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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슬로푸드운동에 초대합니다

 

 

김종덕(경남대 석좌교수/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자본주의 심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게 되면서 근래들어 슬로푸드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미국의 맥도날드가 1986년에 로마에 진출하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와 그의 동료들은 음식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슬로푸드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의 패스트푸드 진출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세븐 일레븐 그리고 맥도날드 종업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미국의 천박한 노동문화까지 이탈리아에 유입될 것을 우려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9년에 파리에서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국제적인 운동이 된다. 슬로푸드 선언문은 1989년 11월 9일 프랑스 파리의 코믹오페라 극장에서 채택되었는데, 선언문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http://www.slowfood.com).

“산업문명의 이름하에 전개된 우리 세기는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고, 이후 기계를 생활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의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음흉한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를 굴복시키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사람은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만족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미 확인된 감각적 즐거움과 느리며 오래가는 기쁨을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효율성에 대한 흥분에 의해 잘못 이끌린 군중에게서 우리가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취적인 해답은 슬로푸드이다.
진정한 문화는 미각을 낮추기보다는 미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경험, 지식, 프로젝트의 국제적인 교환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슬로푸드는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 슬로푸드는 그것의 상징인 작은 달팽이와 함께 이 운동이 국제 운동으로 나아가는데 도울 능력을 갖춘 다수의 지지자를 필요로 한다."

