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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사람자르는 구조조정에 맞서 조선소 하청노동자를 살리자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풍경들 ①

지난 4월 경남 고성에 있는 STX고성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 삼원에서 일하던 물량팀 노동자들이, 원청의 갑질횡포로 업체가 폐업했다며 원청에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회사 앞에서 이십여 일 동안 농성 투쟁을 했다. STX고성조선해양은 하청업체에 일을 시켜놓고 일이 거의 끝날 때쯤인 3~4개월 뒤에야 비로소 도급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그동안 하청업체가 고용해 투입한 인원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기성금을 대폭 삭감하는 형태로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들을 착취했다. 명백한 하도급법 위반이지만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현실에서 사내하청업체 삼원은 매달 4~5천만 원의 적자를 누적시키다 결국 폐업했다. 

삼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록 물량팀장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보기 드문 집단적 투쟁이었다. 투쟁 기간 동안 삼원 노동자들의 모습은 마치 처음 노동조합에 가입해 파업투쟁을 하는 신생노조 조합원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나이든 노동자들은 그 동안 가슴에 담겨져 있던 울분을 토해냈으며, 젊은 노동자들은 정보과 형사의 사진 채증에 기념사진 찍듯 브이자를 내보이고 웃으며 맞대응했다. STX고성조선해양에 일하는 이천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이고 그들 중 70~80%는 물량팀 노동자이다. 그래서인지 삼원 노동자들은 그들 모두를 ‘사우여러분’이라고 불렀다. 한편 삼원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애초부터 ‘고용승계’는 없었다. 연대 온 대우조선해양 현장활동가들은 삼원 노동자들이 왜 고용승계를 요구하지 않는지 의아해 하고 궁금해 했다.

그 STX고성조선해양에서 얼마 전에는 3개 사내하청업체가 노동자 400여 명을 모아놓고 회사가 힘들어서 임금을 30~40퍼센트 깎아야 되니 양해를 해달라고 통보했다. 그 자리에 원청인 STX고성조선해양 직원들도 5명 정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하청노동자의 임금삭감이 원청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원청이 하청업체에게 지급하는 기성금을 삭감했고 이에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을 통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회사의 일방적 임금 삭감 통보에 노동자들이 항의했고 일단 노동자들은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귀가했다. 업체가 임금 삭감을 강행해 관철시켰는지,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결국 받아들였는지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병역특례부터 시작해서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만 이십 년 가까이 하청노동자로 일해 온 서른여덟 살 노동자가 회사에 사직서를 낸 다음날인 5월 11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장 직책으로 월 400시간의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노동자는 대통령이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5월 연휴기간에 아이들과 캠핑을 다녀왔는데, 연휴 끝나고 출근한 월요일에 회사로부터 부당한 인사 통보를 받았다. 두 개 반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반장에서 조장으로 강등되고 그에 따라 임금도 삭감됐다. 반장으로 일해 온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 이 같은 부당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어 사직서를 내려고 했지만 회사는 면담을 통해 사직하지 말고 통보된 대로 일하라고 종용했다. 결국 어렵게 사직서를 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다음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업체는 이 같은 죽음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고, 이에 유가족들은 업체의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빈소를 장례식장에서 삼성중공업 정문으로 옮겨 삼성중공업과 사내하청업체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했고, 결국 사내하청업체와 사과와 보상에 합의하겨 10일만에 장례를 치렀다.

한편 그보다 2주 전인 4월 25일에는 역시 삼성중공업의 또 다른 사내하청노동자(43세)가 자신이 일하던 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와 유족이 빨리 합의 후 장례를 치러서 자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작년 12월에는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삼성중공업 정규직 노동자(50세)가 권고사직을 거부하다 해고통보를 받고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월 16일에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변사체로 바닷가에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익사로 추정되었고 회사의 부채 누적이 죽음의 원인으로 보도되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수 억 원 체불되어 있었고, 업체 인수 당시 10억 원이었던 부채는 20억 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작년에 다른 조선소보다 한 발 먼저 기성금 후려치기를 통한 조직적인 사내하청업체 솎아내기를 했던 현대중공업에서도 작년 12월 업체 대표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5월 20일부터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 사이에는 ‘협의회 임시회의 결과’ 문자가 돌고 있다. 문자의 내용은 6월 1일 또는 7월 1일부터 현재 550%인 상여금을 150% 삭감하고 300%는 기본급화하며 토요일은 유급휴일에서 무급휴일로 바꾼다는 것이다. 문자 내용대로라면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20~30% 삭감된다. 이 같은 임금삭감이 사내하청업체에 따라 각기 개별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 협의회 임시회의 결과’에 따라 협의회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려고 하는 것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협력사에 지급하는 기성금을 일괄적으로 삭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 내용이 그대로 실시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임금삭감 공격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풍경들 ②

이른바 ‘빅쓰리’ 조선소가 작년에 8조 원 넘는 적자를 내면서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는 연일 구조조정을 소리 높여 외치고 조선소에 자구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은 이에 발맞춰 연일 구조조정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정부와 언론의 합작은 사람들에게 구조조정을 이미 기정사실화 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기정사실화한 구조조정이란 곧 사람 자르는 것을 의미한다. 2만 명 넘는 물량팀 노동자와 사내하청노동자가 해고될 것이라는 예상은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확정되고, 다만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방안들이 논의될 뿐이다.

