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는 자주―평화―통일>
저는 민주노총이 만든 제주4.3민중항쟁 자료집의 내용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그 기조(방향성)에는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료집은 큰 틀에서 자주―평화―통일을 기조로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셋은 그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4.3항쟁과 그리고 연장선에 있는 1950년 한국전쟁과 관련해 볼 때 ‘평화―통일’의 문제에 대한 매우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있어야 합니다.
4.3항쟁의 발생 원인은 해방 공간에서의 모순에 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군정에 빌붙은 친일파가 득세했습니다. 미군정 하에서 민중들의 삶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고, 모두가 염원하던 자주독립국가의 수립이 아닌 미국―소련(외세) 대립의 영향으로 분단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다른 곳이 아닌 제주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 데에는 서북청년단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북에서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 내려온 그들은, 제주도에서 온갖 폭력과 악행을 자행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중봉기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억압에 대한 민중의 저항으로서 4.3민중항쟁은 정의로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4.3민중항쟁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정치세력으로서의 남로당의 선택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중봉기가 총을 들고 싸우는 무장투쟁의 방식이 된 것은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것이 아닌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위원회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군사주의적 편향’이 있었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통일 사이의 긴장 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안타깝게도 한국은 자주독립국가의 길이 아닌 남북 각각 단독정권 수립이라는 분단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미군정과 이승만/친일파 세력의 선택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한을 점령한 소련과 김일성 정권의 선택도 있었습니다. 즉, 해방 이후 한국 운명의 결정권을 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외세는 서로 대립하며(냉전) 각각 한국의 반쪽에 자신들과 친한 정권을 세우는 분단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 기댄 남한의 이승만 정권과 북한의 김일성 정권 역시 그러한 외세의 선택을 따라 분단을 선택했습니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1948년 8월 15일 남한에서 이승만 단독정부가 수립된 지 25일 뒤인 9월 9일 북한에서 김일성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은 이를 증명합니다.
이렇게 남북에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을 받는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면 과연 그다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남북 단독정부 수립 이후 통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안타깝게도 남북한 단독정부 모두 선택한 방법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실제로 현실에서 감행한 데에는 북한 김일성 정권의 역사적 책임이 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승만 역시 틈만 나면 전쟁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침은 개성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그냥 호언장담만 할 줄 알았지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이후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을 쓴 부루스 커밍스라는 학자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역사관은 한국전쟁의 주범(?)으로 이승만 정권이 아닌 미국을 지목했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생한 것이 아니라 남북한 단독정권 수립 이후 이미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사이의 끊임 없는 전투가 있었고 그것은 언제라도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전면전으로 확대된 시점이 1950년 6월 25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950년 6월 25일 누가 먼저 총을 쐈느냐, 누가 먼저 전면전을 시작했느냐는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정주의’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전략입니다. 미국이 북한으로하여금 전면전을 일으키도록 유도했다는, 이른바 ‘롤백’ 전략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아시아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북한이 전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진 이후 소련에서 한국전쟁 관련한 많은 자료가 공개되면서 ‘수정주의’ 주장과는 다른 자료들이 확인됩니다. 한국전쟁은 그 당시 정권의 경제적, 군사적 힘에 있어서도, 정권의 정통성에 있어서도 이승만 정권보다 우위에 있었던 김일성 정권의 선택이었고, 그러한 김일성 정권의 선택을 소련 스탈린 정권과 중국 모택동 정권이 승인해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처럼 수백만 명 민중의 죽음을 가져온 한국전쟁에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 그리고 소련과 김일성 정권 모두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따지자면 전쟁을 계획하고 실제로 감행한 김일성 정권에 더 큰 역사적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순전히 북한 정권의 관점이며, 전쟁과 그 결과(분단의 고착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문제가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책임을 따지려고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분단된 상황에서, 그것도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통한 통일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평화―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전쟁―통일’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와 통일이 자연스럽게 당연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고민과 실천의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쟁과 평화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제주4.3항쟁 역시 한국전쟁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친일파 득세와 미군정 하에서의 민중 생존권 위기라는 해방공간의 모순은, 특히 서북청년단의 만행이라는 요인이 더해져 제주도에서 언제라도 민중봉기로 터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장투쟁’이라는 방식의 민중봉기를 선택한 것은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위원회였고, 이 같은 선택에는 한국전쟁을 시작한 북한 김일성 정권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밑바탕이 깔려 있던 것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같은 고립된 섬에서 무장투쟁을 선택한다는 것은, 전면적 전쟁을 염두해 두지 않는 한 파국적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제주도 무장투쟁이 성공해 제주 전역을 무장유격대가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남북한 사이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고립되어 진압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석범 선생의 대하소설 <화산도>는 문학적 설정일지 몰라도, 무장투쟁을 선택한 남로당 제주도당 지도부가 북한의 지원군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소설 <화산도>는 제주도의 무장투쟁은 북한군의 지원을 기대, 예상, 계획하고 선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주4.3항쟁 역사기행을 하며 외세의 문제, 분단의 문제, 통일의 문제를 일방통행식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관계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평화―통일, 평화―전쟁 간의 문제는 현재에 있어 ‘북한 핵’을 어떻게 보어야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북한 정권 전복을 위한 미국의 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어쩌면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서의 핵무기 개발은 북한으로서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 민중에게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요? 남한 민중에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모두의 공멸을 불러올 핵전쟁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남한 민중 입장에서는 호시탐탐 북한 정권의 전복을 꾀하는 미국의 전쟁 책동을 비판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한편,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관점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80년대 이른바 운동 진영은 ‘반전’ ‘반핵’ ‘양키고홈’을 구호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한 뒤, ‘반전’과 ‘양키고홈’은 여전히 외쳐지지만 ‘반핵’ 구호는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한에서는 핵발전소 등 반핵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부분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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