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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노동개악에 근본적으로 맞설 계급형성전략이 필요하다

 

 

 

 

이장규( 이글은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에 게재한글을 일부수정하여 보내주셨습니다)

  본 글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를 노동체제1)의 변천과 연관지워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한편, 이런 역사적 고찰을 통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노동자가 하나의 계급으로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가 현재의 노동개악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여론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노동개악에 대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대응 역시 당장의 노동개악 저지투쟁을 넘어서서, 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묶어세우기 위한 계급형성전략이 다시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노동자계급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선 노동자가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개별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며, 이는 생산과정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적 내지 결정론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계급운동이라는 집합적 행위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계급으로서의 노동계급은 저절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집합적 행위자로서의 노동계급은 공통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의식 즉 계급의식을 분명히 지녀야 한다. 이런 계급의식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나 제도의 영향 아래 행위자의 역할을 통해 형성되어지는 것이기에, 결국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은 미리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주체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개별 노동자들이 하나의 집합적 행위자로 형성되는 과정이 이른바 ‘계급형성’이다. 계급형성은 ‘조직적 형성’과 ‘이념적 형성’으로 나뉘어진다. 조직적 형성은 노동자가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 결속력을 갖는 것이고, 이념적 형성은 그렇게 모인 노동자들이 어떠한 계급적 목표를 지향하느냐의 문제이다. 하지만 조직적 형성이건 이념적 형성이건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기본적인 계급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때의 기본적인 계급의식이란 노자관계의 본질이나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정확한 인식 등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업장이나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이 나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적어도 저 사람과 내가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함께 싸우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어야만 집합적 행위자로의 형성 즉 계급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87년 노동체제 -- 불안정했으나 가능성이 있었던

  이제 그간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한국에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이 시작된 것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부분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 등이 존재했으며, 87년 노동자대투쟁 또한 80년대 초반부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학생운동의 현장이전이나 카톨릭노동청년회나 노동상담소 같은 노동운동 관련 외곽조직들의 활발한 활동 등의 전사(前史)가 축적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나, 광범위한 사업장에서 대중적인 노동운동이 시작된 것은 87년부터이고 이 때 형성된 노동체제를 흔히 87년 노동체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87년 노동체제는 제도적으로는 많은 한계를 애초부터 지니고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별 노조 체제였다는 것이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개별 기업 단위에서 결정되는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는 노동자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또한 개별 기업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에 단위사업장을 뛰어넘는 정치,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노동계급이 형성되기 어렵다.

  하지만 87년 노동체제는 완전히 확립되었다기보다 그 자체가 형성 과정에 있었거니와, 기업별 노조 체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당시에는 대공장의 투쟁이 전체 사업장의 투쟁을 선도하는 성격이 강했다. 쉽게 말해 대공장의 임금이 오르면 중소사업장 또한 어느 정도는 임금이 함께 올랐기에 대공장과 중소사업장 노동자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측면이 강했다. 둘째, 학생운동 출신이나 외곽조직 활동가들의 영향력이 강했거니와 80년대 초반에 급격하게 확산된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력 등으로 인해 적어도 지향점이란 측면에선 단위사업장을 뛰어넘는 전체 사회의 변혁이라는 이념적 목표가 있었기에 단위사업장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셋째, 지역별로 연대투쟁의 기풍이 강력했기에 한 사업장의 투쟁에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연스레 연대하는 등 기업별 노조 체제를 뛰어넘는 실천들이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노동운동 내에서의 기본적인 계급의식은 상당히 강력했다.

  결국 기업별 노조 체제라는 87년 노동체제의 한계는 처음부터 아예 극복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87년 노동체제 자체가 형성기에 있는 불안정한 체제였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기에 이후의 전개과정에 따라선 노동계급이 제대로 형성되는 길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의 전개과정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97년 노동체제[각주:1] -- 계급내 분할의 본격화
 
  87년 노동체제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개별 사업장 특히 대공장에서는 노동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강력했기에 자본과 국가는 노동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96년의 노동법 개악 시도 등이 대표적이거니와, 이 노력은 97년 IMF사태로 인해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정리해고의 도입 등으로 새로운 노동체제가 구축되었는 바 이를 97년 노동체제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97년 노동체제는 계급내 분할을 본격화하는 체제였다. 정리해고 도입은 단순히 대공장 노동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공장보다는 노동시장 전체에 미치는 효과가 더 중요했다. 경제위기를 기화로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이 전면적으로 확산되었거니와, 정리해고의 위협은 대공장 노동자들로 하여금 비정규직 등을 자신의 고용불안의 방패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실제로는 더 중요하다. 생각보다 대공장에서 실제로 정리해고가 이루어진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 체제라는 한계가 주어진 상황에서, 대공장 등 조직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은 자신들의 시야를 단위사업장 차원으로 한정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결국 대공장과 중소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계급 내의 분할이 본격화되도록 만들었다. 이른바 ‘노동귀족’론의 씨앗이 이 때 뿌려진 셈이다.