대형조선소 중형조선소 할 것 없이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 사내하청업체가 줄줄이 폐업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원청이 조선소의 부실을 기성금 삭감을 통해 사내하청업체에 떠넘기는 데 있다. 그러면 하청업체는 이를 다시 하청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임금이 한두 달 체불되다가 마침내 업체가 폐업하면 노동자들은 수백만 원의 체불임금과 함께 일자리를 잃게 된다. 원청도 책임지지 않고 하청도 책임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노동부에 가서 체당금 신청하세요” 친절하게 안내할 뿐이다.

올 들어 거제통영고성 지역의 임금체불 신고액은 124억 원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의 53억 원 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거제지역만 보면 올해 4월까지 임금체불 신고액이 7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억 원 보다 무려 7배나 늘었다. 이 같은 체불임금 증가에 따라 통영고용노동지청의 체당금 신청액도 49억8000만원으로 19억2000만원(62%) 늘었다[각주:1].

그런데 체당금을 받기 위해서는 또 그 중 일부를 노무사에게 수수료로 떼 주어야 한다. 지금 거제통영고성 지역에는 서울의 노무법인에서 노무사들이 내려와 ‘체당금 특수’를 누리고 있다. 노동자의 체불임금을 가지고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임금체불 인원

 임금체불액

 체당금신청 인원

 체당금 신청액

 2012년 (1~4월)

 592명

 34억 원

 

 

 2015년 (1~4월)

1,459명 

 53억 원

593명 

30억6000만 원 

 2016년 (1~4월)

2,531명 

124억 원 

 1,266명

49억8000만 원 

(통영고용노동지청 임금체불, 체당금 현황, 출처 : 한산신문)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아래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는 구조조정 때문에 이 같은 하청업체 폐업 및 해고와 임금체불이 속출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보다 조직적이고 지역적으로 대응하며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올해 1월부터 초보적인 논의를 시작했고, 3월~4월에 두 차례 토론회를 통해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5월 3일 1차 회의를 갖고 5월 4일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했다. 다행히 몇 달 일찍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에 최근에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서 부족하나마 때를 놓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었다.

정당, 시민단체, 노동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아직은 거제지역 단체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형 조선소 두 개가 있는 거제를 중심으로만 활동해서는 안 되며 중형조선소와 사외하청업체들이 주로 위치한 통영과 고성 지역의 활동이 똑같이 혹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는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생각한다. 이제껏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업체 폐업과 임금 체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포기하거나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그러나 사람 자르고 부실을 떠넘기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전면화 하면서 업체 폐업과 임금 체불에 맞서 하청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계기와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계기를 잘 찾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 하는 것이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의 가장 큰 존재이유다.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는 정식으로 출범하기도 전에 STX고성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 삼원 노동자들의 체불 임금 지급 요구 농성투쟁을 함께 했다.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 구성원 대부분이 처음으로 경험한 하청노동자들의 집단적 농성 투쟁이었는데, 비록 체불임금의 일부를 받는 것에 그치는 내용적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 터져 나오고 조직될 하청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어 삼성중공업의 상시적 구조조정과 사내하청업체의 악질적 노무관리에 죽음으로 몰린 하청노동자의 유족들과 함께 싸웠다. 삼성중공업 앞에 빈소를 차리고 농성투쟁을 한 끝에 10일 만에 하청업체와 합의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이 같은 싸움을 통해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는 지역 현장활동가를 공동투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 벌어지는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는 주도적 기구로서의 위상을 쌓아가고 있다.

한편,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의 활동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금속노조로 조직하려는 활동도 나란히 진행되고 있다.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의 투쟁은 곧 하청노동자들을 만나는 과정이자 그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준)’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구조에 상응하여 사업장 단위가 아닌 지역단위의 조직화를 지향한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라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함께 업체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싸우고 하청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과 권리를 향상시키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다만 아직은 주체 역량이 대단히 취약하여 지금과 같은 정세 속에서 자칫 하청노동자들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난파되고 조난당하지 않을까 걱정이기는 하다.

‘거통고 조선하청대책위’는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7월이나 8월 중에 하청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집회나 행진을 사업계획으로 논의하고 있다. 집회를 하면 주변에 원-하청 관리자들이 득시글거릴 텐데 과연 몇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을까 사실 별로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요즘의 정세에 기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하청노동자들의 참여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주관적 상상 속에 빠져보기도 한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공장의 벽을 넘어 대규모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과 투쟁에 나서는 그 때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154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1. 거제뉴스광장, 2016. 4. 27, '물량팀' 2만여명 실직 눈앞···사외협력사 '직격탄' 위기, http://me2.do/xArO2I7F 한산신문, 2016. 5. 20, 조선 불황 현실화, 체불임금 급증, http://me2.do/xSE4dBQK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