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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창원공장 마지막 해고자가 복직하는 그날 함께 현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2009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77일 동안의 쌍용자동차 공장점거 파업 이후 6년 반이 흘렀다. 그리고 2016년 2월 1일, 6명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18명의 해고자들이 마침내 쌍용자동차로 복직하여 첫 출근을 했다. 아직 더 많은 해고자들이 남아있지만 힘들고 오랜 투쟁 끝에 희망의 첫발을 뗀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복직을 맞아 그 동안 창원과 평택을 오가며 투쟁해 온 이갑호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창원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필통>  먼저 해고자들이 복직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이번에 복직하게 된 것은 2015년 12월 합의에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갑호>  그렇다. 2014년 겨울 김정욱-이창근 두 명의 동지가 굴뚝에 올라 101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고 그 결과 2015년 1월부터 쌍용차 회사와 기업노조 그리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참여하는 <노노사 협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협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그래서 작년 9월에는 저를 포함한 5명의 동지들이 쌍용차 본사인 마힌드라그룹이 있는 인도 원정투쟁을 다녀오기도 했다. 결국 노노사 협의는 2015년 12월 11일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총회를 통해 합의안이 가결되었고, 회사도 이사회를 열어 합의서를 승인해서 2015년 12월 30일 합의서 조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에 따라 2월 1일 첫 번째 복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필통>  노노사 합의안의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이갑호>  우선 복직과 관련해서는 신규채용 형태로 2017년 상반기까지 복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신규채용은 기술직 신규인력 수요가 있을 때 상시적으로 진행되며 해고자 30%, 희망퇴직자 30%, 신규채용 40% 비율로 채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계속적인 복직을 위해 노노사 각 2명으로 구성된 복직점검위원회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점검하게 된다.
     
또한 회사는 33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가압류를 철회하기로 했으며, 2017년 상반기까지 복직대기 상태인 해고자와 28명 희생자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15억 원의 희망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필통>  조합원 총회에서 노노사 합의안이 통과되는 데 많은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갑호>  쌍용차지부 전체 조합원 중 112명이 총회에 참석해 투표한 결과 58명이 찬성해서 51.8%로 가까스로 합의안이 가결되었다. 반대가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복직시기가 명확히 확정되지 않고 “2017년 상반기까지 노력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합원들은 정말 복직이 될 것인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 하지만 노노사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부족하더라도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합의에 따라 첫 복직이 이루어진 지금만큼, 쌍용차지부는 이후 모든 조합원이 복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6년 반 만에 복직한 18명의 해고자들의 첫 출근길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축하해주고 있다.


<필통>  2월 1일 복직하게 된 인원은 몇 명인가?

<이갑호>  이번에 회사에서 40명을 채용했고, 합의안에 따라 해고자 12명, 희망퇴직자 12명, 신규채용 16명이 들어가게 되었다. 신규채용 16명에는 그동안 함께 투쟁해 온 비정규직 6명과 희생자 유가족이 포함되어 있다. 복직하는 해고자 12명은 평택공장이 7명, 창원공장이 2명 그리고 정비지회가 3명이다. 창원공장은 16명의 해고자가 있는데 그 중 2명이 이번에 가장 먼저 복직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2월 1일 출근해 한 달 동안 쌍용차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배치되어 일하게 된다.

<필통>  비정규직 6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된 것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갑호>  그동안 함께 투쟁해 온 비정규직 동지들이 반드시 정규직으로 복직해야 한다는 것이 쌍용차지부의 원칙 중 하나였다. 한편 비정규직 6명 중 4명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쌍용차 정규직의 지위에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만약 이 4명이 대법원까지 승소하게 되면 받을 수 있는 체불임금이 각각 4억 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면서 대신 6명 모두가 같이 정규직으로 복직한다는 선택을 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77일 파업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함께 살자”는 우리의 구호를 실천한 것이다.

<필통>  이후의 복직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이갑호>  합의안이 “2017년 상반기까지 복직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되어 있듯이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다. 티볼리롱바디 모델이 출시되면서 이번 채용이 이루어진 것인데, 판매가 잘 되면 올해 안에 한 번 더 복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내년에 주간연속2교대제가 시행되면 보다 많은 인원이 필요하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과정은 노노사로 구성된 복직점검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챙길 것이다.

<필통>  합의안의 다른 내용인 손배가압류 철회와 15억 희망기금 마련에 대해서도 좀 더 설명해 달라.

