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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죄의식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 12월 24일 녹산공단에서 선전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한 노동자가 눈에 뜨일 정도로 다리를 끌며 식당을 나왔다. 여러차례 선전전에서 낯익은 얼굴이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 허리를 다쳤다고 한다. 병원에 가서 허리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산재신청해서 치료도 받으셔야죠” 하니 “내가 산재신청하게 되면 회사가 보험료가 올라가니 민폐라서”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상태로 봐서 심각한 정도이니 꼭 상담을 오시라는 당부를 하고 헤어졌다. 이틀 후 창원공단의 한 노동조합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또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동화 공정에서 부품을 이동시키는 로봇의 팔이 일하던 노동자의 오른쪽 귀를 강타하는 사고가 있었다. 노동자는 오른쪽 귀가 심하게 찢어지게.. 더보기
S&T 중공업 노동자들 특별한 정년 퇴임식 김택선 ( S&T중공업지회 정년노동자) S&T중공업 지회 단체협약엔 ‘제28조(정년) 1. 조합원의 정년은 만 56세로 하며 정년 퇴직일은 당해 년 도 12월말로 한다. 2, 회사는 정년퇴직자 본인의 요청이 있고, 일반건강 진단 상 이상이 없을시 1년간 촉탁계약을 한다’로 명시되어있다. 정년퇴직을 앞둔 63명의 노동자가 단체협약에 의거 1년간 촉탁신청을 했으나 회사가 단체협약을 위반하면서 이를 거부해 정년을 앞두고 있던 노동자들이 뿔난 것이다. 정년을 이틀 앞둔 2014년 12월 30일 43명의 정년 노동자들이 노동부 앞에서 정년퇴임식을 진행했다. 회사는 해마다 정년퇴직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년 2∼3일을 앞두고 정년퇴임식을 실시한 후 남은 기간을 유급 처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말.. 더보기
손톱만큼의 희망 이정희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수요일 오후 4시40분. 창원대로 한 가운데에 있는 차룡사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주섬주섬 전을 편다. 테이블을 꺼내고, 홍보물을 꺼내고, 정류장 곳곳에 현수막도 붙이고. 혹시나 따뜻한 차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이버너도 가져와서 주전자에 물도 끓인다. 사람들을 맞을 준비가 끝나면 얼추 5시가 다 돼 간다. 12월 동지섣달이라 5시가 되기 조금 전부터 주위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겨울에 버스 정류장에 전을 펼치는 이유는 전자업종 여성노동자 실태조사를 위해서다.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경남여성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가 함께 하고 있는 은 지역의 노동문제를 고민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만들었는데, 에서는 2014년부터 핵심사업으로 전자업종 여성노동자 실태조사를 진.. 더보기
체공녀와 연돌남, 강주룡과 다나베 기요시 이김춘택 / 체공녀와 연돌남 그리고 굴뚝인 두번째 이야기 어제 1931년 평원고무공장 여성노동자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과 당시 잡지 에 실린 강주룡 인터뷰에 대한 글을 썼다. 체공녀 연돌남 그리고 굴뚝인 - http://gnfeeltong.tistory.com/7 그러면서 잡지 글 서두에 언급된 일본의 ‘연돌남’이 누구이며, 어떤 까닭으로 굴뚝농성을 했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있는 친구) 후지이 다케시( 藤井たけし)라면 찾아서 알려줄 수도 있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랬더니 정말로 몇 분 지나지 않아 일어판 위키피티아에서 ‘연돌남’에 관한 정보를 찾아서 알려주었다. http://ja.wikipedia.org/wiki/%E7%85%99%E7%.. 더보기
체공녀(滯空女)와 연돌남(煙突男) 그리고 굴뚝인 이김춘택 이 추운 겨울, 구미 스타케미칼과 평택 쌍용자동차에서는 차광호, 이창근, 김정욱 동지가 굴뚝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할 때면 항상 언급되는 것이 한국 노동운동 최초의 고공농성으로 알려진 1931년 평원고무공장 노조활동가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이다. 역사학자 박준성선생님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린 이후,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은 이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 박준성 선생님이 쓴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 관련글 보기 http://hadream.com/xe/history/43300 그런데,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 1931년 고공농성 며칠 뒤에 강주룡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글을 읽어 본 사람은 많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