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문 / 사.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2007년 5월 7일.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경남을 만들기 위해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이하 경남협의회)가 출범하였다. 중증장애인 스스로의 목소리로서, 중증장애인의 참여와 활동이 보장되는 사회로 개혁하고자 당당한 실천을 결의한 출범선언문의 내용은 여전히 우리가 장애운동을 우선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경남협의회의 출범은 조금 독특하다. 바로 ‘장애인정책과 예산 분석’을 통해 나와 함께 공부하던 10여명의 장애인들이 경상남도의 자립‧사회참여정책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게 된 후, 계획된 차별에 대한 분노를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분노는 경남협의회의 출범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경상남도를 비롯한 10개 시( 당시 경상남도는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되기 전이어서 10개의 시와 10개의 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음)를 모두 찾아다니며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과 저상버스의 연도별 도입계획 수립 및 시행, 각 시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조례 제정, 경상남도 통합이동지원센터 설치, 활동보조 시추가 68시간(최대78시간) 확보, 공무원대상 장애인식개선교육 연1회 실시 등을 실현시켰다. 이 외에도 호흡기‧심장장애인에 대한 전동휠체어 보급, 장애수당 추가보조, 기초수급장애인 대상 보철치료비 지원, 자립체험홈‧자립주택 매년 5개소 설치, 탈시설 장애인 초기정착금 및 임시거처지원비 지원,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설치, 장애인평생학교 설치, 장애인차별상담기관 설치 등도 정책으로 도입시켰다.
이 대단한 일을 시작한 10여명의 장애인은 매년 늘어나 100명, 500명, 1000명이 되었고, 현재 15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또한 마산‧창원‧진해‧밀양‧양산‧김해‧통영‧장유‧거제에 소속센터가 설립되어, 각 지자체의 장애인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중심단체로 우뚝 서고 있다.
단체가 이 정도의 성장을 경험하고 나면, 내부갈등과 활동침체 등으로 단체의 출범목적은 상실되고 단체운영에 급급한 조직이 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하지만 출범8주년을 맞은 경남협의회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일까. 여전히 탄탄한 조직력과 동지애를 과시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그 힘은 또 다른 조직의 탄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바로 경남장애인차별상담네트워크이다.
한국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권리옹호기획사업(3년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경남장애인차별상담네트워크가 운영되었다. 이를 계기로 경남도 전역에 차별상담전화를 설치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장애인들을 위한 상담지원‧법률자문‧진정서작성대행‧소송지원 등의 업무를 본격화할 수 있었다. 또한 경남 18개 시·군 공공기관(1,012곳)과 초‧중‧고 학교기관(789곳), 그리고 대학기관(23개 대학 297곳)을 중심으로 편의시설 및 정당한 편의제공 모니터링 (편의시설 및 정당한 편의제공 모니터링 결과 : (이행률100%기준) 공공기관 34.4%, 초․중․고 학교기관 44.6%, 대학기관 41.5% )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 사업의 성과로서 경상남도는 5년이내 연차별 편의시설 확충계획을 수립‧설치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게 만들었고, 경남교육청은 브리핑을 통해 2015년까지 300억원이상을 투입, 편의시설 100%확충을 약속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알리며 장애인 권리옹호를 위한 활동에 앞장서는 조직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2011년, 경상남도와 함께 실시한 ‘경남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실태조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을 안겨준 사업이었다. 조사 결과, 시설 내에서 인권침해나 인격손상을 경험한 바가 있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73%나 되었고, 시설을 나가고 싶다고 말한 장애인도 62.9%나 되었으나 가족과 시설측의 탈시설 반대, 그리고 자립정보 및 자립훈련 부족으로 탈시설을 결심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사업 이전에는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을 위한 정책마련에 치중하였다면, 이 사업 이후에는 현재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인권정책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 생겨난 우리의 새로운 비전은 ‘경상남도장애인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에 관한 조례안(이하.장애인권조례안)’에 담겼다. 현재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만이 아닌, 시설거주 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조항들을 추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추가된 이 조항들로 인해 4년째 경남도의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시설측이 거주장애인에 관한 조항들의 전부삭제를 요청하여 반대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아직까지 이 사회는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보다는 대규모시설장과 종사자들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주객전도된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삶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다. 따라서 자신이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등 자기결정권을 갖는 대신, 삶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장애를 이유로 본인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지역에서 살지, 몇 시에 밥을 먹을지, 몇 시에 잠들지, 통장의 돈을 어떻게 쓸지 등을 모두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받는 것은 분명 차별이다. 이렇듯 복지서비스를 비롯한 전 사회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분리‧배제‧제한‧거부되는 현상을 막아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창립이후 지금까지 가슴 아픈 일도 여러 번 있었다. 2013년 10월 4일, 오랜 세월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차별받고 억압당하다 탈시설하신 이정금씨가 거주시설에서 사는 동안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 되어 끝내 숨을 거두었고, 같은 해 6월 12일에는 심장‧호흡기장애를 갖고도 창립부터 열정적으로 함께해왔던 통영지부센터 설안순 소장을 떠나보내야 했다. 누구보다 장애인권조례 제정을 염원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해 오셨던 故 이정금, 故 설안순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가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 나도 포함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장애해방을 향한 우리의 염원이 경남협의회의 활동으로 살아 움직이는 한 우리는 여전히 동지로서, 함께일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자립생활로 향한 열망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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