접사가 용접을 하고, 또 용접사 똥구녕을 따라오면서 사상공이 사상을 해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취부, 용접, 사상 모두 물량팀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물량을 빨리 빨리 쳐내야 물량팀장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8개 업체 31명의 노동자 중 같은 하청업체로 분류된 노동자들도 실제로는 각각 소속이 다를 수 있다. 조선소 고용구조가 하청에 재하청, 다단계 착취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출입증에는 같은 하청업체 이름이 적혀 있더라도 실제 자신이 속한 물량팀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또한 물량팀 보다도 못한 인력업체가 알바천국 같은 곳에 낸 구인광고를 보고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의 불법 파견고용이 조선소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어느 인력업체 소속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법률적 사용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신이 속한 인력업체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

 

보상과 처벌 원청 삼성중공업이 책임져야

 

이렇게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한 노동자 31명이 각기 다른 하청업체 소속이고, 또 그 하청업체 안에서도 다른 물량팀 소속이거나 불법 인력업체 소속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고를 당한 노동자에 대한 보상과 책임을 져야 할 사용자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 법적으로 삼성중공업은 보상 책임이 없을 수 있다. 사고를 당한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는 삼성중공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본공'이 아니라 물량팀 노동자이거나 불법 인력업체 노동자라면? 하청업체 대표 또한 그 노동자에 대한 보상 책임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영세한 물량팀장이나 사무실에 책상하나 전화기 하나 놓고 임금따먹기를 하는 불법 인력업체가 제대로 된 보상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자본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하청업체마저 물량팀이나 불법 인력업체 등 다단계 고용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용자가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사고의 경우 하청업체, 물량팀, 불법 인력업체 등 각기 다른 사용자가 각각의 노동자와 보상협의를 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사고를 당한 노동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는 삼성중공업이다. 특히 이번 사고의 경우 전체적인 생산을 관리하고 두 개의 크레인의 작업을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삼성중공업이 사고의 명확한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삼성중공업이 사고를 당한 노동자에 대한 보상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또 한 번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하라

 

사고에 대한 책임자 처벌 역시 마찬가지다. 무려 6명이나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다. 그리고 가장 큰 책임은 삼성중공업에 있다. 과연 경찰과 노동부와 검찰은 누구에게 어떠한 처벌을 할 것인가?

 

노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른바 '기업살인법'이라고 불리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는 현실에서, 그 책임이 있는 사용자를, 특히 원청 사용자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고는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에 언론과 정치권 등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이 잠시 동안의 관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사고에 관심을 표명한 대통령 후보들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자신의 공약으로 발표해야 한다. 그것이 6명 하청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법 제정 이전이라도 이번 사건의 책임자를 엄벌하는 것이다. 경찰과 노동부와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고 조사해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

 

덧붙임 : 작업중지명령, 하청노동자에게는 '무급 데마찌'

 

5월 1일 사고 이후 노동부는 삼성중공업 현장 전체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당연한 조치다. 그런데 권민호 거제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고용노동부에 "지금 조선산업이 매우 어려워서 전 작업구간을 중단시키면 안 된다. 전 작업구간을 중단시키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며 사고현장 이외의 현장에 대한 작업중지명령을 풀어줄 것을 요구해 빈축을 샀다. 더구나 그 같은 작업중지명령에 대해 "기관(고용노동부)의 이기심으로 인해서 그랬는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황당한 말을 하기도 했다.

 

권민호 시장이 걱정해야 될 일이 있다면 삼성중공업 회사의 피해가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의 피해다. 삼성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5월 10일까지 휴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휴무를 하지 않더라도 작업중지명령으로 일을 못하는 경우 정규직노동자는 법이 정한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은 다르다. 작업중지 명령으로 일을 못하게 되면 휴업수당은 언감생심, 고스란히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른바 '무급 데마찌'가 관행이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의 '무급 데마찌' 문제 역시 그 책임은 원청인 삼성중공업에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에는 휴업수당을 적용해주지 않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무급 데마찌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하청노동자 산재사고에 안타까워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작업중지명령으로 며칠 동안 임금도 받지 못하게 될 하청노동자들의 현실까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까.(끝)


# 이 글은 경남노동자민중행동 '필통', 거제뉴스광장, 오마이뉴스에 함께 기고했습니다.


(페이스북 거제도모임에 올라온 작업중지명령 관련 하청노동자들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