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동

27억 체불임금 누가 책임져야 하나? - 원청 상대로 투쟁에 나선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27억 체불임금 누가 책임져야 하나?

- 원청 상대로 투쟁에 나선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준))

 

임금 삭감, 임금 체불, 업체 폐업... 박근혜 정부와 대형 조선소가 밀어붙이는 ‘구조조정’에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고통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당을 1만원~2만원 삭감하거나 상여금을 150% 삭감하면 한 달에 20~30만원 월급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상여금을 아예 없애고 기본급에 포함하게 되면, 그나마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매년 조금씩 오르던 시급도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 하게 된다.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 진다.

 

삭감된 월급이라도 제 때 나오면 다행이다. 원청 조선소가 기성금을 후려쳐서 돈이 없다며 월급이 30%나 50%씩 체불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2~3개월 체불되다가 마지막 달 월급은 100% 체불된 채 업체가 폐업하면, 두세 달치 월급과 퇴직금은 고스란히 체불임금이 된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게 하청노동자 살림인데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 진다.


임금을 떼여 본 사람이 아니면 그 심정을 정말 모른다. 이 무더위에 땀을 몇 바가지씩 흘려가며 일해서 받을 내 돈인데, 받을 길이 없다. 사내하청업체가 땅이 있나 공장이 있나 기계가 있나, 그냥 조선소에 노동자를 공급해 주는 역할밖에 안 하기 때문에 어차피 회사 재산도 없고 사장 개인 재산도 한 푼 없다. 원청은 원청대로 사장에게 지급해야 할 기성금은 다 지급했으니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청이든 하청 사장이든 하는 말은 오직 하나, 체당금 신청하라는 얘기뿐이다. 나랏돈이 마치 자기들 쌈짓돈이라도 되는 것처럼 뻔뻔하다. 체당금을 신청해도 6개월~1년 뒤에나 겨우 받을 수 있는 돈은 체불임금의 절반 정도다. 나머지 돈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힘들게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이 같은 억울한 상황이 조선소에서는 점점 예삿일이 되고 있다. 현행법과 제도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 보니 임금을 떼먹는 하청업체 사장도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임금을 못 받은 노동자의 포기와 체념도 빠르다. 도대체 이런 답답하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하청노동자 체불임금,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

 

곰곰 생각하면 방법은 있다. 아니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책임이고 뭐고 다 떠나서 돈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체불임금을 받아내면 된다. 돈을 줄 수 있는 사람, 그게 누굴까? 체불임금을 줄 수 있는 오직 유일한 능력자는 원청 조선소다. 원청 조선소 말고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런데 원청은 이미 줄 돈 다 줘서 아무런 책임이 없지 않냐고? 없는 거 좋아하시네. 하청노동자들이 어디서 일하나. 누구의 공구로 누구의 기계로 일하나. 누구 소유의 배를 만드나. 더구나 배 만드는 생산의 흐름을 원청이 촘촘하고도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하청업체 사장은 노동자를 공급해 주는 인력소개소나 마찬가지고 하청노동자의 실제 사용자는 원청 조선소인 것이다. 더구나 요즘 조선소 하청업체 폐업의 근본 원인은 원청의 ‘기성금 후려치기’에 있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불법이다. 다만 한국사회 노동현장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더 우선일 뿐이다.

 

만약, 하청노동자의 체불임금은 무조건 원청이 지급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원청은 자신들의 이윤이 줄어들게 될지도 모를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하청노동자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제도를 만들 것이다. 하청업체가 맡겨놓아야 할 보증금 액수를 대폭 늘리고 관리를 강화하거나, 기성금 중에서 월급에 해당하는 부분만큼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은행을 통해) 직접 지급하게 하는 제도를 실시할 것이다. 퇴직금 확보를 위한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 하고 퇴직연금 적립도 제대로 하는지 철처하게 관리 감독할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은 모두 현재 노동계가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법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질 리는 없다. 그런 법이 없는 동안에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원청 조선소에 하청노동자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싸우는 수밖에. 물론 쉽지 않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 또 그렇게 원청 조선소를 상대로 줄기차게 싸워야 안전장치도 만들어지고 법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하청노동자 체불임금 해결의 타깃은 정확히 원청 조선소에 맞추어 져야 한다.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천일기업 노동자들의 싸움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천일기업 노동자들이 느닷없는 업체 폐업과 그로 인한 체불임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지난 8월 17일 오후부터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서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거리에서 농성투쟁을 한다는 것은 정말 드문일이다. 특히 삼성중공업에서는 거의 최초로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천일기업 노동자들은 어떻게 농성투쟁 까지 하게 되었을까. 260명 노동자의 한 달 치 임금과 퇴직금 등 체불임금 총액이 무려 27억 원이다.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의 퇴직금은 5천만 원이 넘는다. 현실을 탓하며 포기하거나 체념하기에는 그 액수가 너무 크다.

 

게다가 하청업체 사장은 회삿돈 빌려다 아파트건설에 투자했다가 20억 넘게 손실을 봐서 아직 갚지 않은 회삿돈이 25억 원이나 된다. 더구나 사장 아들을 총무로 고용해 회사 소유 외제차를 개인차 처럼 사용하게 하고, 월급을 무려 800만원이나 주는 등 대표이사의 부실, 비리 경영이 노동자의 분노를 키웠다.

 

그렇게 해서 하청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농성투쟁을 시작했지만 쉽지만은 않다. 천일기업 사장은 돈이 없어서 체불임금을 못 준다고 하고 원청인 삼성중공업은 책임질 일이 없어서 못 준다고 한다. 현실은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그러므로 앞서 살폈듯 방법은 오직 하나 원청인 삼성중공업에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천일기업 사장이 삼성중공업의 부당한 기성금 삭감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한 것이,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싸우는 데 좋은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천일기업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을 해도 아직 삼성중공업은 꿈적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어서 천일기업 노동자들이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얼마나 투쟁하고 얼마나 체불임금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천일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하청노동자의 체불임금을 원청 조선소가 책임지게 하는 데 중요한 첫 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일기업의 노동자의 체불임금 27억 원 누가 책임져야 하나? 원청인 삼성중공업이 책임져야 한다. 천일기업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