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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인터내셔널가’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지난 2014년 5월 1일 창원 만남의광장에서 제124주년 세계노동절 기념 경남노동자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동자 합창단에 의해 노래 ‘인터내셔널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날 세계 곳곳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집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각 나라의 노동자들이 비록 언어는 다를지라도 하나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집회를 하고 행진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팔뚝질하며 부르는 것처럼, 인터내셔널가는 전 세계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부르는 유일한 노래입니다.

인터내셔널가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통해 70일간 노동자 자치정부를 세웠던 1871년 프랑스 파리코뮌에서 탄생했습니다. 파리코뮌의 일원이자 철도노동자였던 외젠 포티에(Eugène Pottier)가 쓴 글에, 가구공장 노동자인 피에르 드제이터(Pierre Degeyter)가 1888년 곡을 붙여 만든 노래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 노동자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게 된 것은 세계노동절(Mayday)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세계노동절(Mayday)의 역사

최근 한국 사회에서 ‘주간연속2교대’나 ‘연장근로시간 제한’이 노동계 주요 현안이 되고 있는 것처럼, ‘노동시간 단축’은 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동운동의 핵심 요구이자 투쟁 과제였습니다.

19세기 말 미국 노동자들 역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힘차게 투쟁했습니다. 미국노동총동맹은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했는데 미국 전역에서 19만 명 파업에 참여했고, 34만 명이 시가행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다음 날인 5월 3일, 시카고 맥코믹 농기계 공장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경찰이 총을 쏘며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어린 소녀를 포함하여 6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5월 4일 시카고 헤이마킷 광장에서 경찰의 메코믹 농기계 공장 학살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립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날 때 쯤 경찰과 노동자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던진 폭탄이 터져 경찰과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은 이를 빌미로 시카고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검거합니다. 폭탄테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탄압한 것입니다. 결국 그 중 1명은 감옥에서 사망하고 4명은 재판을 받고 다음해인 1887년 11월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7년 뒤인 1893년, 시카고 시를 관할하는 일리노이 주 지사는 헤이마킷 사건의 노동자들이 무죄임을 인정하고 그때까지 갇혀있던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감옥에서 석방하게 됩니다. 자본의 탄압에 누명을 쓰고 교수형을 당한 노동운동 지도자 어거스트 스파이스의 다음과 같은 법정 최후진술은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불꽃은 꺼질 줄 모르고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몇 년 뒤인 1889년,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프랑스 파리에 모여 노동운동의 국제조직인 ‘제2인터내셔널’을 결성합니다. 그리고 그 창립대회에서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여 5월 1일을 세계노동절(MayDay)로 정하였고, 다음해인 1890년 5월 1일 제1회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합니다. 이것이 124년 동안 전 세계노동자들이 지켜온 세계노동절의 역사입니다.

헤이마킷 사건으로 희생된 미국 노동운동의 지도자들과, 시카고 외곽 발트하임 묘지에 있는 헤이마킷 희생자 기념비

 

빼앗긴 노동절

한국에서도 일제시대인 1920년부터 매년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기념하고 투쟁해 왔습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뒤 첫 노동절이었던 1946년 5월 1일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조선공산당, 경성지방평의회 공동주최로 서울 운동장 야구장에서 20만의 노동자가 참여하여 메이데이 6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57년 5월 22일, 독재자 이승만은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들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만치 반공하는 우리 대한의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고 어용 노동조직인 대한노총(한국노총의 전신)에 지시합니다. 이에 대한노총은 자신들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정하고 1959년 3월 10일 제1회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합니다. 마산에서도 1959년 3월 10일 마산지구노동조합연합회 주최로 마산역 광장에서 제1회 노동절 기념대회가 열렸습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기념하고 투쟁해 온 세계노동절(5월 1일)이 독재정권에 예속된 어용 노동조직인 대한노총의 생일(3월 10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대한노총은 제1회 노동절 대회에서 ‘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당시 대한노총이 뼛속까지 어용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존경하옵는 각하, 오늘은 글자 그대로 각하가 평소에 누구보다도 아껴 주시던 노동자의 명절날입니다.... 오늘 우리 노동자 동지들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여.... 기쁨을 나누게 되었음은 오로지 각하가 베푸신 어진 정치의 보람임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이승만의 뒤를 이어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박정희는 1963년 4월 17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그나마 껍데기만 남아있던 ‘노동절’을 그 이름까지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버립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절’이라고 부르지만 법률에는 ‘근로자의 날’로 되어 있고 그래서 달력에는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라고 되어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절이 어용 노동조직인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바뀌고 마산역 광장에서 처음 열린 1959년 제1회 노동절 기념대회

 

되찾은 노동절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빼앗긴 노동절을 되찾는 일에 나섰습니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1989년 5월 1일 '세계 노동절 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합니다. 1959년, 노동절이 5월 1일에서 3월 10일로 바뀐 지 30년 만에 노동자의 생일을 다시 되찾은 것입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4년 뒤인 1993년, 김영삼 정부는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기념하는 옥외 집회와 가두행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4년에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고쳐 노동절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되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노동자들도 전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5월 1일을 세계노동절로 기념하고 투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1989년 5월 1일 세계노동절 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여 빼앗겼던 노동절을 30년 만에 되찾았다. (사실, 1989년은 100주년이 아니라 99주년(제100회) 세계노동절이다)

 

5.1절? 세계노동절!

이렇듯 한국에서 5월 1일 세계노동절은 독재정권 시기 암울했던 어용노조의 역사와 그것을 뚫고 일어선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민주노조운동 안에서도 ‘세계노동절’이란 말 대신에 ‘5.1절’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09년에는 민주노총의 공식 포스터에 ‘5.1절 조직위원회’라고 쓰기까지 했습니다.

5.1절이란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5.1절이란 말 속에는 노동절을 둘러싼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가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생일이란 뜻도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세계노동절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의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말이란 누가 억지로 강요한다고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세계노동절 대신 5.1절이라는 말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 속에 세계노동절이 가진 의미가 점점 잊혀져가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인터내셔널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파업가’처럼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서 널리 불리는 노래는 아닙니다. 그러나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대표하는 노래이고, 전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입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조합원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배우서 알고 함께 부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 속에 담긴 세계노동절의 역사와 한국에서의 노동절의 역사도 되새겨 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 인터내셔널가 듣기 : http://www.youtube.com/watch?v=gyEeycOmJI8

※ 글의 대부분의 내용은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역사학연구소 지음, 서해문집, 2004)를 참고하거나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