슬로푸드선언문에서는 현대문명을 속도전쟁으로 보고, 이러한 속도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을 슬로푸드 식탁에서 찾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우리의 품위를 낮추기 때문에 추방해야 하고, 그 자리에 미각의 발전을 통한 지역요리의 맛과 향의 재발견이 필요하다고 한다.
슬로푸드 운동이 단기간에 국제적인 운동이 되고, 또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데에는 영국에서 처음 발병하여 전세계로 확산된 광우병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의 내장인 동물성 사료를 먹여서 생겨난 병이 광우병이다. 소의 빠른 성장과 사료비 절약을 위해 해당동물의 생태에 관계없이 양의 내장으로 만든 사료를 먹인 것이 화근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영양성분이 높은 사료를 먹임으로써 단기간에 단백질 생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효율성의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음식생산에서 얼마든지 시간의 벽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이 광우병을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우병은 동물복지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이됨으로써 엄청난 재앙이 되고 있다. 광우병이 확산되면서 그 공포에 떤 유럽인들이 보다 안전하고 믿을만한 음식을 찾았고, 슬로푸드 운동이 전하는 메시지와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슬로푸드운동은 우선 산업형농업(industrial agriculture)에 의한 먹을거리 생산을 반대하고, 소규모 영농, 소규모 가족농이 생산하는 먹을거리를 중시한다. 산업형농업에 의한 먹을거리 생산은 경쟁 때문에 효율성에 중점을 두게 되고, 이것이 환경에 문제를 야기하고, 식품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본다. 반면에 소규모 가족농은 보다 많은 정성을 들여 농사를 지으며, 지속가능한 영농을 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식재를 생산하는 것으로 본다. 소규모 가족농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성장호르몬이나 화학제 등을 사용하기 않기 때문에 식품안전 그리고 영양 면에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으로 본다.
슬로푸드 운동은 로컬푸드를 대안 먹을거리로 제시한다. 농업은 지역의 기후, 토양, 문화 등을 반영하기 때문에 지역농업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EU의 공동농업정책을 반대한다. 글로벌 푸드는 세계시장을 위해 생산된다. 먹을거리의 생산에 지역민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으며, 생산자는 특정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생산하지 않는다. 경쟁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농약, 항생제 등을 사용한다. 장거리 수송을 위해 미리 수확하기도 하며, 수송중 부패를 막기 위해 방부제 등이 살포된다. 따라서 글로벌 푸드는 환경, 영양, 식품안전 면에서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에 슬로푸드운동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로컬푸드는 지역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지역주민을 위해 생산한 먹을거리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는 가운데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호 배려가 작용한다. 생산자는 아는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구입하기 때문에 판매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영농을 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수확한지 얼마 안되어 보다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섭취할 수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대안 먹을거리로 유전자 조작이 아닌 먹을거리를 옹호한다. 주지하다시피 유전자 조작은 그것을 옹호하는 농기업(agribusiness)이나 연구자들의 주장과 달리 먹을거리로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침팬지에게 유전자 조작 바나나와 일반 바나나를 주었더니 일반 바나나만 먹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식품안전은 물론 생물학적 오염, 슈퍼 잡초의 출현 등 환경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받아오고, 사람들이 즐겨 먹던 먹을거리를 중시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또 표준화된 먹을거리보다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는 지역먹을거리를 더 선호한다. 패스트푸드의 확산으로 인한 지역음식의 소멸을 우려한다. 지역의 문화,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지역농산물로 만든 지역음식 그리고 지역음식문화를 옹호한다. 엥겔계수를 좀 높이는 한이 있더라도 소비자가 좋은 음식을 구입해야 좋은 먹을거리의 생산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국제슬로푸드 회장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의 기준으로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정의로운(fair)" 음식을 제시하고 있다. 좋다는 것은 음식이 맛이 있고, 자연성을 갖추고 있고, 문화적으로 부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끗한 것은 먹을거리의 생산과 수송이 지속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정의롭다는 것은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일한 사람들의 몫을 제대로 인정해준다는 것을 말한다. 정의로운 것의 외연을 넓히면 동물복지를 위반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세 기준을 고려할 때 슬로푸드는 다른 어느 음식보다도 온전한 먹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슬로푸드를 이렇게 본다면, 산업화, 세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세계의 곳곳에서,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먹던 음식, 즉 이른바 전통음식이 대표적인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슬로푸드를 살펴보면, 우선 우리의 주식인 밥은 슬로푸드이다. 쌀로 밥을 짓는 과정은 조리기술과 시간, 기다림이 필요하다. 또 쌀에 따라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밥을 달리 지을 수 있다. 밥을 토대로 해서 또 다른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비빔밥, 볶음밥, 김밥, 술, 식혜의 바탕이 되는 것이 밥이다. 우리의 김치도 슬로푸드 그 자체이다. 지역마다 상당히 많은 종류의 김치가 발전되었고, 배추김치, 무김치를 비롯하여 재료에 따라 다양한 김치가 있다. 우리의 술도 슬로푸드다. 고들 밥에 누룩을 섞어 물을 붓고, 일정한 온도로 보온하여 발효가 이루어진 것이 막걸리고, 더 발효가 이루어져 용수를 이용하여 뜬 것이 약주(청주)이고, 청주를 증류하여 만든 것이 증류식 소주이다. 각 지역에서 발전된 그리고 각 집에서 담가먹던 각종 가양주도 모두 슬로푸드다. 우리의 선조들은 막걸리나 청주가 발효되어 쉬게 되면 그것을 이용해 슬로푸드인 식초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류 식품인 간장, 고추장, 된장도 슬로푸드 그 자체다. 이밖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백 가지의 젓갈류도 훌륭한 발효음식이며, 탕류 음식도 음식을 만드는데 장시간의 기다림과 기술이 필요한 슬로푸드다. 우리나라는 슬로푸드인 발효식품만 발전된 것이 아니라 이를 담는 옹기도 일찍부터 발전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살아있는 발효음식을 공기가 통하는 살아있는 옹기에 보관하여 음식의 질을 더 높이는 방법을 고안하여 이용했다. 간장을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맛이 있는 비결은 옹기가 있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많은 슬로푸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중에서 일부는 근대화의 물결과 패스트푸드의 확산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거나 변형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을 선호하게 되면서 오래된 미래음식인 슬로푸드가 외면받고 있다. 김치도 가정에서 덜 담그고 있고, 장류의 경우 공장에서 만든 장류가 가정에서 만들어왔던 장류를 대체하고 있다.그러면서 섭취하는 음식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슬로푸드운동을 살펴보면, 슬로푸드운동이 소개된 것은 2000년경이고, 2007년부터 사)슬로푸드문화원과 슬로푸드 지부가 만들어지면서 체계적인 슬로푸드운동이 전개되었다. 2014년 국가협회인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출범했다. 지금 전국에는 32개 지부에 9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그간 국제슬로푸드 페스티벌도 2차례 개최했고, 사라지고 있는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맛의 방주에는 2015년 기준 62가지를 등재했다.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미각교육방법론을 소개했고, 반 GMO 활동, 식량정의, 차마시는 사회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슬로푸드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분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031-576-1665)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