<이갑호>  회사가 쌍용차지부와 조합원 개인에게 한 손배가압류는 합의에 따라 철회했다. 방금 전에도 가압류되었던 퇴직금이 통장에 입금되었다는 전화를 조합원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금속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철회되지 않았는데 이 문제는 쌍용차 기업노조도 연관된 문제라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경찰이 청구한 14억 원의 손배가압류는 아직 남아있는 상태이다. 대테러임무 수행이 목적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노동자를 폭력진압 한 것도 모자라 손배가압류까지 청구한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기금은 15억 원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회사가 10억을 내기로 했고 인도 마힌드라에서 2억5천, 그리고 나머지 2억5천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기업노조가 같이 내기로 했다. 희망기금 15억 원은 28명의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지원과, 앞으로 순차적으로 복직하게 될 복직 대기자들에 대한 지원에 사용될 것이다. 희망기금은 운영과 집행은 제3의 기관에 맡기기로 했는데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필통>  이후 쌍용차지부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갑호>  기존에 해왔던 농성 등의 투쟁은 정리하지만 선전물 발행 등 노동조합의 기본활동은 계속한다. 평택에 3명, 창원과 정비지회에 각 1명씩 5명의 상근활동가는 일상활동을 하면서 다른 투쟁현장에 열심히 연대할 계획이다. 한편 희망기금에서 일정부분 지원이 된다고 해도, 아직 복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대기 상태에 있는 해고자들의 마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필요한 부분을 챙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창원공장은 이번에 2명이 복직하고 14명의 해고자가 남았는데 아무 탈 없이 14명 모두 복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번 노노사 합의가 이루어진 데는 쌍용차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의 여론도 큰 요인이었다. 오랜 기간 지속했던 대한문 앞 농성장을 정리하고 평택 쌍용차 공장 앞으로 투쟁의 근거지를 옮긴 것도, 두 명의 동지가 공장 안에 있는 굴뚝에 올라갈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복직을 위해선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힘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쌍용차 기업노조 선거에서 해고자 복직에 우호적인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도 결국은 현장 동료들의 힘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이번 합의 과정에서 쌍용차 기업노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창원공장 정문 앞에서만 출근투쟁을 해왔는데, 노노사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 창원공장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6년 반 만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비록 현장까지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감회가 남달랐다. 노동조합 사무실을 나오며 퇴근하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전에는 공장 문밖에서 인사를 했다면 그 날은 공장 안에서 대기 중인 통근버스 앞에서 인사를 했다. 장소로 따지면 불과 몇 십 미터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복직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뭉클했다.


 

2015년 9월 인도 원정투쟁 당시 “쌍용차 해고노동자 연대의 날” 모습


<필통>  이갑호 지회장도 해고자이니 복직해야 할 텐데, 언제 복직하게 되나?

<이갑호>  사실 이번에 12명이 복직할 때 나도 면접을 보았다. 복직 순서는 노동조합이 그 동안 투쟁에 결합한 것 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했는데, 회사는 인사권은 회사에 있다고 주장하므로 일정부분은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12명의 2배수인 24명이 면접을 보았고 나도 그 24명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나도 사람이다 보니 면접 전까지는 마음이 좀 복잡했다. 하지만 창원지회장으로서 해고자들이 차례로 복직하고 창원공장에서 마지막 순서로 복직하는 해고자들과 함께 복직하는 것으로 정하고 나니 면접 당일에는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회사 면접관들에게도 “나는 창원공장 해고자들 다 복직시키고 가장 마지막 차례에 함께 복직할 것이다”라고 얘기했고 스스로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웃음). 평택공장과 정비지회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을 책임지고 있는 집행부가 끝까지 남아 가장 마지막 차례로 복직하는 해고자들과 같이 복직할 것이다.

<필통>  끝으로 지역의 동지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이갑호>  2009년 여름 77일 동안의 점거파업 전까지는 노동조합 집행부는 물론이고 대의원 한번 해 본 적 없는 평조합원이었다. 그러던 내가 파업 이후 사무장과 지회장을 맡으며 6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복직의 물꼬가 트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연대해 준 동지들이 없었다면 쌍용차 투쟁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고 나 역시 이 자리에 지금처럼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지역의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 첫 번째 복직이 시작된 만큼 해고자들이 모두 복직하고 나도(!) 복직할 때까지 쌍용차 투쟁에 계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창원과 평택을 왔다갔다 하고, 어찌 보면 평택에 가있을 때가 더 많아서 지역의 투쟁에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죄송하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지역의 투쟁에도 함께 하겠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