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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나쁜 나라> 후기. 진상규명이 유가족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승우 (청년 활동가)

<나쁜 나라> 공동체 상영

2015년 12월 22일, 화제의 다큐 영화 <나쁜 나라>가 창원에서도 상영을 하여 보러 갔다. 들은 바로는 역시 화제의(?) 작품이라 그런지 상영 전부터 일이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대강당에서 상영하였는데,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지역의 영화관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공동체 상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유 없이 대관/상영을 거절한 이 상영관들과 그 관계자들도 실로 나쁜 나라, 나쁜 놈들의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조금 늦게 도착하여 허둥지둥 상영 중인 대강당에 들어서자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찬 것이 보였다. 나는 다행히도 맨 뒤의 자리에 간신히 앉아서 볼 수 있었는데, 자리가 마땅히 없는지 일어서서 보는 분들도 계셨다. 딱히 크게 광고를 한 것도 아니고 SNS 등으로 알렸을 뿐이지만 이토록 많은 분이 오신 것을 보니 그만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이 올린 글에서는 담담하다는 표현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형식, 즉 진행 방식은 담담할지언정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영화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참사 이후의 일들을 보여준들, 일베의 폭식 '투쟁' 등 화를 돋우는 자극적인 것을 최대한 제외하고 보여준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절대 담담히 객관적으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슬픔과 분노

유가족 김영오아버님이 교황의 손을 맞잡고 울 때… 국회 앞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울면서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달라구요…”라 외치는 것을 외면한 채 정치인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지나갈 때… 유가족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하고… 한 희생자 어머님이 '저희는 절대 멈출 수 없'다고, '지금 멈추면 이 자리에 당신들이 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 말하실 때…  유가족 어머님, 아버님들이 직접 서명운동을 하시고… 세월호 가족 도보행진 중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옆에서 마실 것을 챙겨주거나 하며… 서로 “고마워”, “고맙습니다”라 말할 때…….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 분들, 그리고 행동을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많이 들렸고, 예전에 많이 울어 이젠 나올 눈물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도 울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을 이렇듯 슬프게 만들면서, 또 분노하게도 만들었다. 정치인들이 유가족 분들을 무시하고 레드카펫을 밟으며 지나가고,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한 수백만 명의 마음을 짓밟고 못난이 양당이 특별법 야합을 하였다. 여당과 싸워야 할 터인 야당은, 유가족들을 도와주는 척하다가도 영화 속에서만 몇 번이나 뒤통수를 때리며 야합을 한다. 또, 유가족 분들이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이었음에도 국회 잔디마당에서 제헌절 경축행사를 하는 못난이들도 있었다. 유가족 분들이 이에 계속 항의하자 결국 행사가 중단되기는 했는데, 만약 중단되지 않았으면 공군 특수비행단 블랙이글의 축하 비행까지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것도 참 어이가 없지만 여기서 국회의장 정의화라는 자가 하는 말이 또 가관이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하고, 유가족들이 자기에게 협조를 해 주어야 된다고 말하며, 유가족 분들에게 '훈장질'을 한다. …이러한 일들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분노가 일고 마음속으로 욕도 한다. 나는 영화가 상영 중임에도 자꾸만 입밖으로 욕이 나오려 해 참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 결심을 했다. 이 슬픔과 분노를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유가족 간담회

 

영화 상영을 마친 다음은 이어서 유가족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본 뒤 슬픔에 젖어 있어서인지 다들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였는데, 이것을 의식한 예은이 아버님 유가족 유경근님은 “저도 나쁜나라 보고 난 뒤 간담회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 같은 마음일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며 먼저 말문을 떼셨다. 이후 예은 아버님과 관객들 사이에 많은 말이 오갔다. 한 분이 “현 정권이 끝나기 전에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를 하자 예은 아버님이 “현 정부 아래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유가족들도 100% 동의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수 있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 정권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시는지? … 여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 특별법 제정 과정을 봤을 때, 과연 이 사람들(야당)이 진상규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고 하시고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도록 바꾸어 주십시오”라며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셨다. 예은 아버님은 이후에도 “여당이랑 야당 중 어느 쪽에 더 실망을 많이 했겠어요?”, “야당 의원은 정말 편한 직업이구나…”, “우리가 알고 있던 정치는 다 환상이구나…”, “한국 정치하는 사람 중에 정말 국민을 위하는 사람은 정말 없구나…” 라는 말을 하시는 등 야당과 정치권에 대한 큰 실망감을 밝히셨다.

