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겨레)
하 승 우 (청년활동가)
‘탄핵정국’ 이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지도 약 한 달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비정규직 문제 반드시 해결’을 선언하면서 ‘일자리 문제’에도 많은 관심과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일자리 문제’, 즉 노동 문제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자 적폐 청산이 시급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때까지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을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1.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3일 만에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화를 약속했습니다. 인천공항은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여 말이 많았던 곳입니다. 직원의 약 86%가 비정규직인데 이는 (2017년 3월 말 기준으로) 공기업 중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1] 비정규직의 임금 (연봉 2500만~3000만 원) 또한, 정규직 신입 사원의 임금 (연봉 4200만 원)을 기준으로 해도 약 60%~70%밖에 되지 않습니다.[2] 이러한 상황에서 정규직 전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신문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진짜 정규직화가 이뤄진다면 좋은 일입니다. 다른 부문의 정규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안심하고 좋아하기에는 이릅니다. 이 ‘정규직화’가 진짜 정규직이 아닌, 직접고용 ‘중규직’이나 자회사 ‘정규직’으로의 전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정규직화를 말하면서 “자회사를 세워 채용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3] 즉 아직 어떤 ‘정규직화’인지 확정되지 않았고 공항공사 측도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규직화 방식 중 하나로 자회사 채용을 말하는 것은, 공항공사 측이 자회사 채용도 ‘정규직화’로 간주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직접고용 ‘중규직’과 자회사 고용의 경우 고용 안정은 상대적으로 보장할 지 모르지만 임금 등 처우 개선은 없는, ‘무늬만 정규직, 가짜 정규직’인 사실상 비정규직입니다. 회사 명찰만 바꿔 달 뿐입니다. 직접고용 ‘중규직’화는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규직화’ 기만과 관리비 등 회사 측의 비용 절감 목적이 큽니다. 정일영 인천공항 사장이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화 하면 관리비를 절약할 수 있다’[4], ‘(직접고용 시) 10% 세이브(아낄) 수 있다’[5]고 말한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자회사 고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왜 그냥 고용하지 않고 굳이 자회사를 따로 만들어 고용하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이러한 방식을 ‘정규직화’라고 한다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사실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도 많이 했습니다. 2013년 ~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7만 4천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규직’은 임금이 비정규직과 같은 ‘중규직’(무기계약직)이었습니다.[6]
문재인 대통령의 인천공항 방문 이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그날 ‘비정규직 급여를 정규직 수준으로 올리는 것보다 신분안정(고용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서울시와 국회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용역 업체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절감한 사례도 소개했다고 합니다.[7] (앞서 언급한 정일영 인천공항 사장의 ‘비용 절감’ 발언 부분 참고) 대통령이 이러한 발언들이 ‘무늬만 정규직화’ – 결국 비정규직 고착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진=머니투데이)
2. 비정규직 고용부담금
일자리위원회 보고서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용역보고서를 준용해 '비정규직 고용부담금'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합니다.[8] 구체적으로는, 이 보고서를 준용한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 고용율이 11%를 넘는 30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최소 7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780만 원에 달하는 부담금을 부과’합니다. 즉 최소 7000만 원에서 시작하여 비정규직 고용율이 100%인 경우 1억 780만 원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보고서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독점자본(대기업)을 위한 정책입니다.
‘비정규직을 쓰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부담금을 내면 비정규직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금액 규모만 보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담금이 7000만 원부터 시작해서 대기업이 100% 비정규직만 고용해도 겨우 1억 780만 원밖에 안 됩니다.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함으로써 아끼는 – 실제 단순 금액 부분뿐만 아니라, 원청 책임 회피, 노조 탄압 용이 등을 포함한, 그러나 포함하지 않더라도 – 비용을 생각하면 1억 780만 원은 껌값도 아닙니다. 결국 ‘비정규직 제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탈을 쓴, 비정규직 사용을 보장해 주는 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이대로는 문제가 맞지만 대기업이 비정규직 사용으로 – 실제 단순 금액 부분뿐만 아니라, 원청 책임 회피, 노조 탄압 용이 등을 포함하여 – 이득을 볼 수 없을 (또는 손해를 볼) 정도로 부담금을 강하게 부과하면 괜찮지 않느냐- 하는 식의 주장도 사실 기만적입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러느니 그냥 비정규직을 철폐하면 되는 일입니다.
