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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임금피크제 쟁점 정리

 


젊은 노동자에게 적은 임금과 높은 충성심 요구하고,

나이든 노동자는 깍아 내린 임금을 지급하는 반 노동정책

 

                                                     최재기 (경남노동자민중행동)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떨어지는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 회복을 위한 정규직 손보기 프로젝트가 강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최소한의 정당성도 없고, 법적 근거도 없으며, 수미일관하는 논리도 없이 오로지 청와대의 닦달에 공익을 집행한다는 관료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매달리고 있다.

그러니 어거지 논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를 유신시대로 되돌리는 듯하다.
임금피크제 논란의 쟁점을 추려본다.

1. 임금체계

임금체계 개편은 정년연장을 규정한 “...고령자고용촉진법” 제19조의2에 나오는 표현이다. 노사가 협의하여 임금체계 개편을 하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임금피크제 도입 논란은 우리나라 임금체계가 성과급 체계나 연봉제 체계일 경우 성립할 수 없는 논란이다. 오로지 연공급 체제, 즉 호봉제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다.

임금제도는 각 나라마다, 사회마다, 시기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연공급체계가 많은 사업장에 정착하였다. 이렇게 연공급체계가 정착한 데는 우리 사회가 그에 합당한 문화적,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니 성과급제를 도입하기 쉬운 제조업 현장 근로자들도 연공급 요소가 많이 도입되었다.

호봉제는 초임을 적게 받되 나중에 집을 장만할 때나 자녀들이 커서 돈이 많이 들어갈 때부터는 어느 정도 임금을 받아가는 체제이다. 호봉제는 한 회사에 장기간 재직을 염두에 둔 임금제도라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이에 비해 성과급제는 신입직원과 고참 직원간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개인의 업무성과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므로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신입직원 임금은 연공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높이 책정한다. 성과급제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크지 않다. 쉽게 떠나고 쉽게 취업한다. 이민으로 만든 나라인 미국같은 곳에 적합한 임금체계이다.
 
두 임금체제에 따른 노동자 1인의 생애임금총액을 비교하면 호봉제가 더 적다. 호봉제는 20대부터 40대까지는 성과급제에 비해 적은 임금으로, 집장만이나 자녀 학비 등으로 많은 돈이 필요할 50대 이후에는 성과급제에 비해 많은 임금을 받도록 설계된 생애임금체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젊을 때는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충성심 높은 노동자를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임금이 높아지는 50대에는 억지로 깎아내리고 직장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이 높은 충성심을 바쳐 키운 회사에서 생애임금 주기를 기준으로 최소한의 노동력의 댓가도 주지 않고 내쫓겠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재벌들의 현금곳간만 채워주자는 논리이다.

문제는 공익을 대표하고, 온 국민을 대의해야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재벌들의 곳간이나 챙겨주는 계급투쟁을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에서 정당성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2. 청년일자리

청년 일자리든 노년 일자리든 모든 일자리는 투자를 활성화하든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늘어나지, 임금피크제 도입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임금피크제를 일자리 창출에 직접 연결시킨다.

임금피크제를 한다고 하여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검증되었고, 금융권 사례에서 보듯 경험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법 개정 이전인 10여 년 전에 단협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되 정년을 57세에서 60세로 늘렸다. 그러자 대부분 55세에 퇴직하여 정년은 오히려 단축되고, 청년 일자리는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권은 일부 청년들을 민주노총 앞 노상에 도열시켜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나이 든 삼촌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데모를 벌이고 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되돌아보자면, imf 환란 이후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빈부격차 확대와 비정규직의 대폭 확대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은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를 끊임없이 줄여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게 만들고, 비정규직 간접고용 일자리만 크게 늘렸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원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괜찮은 일자리를 더 줄이는 것이 일자리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원하청 단가 후려치기를 개선하고,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바탕에서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재편해야 한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능력없는 현 정권은 비정규직들의 원망을 이용하는 여론조작에, 즉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있다.      

3. 취업규칙의 안정성

정권은 지들 나름의 “노동개혁” 사업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1) 일반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 마련. 2) 임금피크제 도입위한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
이 두 가지는 행정해석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1) 통상임금 규정 변경. 2) 근로시간 단축. 3)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이 세가지는 입법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업은 법을 개정해서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해고요건이나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기준법 규정사항인데, 그걸 행정해석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건 무슨 심뽀일까? 정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예 법도 무시하겠다는 유신시대적 발상이다.

난 특히 취업규칙의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조직 노동자들은 취업규칙 이외에도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으로, 노사협의회로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은 근기법의 취업규칙 조항 외에는 뚜렷이 보장받을 규정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취업규칙마저 사장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이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이 심하게 위축될 것이다.

취업규칙의 변경기준을 완화하여 일부 조직노동자들을 잡으려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보장의 기초인 초가삼간을 다 태울 위험이 있다. 다수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극도의 불안상태에 빠뜨릴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 사업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사진: 프레시안 최형록

4. 기재부의 승인권 남용의 결과

공운법에 의거 공공기관은 예결산 승인과 기관평가 권한은 사실상 기재부에 있다.
그럼 당연히 생길 의문인데, 내년도에 노사간 협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기재부가 몽니를 부려 복지부에서 인사규정 개정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어찌될까?

법에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되었다. 정년은 승인여부에 무관하게 연장된 것이다.
그럼 임금이나 휴가 등 근로조건은 어떨까? 인사규정, 즉 취업규칙 변경 승인이 없으므로 새로운 개정사항은 없다. 다만 임금과 휴가를 줄일 경우 근로조건 개악으로 근기법에 따라 노동자 관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동의 안 받고 일방적으로 피크제를 적용하여 임금을 줄이면 임금체불로 고발할 수 있다.

과거 imf 시절 정부나 기업이 근로자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삭감했으나 법원에서 전부 노동자가 승소하였던 전례가 있다. 정권은 더 이상 쪽팔리지 말고, 쓸데없이 변호사들 돈 벌어주게 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안으로 성실히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