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고무 파업 대강大綱과 ― 그 삽화揷話 二三 제3호 (1930년 9월) 신문안新聞眼에 비취인 대사건大事件 평양 고무 파업 대강大綱과 ― 그 삽화揷話 二三 중외일보中外日報 김만형金晩炯 평양에 있어서 과거 10개월 동안에 일어난 중요한 노자쟁의勞資爭議를 들어본다면, 저 유명한 양말직공맹파盟罷를 필두로 인쇄직공맹파, 수상운반조합맹파水上運搬組合盟罷 등이 잇섯고, 최근에 들어서는 산십조제사공山十組製糸工 6백 명의 맹파를 가르칠 것이나, 기질其質과 양量에 잇서서 또한 파업단의 일사분란한 견고한 그리고 훈련訓鍊잇는 침착불굴沈着不屈하는 진용陣容에 잇서서 금번今番에 닐어난 11개 고무공장종업직공 2천3백여 명의 맹파를 제일 중대시重大視할 것이니 이 맹파야말노 평양 유사이래에 처음 보는 대노자大勞資의 쟁의일 것이다. 이제 파업 전말顚末과 파업 중 일어난 2~3개 삽.. 더보기 나는야 하늘 아래 연돌남 おれは天下の煙突男 “평양 명승 을밀대 옥상에 체공녀(滯空女)가 돌현(突現)하엿다. 평원고무직공의 동맹파업이 이래서 더 유명하여 젓거니와 작년 중 노동쟁의의 신전술을 보여준 일본 연돌남(煙突男)과 비하야 호대조(好對照)의 에피소드라 할 것이다” ― 무호정인無號亭人, ‘을밀대 상의 체공녀, 여류투사 강주룡 회견기’, 제23호(1931년 7월) 한국 노동운동 최초 고공농성인 1931년 평양 을밀대 고공농성, 그 주인공인 강주룡을 인터뷰한 글은 위와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글쓴이는 강주룡을 ‘체공녀’라 부르며 일본의 ‘연돌남’과 비교하고 있는데, 궁금해 찾아보니 연돌남이란 일본 노동운동 최초로 1930년 11월 후지가스방적 가와사키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다나베 기요시를 칭하는 말이었다. 일본어판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면 .. 더보기 민주노총 건설과 전노협 해산 평등사회, 노동해방 기치로 건설한 노동자의 조직 전노협 정기대의원대회는 대학에서 주로 열렸다. 사수대가 정문을 지키고 수배상태인 지도부가 몰래 숨어들고 대의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야 대회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노협 위원장은 추대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선출이라기보다는 결의를 모으는 과정이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하지만 전노협 제5대 위원장 선거는 1994년 1월 23일 경선으로 치러졌다. (선거관리규정도 이때 만들어졌다.) 김영대, 이흥석, 양규헌이 후보로 나섰다. 1차 투표에서 대의원 325명 중 양규헌 후보가 151표, 이흥석 후보가 100표, 김영대 후보가 73표를 받았다. 결선투표에서 172표 대 148표로 양규헌 후보가 당선되었다. 선거 유인물에는 조직발전 전망과 관련한 쟁점이.. 더보기 이전 1 2 3 4 5 ···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