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https://www.facebook.com/ejunghee)
지진은 분명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파트 12층이어서 그런지 아파트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는, 마치 커다란 괴물이 아파트를 옆으로 잡고 흔드는 느낌이었다. 같이 흔들리는 몸을 중심 잡고 있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등이 뻐근했고 그와 동시에 등 뒤로 소름이 확 끼쳤다. 실제로는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 체감상으로는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진앙지가 있는 경주도 울산도 아닌 거제에서도 지진의 충격은 엄청났다. 한창 다른 일에 몰두해 있다가 지진을 겪고 나니 모든 게 무의미해졌다. 서울 갔다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남편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고 지진 소식을 찾아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가 한 시간이 채 안 지나서 두 번째 지진이 났다. 책장에 기대놨던 보드판이 떨어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연결된 상태에서도 지진의 진동은 계속 됐고 전화기를 붙잡고 거의 울부짖으며 얘기했다. "어떡해? 무서워.. 나 어떡해야 돼??"
지진이 한 번 일어났을 때도 많이 놀랐지만 지진이 연속으로 일어나니까 이건 질이 다른 충격과 공포였다. 언제 지진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핸드폰만 달랑 들고 집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소리가 웅성웅성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남편한테 계속 전화가 왔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한숨 돌린 후에 텔레그램과 페북 메신저로 남편에게 무사히 빠져나왔음을 알렸다. 근처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오전에 내린 비로 젖어 있는 벤치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정신 없이 나오다 보니 핸드폰 밧데리도 20%밖에 안 남아 있다. 밤이라 조금 춥기도 하다. 좀더 신중하게 챙겨서 나올 걸 후회가 된다. 공원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 땅이 울렁거리는 느낌이다. 밖에서 한 시간 넘게 보내다 사람들도 서서히 줄어들고 때마침 남편도 돌아와서 남편과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저녁에 일어났던 두 번의 지진의 여파는 지금도 남아 있다. 첫 번째 지진이 놀람과 충격이었다면 두 번째 지진은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언제 다시 큰 지진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
이런 두려움은 일종의 노이로제가 됐다. 지진이 나면 바로 밖으로 뛰쳐 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집에서도 옷을 갖춰 입게 되고, 뛰쳐나가면서의 동선을 몇 번씩 그려보기도 한다. 12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가야 되니까 신발은 될 수 있는 한 편한 걸 신고, 옷은 밤 되면 쌀쌀할 수 있으니까 따뜻한 옷을 챙겨야 되고, 계속 인터넷으로 상황을 봐야 되니까 핸드폰 보조 밧데리도 반드시 챙겨야 되고 머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담요도 챙기고 멀리 이동해야 될 수도 있으니까 차키도 챙기고 등등등. 이런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리다가 샤워할 시간이 되면 불안하다. 샤워하는 동안 지진이 나면 어떡하지? 샤워하다가 바로 뛰쳐나가지도 못하는데.. 결국 불안한 마음에 하는둥 마는둥 빨리 씻고 나오게 된다.
어젯밤에도 집이 살짝 울렁거리는 느낌이 있다. 여진인가? 지진이 온 뒤 이게 여진인가 내가 어지러운 건가 느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진앙지가 있는 경주도 아니고 울산, 포항도 아닌 경남 거제여서 여진이 실제로 느껴질리는 없다. 그런데 몸은 계속 울렁거린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창에 여진을 검색해 보면 실시간으로 "방금 경주 여진 느꼈어요", "방금 대구 여진 맞죠?" 이런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누구는 진도측정기 어플을 깔고 누구는 투명컵에 물을 따라놓고 여진을 직접 관찰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진 이후에 300여 차례의 여진이 있었다 하니 이런 지진 노이로제가 전혀 실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진 상황이 올라오는 실시간 댓글에 "이제 좀 그만해요"라거나 "여진 느낀다는 분들 일상생활 가능해요?"라고 비꼬는 글들이 올라온다. 처음에는 여진이 없을 거라던 기상청은 여진이 점차 잦아들고 있어서 안심하라는 얘기만 되풀이한다. 여진에 대해서도 실시간 발생현황은 확인할 방법도 없고 몇 시간에 한 번씩 발표하는 기상청 자료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SNS나 뉴스 댓글에 실시간 상황을 남겨서 자기 경험을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나 혼자만의 노이로제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이게 서울에서 일어났어도 이렇게 조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령, 남부지방에 비가 억수로 많이 쏟아져도 서울이 화창했다면 남부지방 피해상황은 단신으로 처리된다. 반대로 남부지방은 화창했는데 서울엔 비가 많이 왔다면 몇 꼭지에 걸쳐 다뤄진다. 얼마 전에는 주민세 인상 논란을 보면서 서울의 주민세가 두 배로 올랐다 해도 이렇게 조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제 지진도 마찬가지다. 지진이 만약 서울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공중파에서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여진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그렇게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진이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얘기한다. 핵발전소, 방사물폐기장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했는데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두 차례의 지진 자체만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별일 없는 하루가 정말 한 순간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계속 불안하다.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 번 놀란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진이 던져준 일상이 아닌 경험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불안함과 공포들은 충분히 말해져야 한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았더라도 한 번의 강렬했던 경험이 준 충격, 놀람, 공포, 두려움은 계속 말해져야 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지진으로 인한 노이로제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다음에 또 지진이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지진은 계속 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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