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아(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의 중국인 유학생 성추행 파문, 신임 총장의 연구비리 논란, 교수들의 수 억원 대 국가보조금 횡령, 미래라이프(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의 졸속 추진까지….... 올해만 해도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터져왔던 창원대학교. 학교 밖 뉴스나 신문에서는 비리를 들추는 이야기로 떠들썩한데, 정작 학교 안에서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학교의 행정은 더욱 신나게 ‘일방통행’한다. 학교 어디에도 학생이 한 구성원으로서 학내 정치에 참여할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학교 안에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서 ‘정치’는 지워지고 말았다. 잊혀지고, 무감각하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누구든 학내에서 정치를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정치적 선동’이자 ‘학내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이름 매겨지기 쉬웠다. 총학생회의 주요 사업은 ‘시험기간에 간식을 나눠 주기’, ‘축제기간에 인기 있는 연예인 섭외하기’쯤으로 전락해 버렸다. 심지어는 미래라이프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총학생회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학교의 발전을 저해하지 말고 수업이라는 본연의 의무에 충실해달라.’ 정치적인 목소리를 틀어막는 아주 정치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분위기는 조용했다. 우리에게 정치란, 민주주의란 사실 한 번 만져 보지도 못한 환상과 같은 것이었다.
최순실-박근혜로 사회가 떠들썩 해졌다. 그러자 꿈쩍할 것 같지도 않았던, 그런 암울하고 고요했던 이 학교의 한 켠에서 촛불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참다 참다 못해 나왔다’며 너도 나도 오랫동안 쌓여왔던 이야기를 풀어갔다. 최저임금 받는 알바하면서, 학점 따기 위해 핫식스 들이키고 밤 새가면서, 따로 취직 준비까지 해야하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흔한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이게 정치였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첫 발이었다. 우리가 가졌던 환상이 세상 앞에 여실히 까발려진 지금, 학생들은 정치를 원하기 시작했다. 박근혜와 헬조선이, 그리고 헬조선과 나의 삶이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우리는 일상에서 정치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확인시켰다. 내가 사는 오늘을 바꾸기 위해서는, 바로 오늘, 지금 내가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 하굣길에 촛불 하나를 들고 잠깐의 추위쯤 견디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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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윤성효)
창원대학교 학생 시국선언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최순실의 버려진 PC에서 시작해 연일 보도되는 내용은 허탈함과 상실감을 넘어 5천만 국민의 단결된 분노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었고, 권력은 사유화 되었다.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실세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수많은 특혜를 누릴 뿐 아니라 국정을 운영해왔으며, 재벌기업들의 지원, 미국자본의 로비 등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세월호 침몰과 개성공단 폐쇄, 국정교과서, 위안부합의 등 그간 생겨난 사회문제들이 대통령이 보여줬던 무능함과 불통을 넘어 이번 사태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국가 권력에 분노한다. 이러한 미증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치권과 검찰, 경찰, 언론의 모습들은 반성과 변화의 기미가 없어 국민을 통탄에 빠뜨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과 여당은 비선실세와 그 관계자들이 저지른 비리를 축소하고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검경찰은 최순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보장하고 거짓수사 하고 있으며, 오히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의 목을 꺾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불법사찰을 하는 등 비선실세 관계자들을 비호하고 있다. 언론은 이번 사태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음에도, 최순실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춰, 국민들이 더 많이 알아야할 부패한 권력구조와 전 국민적 분노를 조명하지 못하는 등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사회에 순응하는 학생이 되지 않겠다. 우리 학생들은 그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학업에 매진해야 한다는 말을 국가와 사회로부터 강요받아왔다. 열심히 노력해야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성사회의 말을 믿어 그저 침묵하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밤을 새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이 사회에서 우리 청년학생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노력과 열정, 창의성이 아닌 부모의 능력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입학을 하고, 출석하지 않아도 제적당하지 않으며, 부의 대물림으로 또 다른 권력자가 될 수 있는 불평등한 계급사회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은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묵묵히 노력하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순응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청년학생이 앞장서서 바꾸어 나갈 것이다. 부모가 국가적 범죄를 일으켜 얻는 부와 권력이 자신의 능력이 되는 이 사회의 권력구조와 부조리함을 바꿔 낼 것이다.
이에 창원대학교 학생들은 선언한다. 정치권과 검.경찰은 이번 사태와 관련된 부조리들을 명백히 밝혀내고 처벌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초유의 사태로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희롱한 책임을 다하고 퇴진하라. 우리 대학생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오는 그 날까지 미래세대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을 이어갈 것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2016년 11월 9일.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는 창원대 학생 1780인.
(사진=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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