다른 한 분은 “가장 가까이에서 사고를 지켜보신 유가족 분들은 진상이 어떻게 된 거라고 보십니까?”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예은 아버님은 “참사의 진상에 대해 과적재, 암초, 폭발, 잠수함 … 등 많은 설이 있습니다”, “진짜 진상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진상을 밝히는 과정”,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두 번째이고, 그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피해자인 유가족이 납득하고, 함께 눈물 흘린 국민 분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유가족과 국민이 수긍하는 조사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며 “독립적인 국가 조사 기구를 통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 보장”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잠수함이란 말이 나왔을 때 몇 명은 웃기도 했는데, 이에 예은 아버님은 “(잠수함설이라고)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증거가 몇 개 있습니다”라고 하시고, 잠수함설도 진상규명 조사에서 빠지는 예외가 아니라고 하셨다. 이처럼 예은 아버님은 진상규명 조사의 과정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진상규명이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또 다른 한 분은 보면 너무 슬플까 봐 참사 당시 아이들 나오는 영상을 아직도 못 보고 있다고 하셨는데, 예은 아버님은 “정말 진상규명을 원하신다고 한다면 힘드시더라도 회피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고 사람들에게 말을 해 주셨다. 가장 힘든 입장에 계신 분이 하신 말이라 먹먹해진 가슴에 너무나 와 닿았다.

이외에도 예은 아버님은 참사 이후 정신적인 힘듦, 상담/힐링 문제에 대해서 “활동 적극적으로 많이 하시는 분들 중에는 (상담/힐링 센터에) 가는 분 별로 안 계십니다”, ”소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자주 가셔요”, “이게 힐링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피켓 들고 활동하는 게 오히려 치료가 되는 거구나…”, “그런 (힐링센터) 치료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진상규명이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하시며 관객들에게도 “단순히 저희를 돕기 위해 한다고 활동하시면 오래 못 하십니다”라며 그걸 넘어서는 것을 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길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떤 입장으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억교실

그리고 예은 아버님은 최근 이슈가 되었던 단원교 교실 존치 문제를 먼저 언급하셨다. 지금 단원고의 문제점을 알 수 있는 일이 많은데 그 중 하나라며 최근 (세월호 생존자 포함 83명 재학 중인) 3학년의 해외 봉사활동 중 벌어진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 학생이 현지에서 고열로 많이 아팠는데,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는 등 믿었던 선생님들과 학교 측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하셨다. “한두 분 선생님 말고 거기 계신 선생님 다 그렇다 (문제가 많다)”고 하시고는 그렇게 큰 참사를 겪은 후임에도 의식이 없다며, 전교조 선생님이 단 한 분만 계셔서 그런가-하고 농담도 하셨다. 예은 아버님은 그저 농담으로 하신 말일지 모르나, 학생인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전교조 선생님과 전교조가 아닌 선생님은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님은 또 이어서 “4월 16일 이후 학교에서 새로운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교실을 뺀다는 것은 잘못된 교육환경을 방관하는 것”이라고 호소하셨다.

유가족 예은 아버님과 함께 한 영화 감상과 간담회는 나를 포함하여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가 되었다. 영화를 보며 함께 울고, 함께 화를 내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그러니 외로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얻은 슬픔과 분노는 앞으로의 활동에 원동력이 되고, 각오를 한 번 더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은 아버님이 강조하신 말씀에서 진상규명의 과정, 즉 성역 없는 진상조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였고, 단순히 유가족을 돕는 것을 넘어서는 활동을 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입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다짐의 말을 적어 보고자 한다. 진상규명 그날까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쁜나라 부산, 창원 상영관

창원 : 씨네아트 리좀 http://cafe.naver.com/cineart
부산 : 국도예술관 http://cinemadal.tistory.com/2504
부산 : 아트씨어터 C+C  http://cafe.naver.com/cncthe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