  물론 노동운동이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별 노조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산별노조운동이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진보정당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둘 다 타이밍이 약간 늦었다. 기본적인 계급내 연대의식이 살아있었고 경제도 호황이었던 90년대 초반에 산별노조로의 전환이나 진보정당 건설이 이루어졌다면 이후의 전개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쳤고, 이 위기의 극복방향이 90년대 초반에 급격히 성장한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이었으며,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등으로 전체 사회의 변혁이라는 이념적 목표가 흔들리는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상황이었다. 그 결과 산별노조나 진보정당을 제대로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겉으로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당장의 내 공장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어긋남이 쌓인 결과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한국의 노동시장과 노동계급은 완전히 분할되었다. 대기업은 온갖 방법으로 중소기업을 쥐어짜기만 할 뿐, 노동운동조차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도 격화되었으며, 정규직 고용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신규고용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충당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서로를 하나의 계급으로 생각하기는커녕 서로 적대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87년 노동체제에서의 계급형성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노동자는 사실상 두 개 이상의 계급으로 내부분할되었다.

  노동개악 -- 정규직에 대한 공격, 그리고

  97년 노동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결과가 바로 지금의 ‘헬조선’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에게는 헬조선일지언정, 최근까지만 해도 대기업에게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일부 대기업은 글로벌기업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성장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편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기를 덜 겪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었으며 그간 잠재되어 있던 한국 대기업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품소재나 설계 등 핵심원천기술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 여건이 어려워지자 제조업의 경쟁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그런데 이런 제조업의 위기는 단순히 외부 여건 때문이 아니다. 제조업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시장의 분할에 따른 숙련노동의 약화 때문이다.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선 숙련된 노동력이 필수적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쥐어짜는 현재의 노동체제 하에서 숙련을 통한 기술의 확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본은 그동안 이를 철저히 무시했고 그 결과 외부 여건의 악화와 맞물려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략은 정규직을 공격하는 것 뿐이다. 이미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쥐어짤대로 짰기 때문에 더 이상 공격할 꺼리조차 별로 없다. 결국 쥐어짤 여력이 있는 곳은 대기업 정규직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은 정확히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든 일반해고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든 일차적인 공격 대상은 대기업 정규직이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이미 지금도 임금피크제와 무관하며 일반해고 및 계약해지를 늘 당하고 있고 취업규칙도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상을 국민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현재의 노동개악에 대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노동개악에 찬성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한다고 청년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으리란 것쯤은 청년들도 알고 있다. 일반해고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원론적으로는 좋지 않은 것임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판에, 대기업 정규직을 공격해서 그들의 ‘특권’을 해체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약간이라도 나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니네들도 이제 좀 당해봐라’는 생각조차 있는 듯하다.

  결국 현재의 모습은 97년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오랜 분할의 결과 스스로를 하나의 계급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된 노동계급의 형성에 철저하게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노동계급 형성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을 공격하는 현재의 노동개악으로 제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도 명확하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제조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특권 때문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쥐어짤 뿐 숙련노동을 통한 원천기술의 확보를 무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판에 대기업 정규직들까지 쥐어짜는 식으로 단기적인 자본의 이익에만 급급할 경우, 숙련노동의 약화에 따른 제조업의 위기는 지금보다 더 심화될 뿐이다. 잘못된 위기 대응은 더 큰 위기를 불러온다.

  사정이 오히려 이러하기에, 현재의 노동개악에 대한 대응은 일차적인 공격대상인 대기업 정규직의 문제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어쩌면 이른바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일부는) 대기업 정규직이 주 공격대상인데 우리가 왜 이를 저지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숙련노동의 약화로 인한 제조업 위기의 피해는 대기업 정규직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가 받거니와, 그 피해의 정도 또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또한 숙련노동 등 노동의 가치를 자본이나 국가가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경제도 살아나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더 나은 기회와 노동조건이 주어질 수 있다. 그간의 현상만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그간 끊임없이 실패해 온 노동계급형성을 위한 출발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기업 정규직을 위해서만 싸우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들 또한 그동안 노동자 계급 내부의 분할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자신들의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을 우선시하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을 오랫동안 외면한 결과, 드디어 자신들까지도 위태롭게 되었음을 철저히 자각해야 한다. 조금만 길게 보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과 본인들이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노동계급을 하나로 형성하는 데 대기업 정규직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그 출발점으로 우리 노동당이 제안하고 있는 것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앞장서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여러 가지 다른 의의도 많지만, 이 글의 맥락에서는 고용 즉 일자리와 연결된다. 임금피크제 실시해본들 실제로는 일자리는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반면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안 중 하나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앞장서서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야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및 실업자 등 불안정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결합할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불안정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늘어남으로써 공통의 이해관계가 만들어지기에, 노동시간 단축은 계급형성전략의 일부이기도 하다.

  또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에도 대기업 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함께 싸워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들에게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거니와, 대기업 정규직들 또한 이것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계속 강조하듯이 하나의 노동계급을 형성하기 위해 같이 싸우지 않으면 결국에는 대기업 정규직이 주공격대상이 된다는 것을 현재의 노동개악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이 특히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게는 실질임금의 심각한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으므로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대기업의 경우에도 노동시간 단축이 일정 정도의 실질임금 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바, 이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부분은 기본소득이나 사회복지의 강화 등 이른바 사회임금의 확충을 통해 보충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임금의 확충은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임금 이외의 간접소득을 늘린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및 사회임금 확충은 우리 노동당이 현재의 노동개악을 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정책대안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정책이나 선거공약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대안들은 계급형성전략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의 노동개악 국면이 역사적으로는 계급형성의 실패와 연관되어 있으며, 앞으로 우리 운동이 일차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또한 다시 노동계급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적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1. 노동체제(labor regime)라는 개념은 아직 엄밀히 정의된 학문적 개념은 아니지만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작업장 노사관계 등 다양한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제도적 양식 및 이에 대한 국가-자본-노동의 대응 양식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