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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자, 이제 우리가 말할 차례

최수영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활동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15년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서울의 정오,  기차를 3시간 타고 다시 1시간 쯤 홍대 근방을 헤매다 팟캐스트 녹음 장소인 ‘안가’를 찾았다.
전국의 여성노동자회는 중앙의 한국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하여 지역에 11개 여성노동자회(이하 여노)가 있다. 그중 중앙과 수도권의 여노(서울, 안산, 부천, 수원) 그리고 마창여노의 평등의전화 활동가가 팟캐스트 제작에 참여했다.
복합문화공간인 ‘이이제이 안가’는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제작하는 곳이다. 공간에서는 밥과 커피, 술 등을 파는데 그 끝에는 녹음부스가 마련돼 있다. 탁자와 의자 세 개로 꽉 들어찬 공간. 탁자 위에는 기다란 마이크가 세 개.

 

 

 

 


“자, 한 분씩 마이크에 대고 마이크 번호를 말해보세요.”

녹음 기사님의 말씀에 ‘아… 네, 3번입니다’라며 입을 떼어본다. 조금 더 크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녹음이 고르게 잘 되려면 마이크 가까이에 입을 대고 평소 말할 때보다는 큰소리를 내야한다고. 또 입의 위치가 바뀌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웬만하면 몸을 앞뒤로 움직이지 마세요”) 하지만 적당한 크기의 성량을 유지하며 두어 시간 녹음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더라. 게다가 웃을 때만 복식호흡이었는지 나중에 올라온 팟캐스트를 들으니 웃음소리만 우렁차다. 정말 세상 쉬운 게 하나도 없네.

2015년 5월 28일 처음 업데이트된 「‘을’들의 당나귀 귀」는 호외와 마지막 공개방송을 포함하여 총 22회의 에피소드가 등록되었다.
여성노동자회 상담활동가들이 평등의전화에 주로 오는 상담, 일하며 겪는 고충, 2014년 세대별 여성노동자 심층 인터뷰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저임금과 남녀임금격차, 설명되지 않는 성차별 등에 대해 논하기도 했으며 KTX열차 승무원, 레이테크코리아 여성노동자들을 모셔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실제 투쟁 중인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듣자니 뭔가 새로웠다. 이렇게 오랫동안 오롯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 있었던가?
공개방송을 마지막으로 2015년 「‘을’들의 당나귀 귀」시즌 1을 종료했다.

 


그리고 2016년 5월 「‘을’들의 당나귀 귀」시즌 2가 시작되었다.

시즌1보다 더 틀이 갖추어진 느낌이다. 코너도 생기고 말이야.
고정 출연진으로 문화평론가 손희정 씨가 함께 한다. 작년에 강의에서 알게 된 후 그가 쓰는 글을 챙겨 읽고 있다.
요즘은 TV를 끊다시피 했지만 원래는 TV 보는 게 취미(라고 말하면 웃겠지만, 다들 그렇지 아니한가?)이고 그에 대한 글을 읽는 것도 즐겨한다.
손희정 씨의 강의 제목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미디어’였고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다. 잠깐 강의 얘기를 하자면 대중문화로 보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의 천만 영화를 살펴보면 <괴물, 왕의남자, 태극기휘날리며, 실미도, 국제시장, 광해, 명량, 변호인 (2015년 기준)> 모두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디로 갔는가? 주로 ‘귀신’으로 나타난다고. 그러고 보니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주로 여성이다. 여성의 입을 다물게 하는 사회, 그 억울함을 말하려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것뿐이라나? (사또,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오~)

 


앞으로 진행될 「‘을’들의 당나귀 귀」시즌 2에서도 ‘대중문화와 젠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는데 코너가 네 꼭지나 된다!
<페미슈> 그 달에 있었던 대중문화의 관점 혹은 페미니즘 관점으로  주요한 이슈를 알린다.
<젠더 돋보기> 대중문화 텍스트 등을 골라 젠더 관점으로 해체한다.
<페미페미북북>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나 영화를 소개한다.
<페미Q> 페미니즘과 관련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아는 건 답해드리고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답해준다고. (큭큭)


[질문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질문주시라. 페미Q바로가기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YH6lfxmIU783AnmMBBZe7q9dLvDBnJJ9iXyAQkHf71g5v8A/viewform?c=0&w=1 ]


시즌2 첫 에피소드 내용을 살펴보면


<페미슈>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최 / ‘아재판’인 한국의 예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언니들의 슬램덩크(KBS)’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 쎈 여성’이라고 모아놓고는 이 여성들의 ‘기 쎔’을 어떻게 포착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시청자 타깃을 잡지 못해 남성의 시선을 잡아야할지,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것 같다고.
손희정 씨는 여성을 내세운 이 예능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김숙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주체성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 후로 (7월 현재)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언니쓰’의 ‘Shut Up’으로 빵 터진 것처럼 보인다. (오, 제목마저 Shut Up이다) 또한 이에 열광하는 타깃이 주로 ‘젊은 여성’으로 같다.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쪽은 주로 젊은 여성이던가?) 걸그룹이라는 주제로 뜨긴 했지만 이후 어떻게 관심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이어 <젠더 돋보기>에서는 ‘개그/우먼/미디어 그리고 김숙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최고의 사랑(JTBC)’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 너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통에 ‘퓨리오숙’, ‘갓숙’하는 이유가 궁금해 기사 등은 찾아보았다. (“어디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겨? 재수 없게!”, “남자는 조신하게 살림하는게 최고지.”)
심혜경 씨(「여/성이론」 편집위원)가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 목소리와 말투가 자못 비장하다.

“우리가 어찌 김숙에게 ‘현상’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후 업데이트된 에피소드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살아남았다」, 「총선: 여성과 정치1, 2」 등이 있으며 매달 1~2회 업데이트 된다.

억울해서 이승을 맴도는 귀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아닌,
살아있는 여성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만하라 지겹다 입 막지 말고, 모두 다 힘들다 귀 막지 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눈 돌리려 하지 말고, 일단 들어 보자.
잠시라도 오롯이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인 적 없다면 말이다. 물론 다음 차례는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