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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약손할머니

 

 

정희(https://www.facebook.com/ejunghee)

약손할머니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우연히 방문한 지인의 사무실에서였다. 논문 인터뷰를 여기저기 부탁해놓고 있던 차에 지인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이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다고, 사무실에 있는 별도의 공간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해서 사무실을 방문했던 참이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간.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다른 남자 손님이 있어서 사무실에서는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같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엿들었다. 

“한 달 정도 고생했는데 이제 좀 나아진 것 같네.”
“안 그래도 지난 번 봤을 때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지셨어요.”
“계속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고 하니까 폐렴인 줄 알고 검사까지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야. 근데 약을 먹어도 듣질 않고 그래서 고생하고 있으니까 누가 김해 진영에 체기 내리는 할머니가 있다고 가보라고 하대.”
“체기 내리는 할머니요?”
“응. 어제 갔다 왔는데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누우라고 하더니 여기저기 툭툭 만지니까 시원해지더라고. 그 할머니 말씀이 남자들은 체기가 오래 되면 감기가 되고 여자들은 어지럼증이 생겨서 그게 나중에 치매가 된다는 거야.”
“그래서 진짜 괜찮아졌어요?”
“응.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안 나았는데 괜찮아진 것 같아서 오늘 오후에 또 한 번 가려고.”
“안 그래도 예전에 동네마다 체기 내리는 할머니가 있고 또 어딜 가면 속을 게우게 만들어서 풀어주는 할머니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신기하네요.”

누군가는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실소를 터뜨릴 수도 있는 얘기지만 평상시에 소화불량을 달고 살고 소화불량 때문에 한의원도 종종 다니는 나에게는 귀가 쫑긋해질 만한 얘기였다. 게다가 “체기 내리는 할머니”가 주는 어감이 뭔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만난 것 마냥 정겹고 구수하기도 하다.
그래서 용감하게 낯선 사람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서 체기 내리는 할머니가 계신 곳의 위치를 물어봤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그날 오후 바로 찾아갔다.

“김해 진영 OO초등학교 근처 OO상회 옆 파란 대문 집”

OO초등학교까지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쉽게 올 수 있었고, 초등학교 근처에 오자 OO상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파란 대문집만 찾으면 되는데 OO상회 앞에서 내려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하다가, OO상회 오른편으로 조금은 빛바랜 하늘색 대문이 안으로 열려있는 걸 발견했다. 대문 안으로는 복도처럼 기다란 입구가 있었는데 쭈뼛거리며 들어가니 안쪽으로 조그마한 마당과 미닫이문으로 된 방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살짝 엿보니 방 안에는 할머니 네댓 분이 둘러앉아 화투놀이를 하고 계신다. 유리문 앞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혹시, 여기가 체기 내리는 할머니가 계신 곳인가요?” 여쭤보니 더도 안 물어보고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휴, 찾았다!

 

방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은 방에서 할머니 네 분이 화투놀이를 하고 계시고, 한 분은 뒤쪽에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쪽으로 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방 안 쪽으로 들어가 외투를 주섬주섬 벗고 준비를 하는데, 화투놀이 멤버 중 가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 분, 머리가 새하얗게 샌 할머니가 화투패를 다른 분에게 넘기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신다.
처음에는 누웠다가 나중에는 엎드려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기저기 풀어주시는데 누르는 손끝이 맵다. “아야, 아야” 계속 신음소리를 내면서 지압을 받고 있는데 체기를 풀어주면서 할머니가 계속 중얼대면서 하시는 말씀이 참 재밌다.

“이렇게 막혀 있으니까 손끝이 이렇게 차지”
“여자는 체기가 오래 되면 어지럼증이 오고 어지럼증이 치매가 되는 기다”
“참 잘 왔네, 참 잘 왔어. 이렇게 막혀 있던 걸 풀어줘야 붓기도 빠지고 살도 빠진다. 참 잘 왔네.”

이렇게 체기를 내리는 데에 대한 보답으로 만 원짜리 현금을 한 장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고 나온다. 약 5분가량의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의 손이 스쳐간 흔적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몸이 좀 따뜻해진 것도 같다.

그리고 한 달 후, 며칠 째 속이 답답해서 체기 내리는 할머니를 다시 찾았다. 그전에도 소화불량으로 두세 달에 한 번씩은 한의원을 갔었는데 이제는 할머니의 손맛이 더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허탕 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찾았는데 다행히 계신다. 그 전에 뵙던 화투놀이 할머니들도 그대로다. 저번과 같이 똑같이 지압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체기가 좀 심한 것 같다고 내일 다시 한 번 와서 풀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원래 다시 오라는 말 잘 안하는데, 한 번 다시 오면 좋겠네.”
“내일 일요일인데도 계세요?”
“일요일에도 있지. 내일 있을 거야.”
“네,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올게요.”

다음 날 다시 찾았더니 할머니와 다른 한 분만 계셔서 다른 때와 달리 방이 휑하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여유 있게 지압을 받고 앉으니 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여기 OO초등학교가 예전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소학교였어. 일본인들만 다니는 학교였는데 거기 계시던 분이 나를 예쁘게 봐줘가지고 내가 열 살 때부터 이걸 배웠잖아. 참 고마운 분이지. 안 그러면 내가 이 나이까지 뭐로 먹고 살았겠어.”

이 얘기를 듣고 나니 할머니의 살아오신 얘기가 궁금해진다. 김해 진영에서 태어나서 한 평생을 “체기 내리는 할머니”로 살아오신 삶을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마구 생긴다. 하지만 무턱대고 녹음기를 들이밀 수는 없는 법. 할머니와 조금 더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그럼 다음에 올 때 전화 드리고 와도 돼요?”
“그럼, 전화번호 가르쳐줄게. 이제 나이 아흔이니까 내가 죽기 전에 많이 와.”
“네, 다음번에 또 찾아올게요.”

돌아오는 길, 전화번호를 “진영 약손할머니”로 저장했다. 할머니의 손맛을 보러 자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