3. 노동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저녁과 휴일을 드리겠습니다." - 문재인 (2017년 1월 18일 (당선 이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있었던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정책포럼 기조연설에서)
정책 얘기 이전에 우선 배경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과 생산력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알파고과 이세돌의 대결 때도 그렇지만 기계, 컴퓨터, 자동화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식의 신문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혹은 빼앗길 위험이 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동문 도입으로 빠르게 사라진 버스 차장 (흔히 ‘버스 안내양’), 하이패스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있는 요금소 노동자들, 2만 명이 근무했지만 로봇 투입 후 관리원 100명만 남았다는 중국의 한 공장[9], 그 외에도 알게 모르게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는 여러 공장들, 자율주행차 등등.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 줄어드는 만큼 각 개인이 더 적은 시간을 일하면 좋겠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적은 노동자에게 많은 일을 시키고, 필요 없어진 다른 노동자들은 해고해 버립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정확히는 산업예비군)가 양산되는 이유입니다. 또한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자(산업예비군)가 늘어나는 만큼, 적은 일자리를 둘러싸고 노동자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집니다. 이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킵니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 ‘저는 더 적은 돈을 받고 일할 수 있습니다’…) 취직을 못하면 비참하고, 취직을 해도 열악한 환경에서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상태로 일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각 개인이 더 적은 시간을, 더 많은 사람이 일해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단축해 봤자 얼마나 단축하는가의 문제를 떠나)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시간 단축을 약속한 것은 환영받을 일입니다.
아뇨, 사실 아닙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임금의 삭감 없이, 오히려 더 높은 임금과 (더 좋은 노동조건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어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임금이 줄어든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비정규직이 ‘좋은 일자리’가 아니듯이, 적게 일하는 대신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적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에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노동자의 경우에도 기존 임금 구조를 그대로 가져간 채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임금이 줄어들 수 있는데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해서 ‘합리적 방안’을 찾으라고 합니다. ‘고통을 분담’? 노동자의 고통과 회사의 고통은 다릅니다. 노동자는 임금이 줄거나 노동조건이 악화되거나 해고되는 게 고통입니다. 회사는 줄 임금이 늘거나 노동조건 개선에 쓰는 비용이 늘거나 해고 쉽게 못 하는 게 고통입니다. ‘합리적 방안’? 아마 노동자가 임금 삭감을 (그 정도의 차이는 있되) 받아들이라는 게 ‘합리적 방안’일 것입니다.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냥 임금을 감축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함정이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감축을 하여(하되) 고용을 늘리자’는 것은 실제로는 임금만 삭감되고 고용 창출 (‘좋은 일자리’ 확대) 등은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습니다. 사실 실제로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따옴표 친 내용을 다시 봅시다.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감축을 하여(하되) 고용 증가’ – 어디서 많이 본 주장 같지 않습니까? 바로 박근혜 정부의 ‘임금피크제’입니다. 임금피크제란 쉽게 말하면 장년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그 돈으로 청년 고용을 늘린다는 것입니다. 한국노총이 2016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한 회사들 중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도 신규채용은 물론이고 신규채용 ‘계획’ 자체가 아예 없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고 합니다.[10] 그리고 임금피크제는 청년 실업을 해결하겠다고 도입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노동자들 탄압하고 임금피크제 도입하여 임금 삭감하고 했어도 청년실업률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11]
애초에 임금이란 것은 제한된 기금을 두고 벌이는, 노동자들 간의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임금은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가치에서 나옵니다.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가치에서 일부는 노동자의 몫 즉 임금이 되고 나머지 일부는 자본가의 몫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자신이 창출한 잉여가치에서 자신의 몫을 가져갑니다. 따라서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느냐 적게 받느냐는 자신이 창출한 잉여가치에서 얼마만큼 가져가느냐의 문제이지, 다른 노동자가 많이 받느냐 적게 받느냐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장년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거나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위해 정규직의 임금을 깎는다거나 하는 식의 논리가 말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1] 연합뉴스 <공기업 3명 중 1명 비정규직…마사회ㆍ인천공항 80% 넘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6/0200000000AKR20170516166200003.HTML
[2] 한국경제 <인천공항 정규직 신입 연봉 4200만원…비정규직은 2500만~3000만원>
http://news.hankyung.com/society/2017/05/12/2017051256181
[3] 경향신문 <문재인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명 무기계약직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121356001
[4]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노사 간담회 때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화 하면 관리비 3%를 절약할 수 있다. 결코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볼 수 없다"며 "1만명 모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 금년 내에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 오마이뉴스 <새 대통령 오니 "정규직 전환"... "이렇게 간단한 일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5112
[5] 매일노동뉴스 <정부, 인천공항 1만명 정규직 전환, 모범사용자 될까>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4233
[6] 서울신문 <[단독]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대부분 ‘중규직’>
http://www6.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517009007
[7] 조선일보 <文대통령, '정규직 전환+α' 달라는 민노총에 일침>
[8] 매일경제 <[단독] 비정규직 많은 대기업에 최소 7000만원 부담금 부과>
http://news.mk.co.kr/newsRead.php?no=321481&year=2017
[9] 중앙일보 <2만 명 근무하던 중국 공장, 로봇 투입 뒤 100명만 남아>
http://news.joins.com/article/17351739
[10] 연합뉴스 <한국노총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 52% 신규채용 안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20/0200000000AKR20160120152900004.HTML
[11]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참고, e-나라지표 ‘청년 고용동향’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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