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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전태일 추모가

 

         지금도 가슴 속에 파고드는 소리

         전태일 동지의 외치던 소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헛되이 마라

         외치던 그 자리에 젊은 피가 흐른다

         내 곁에 있어야 할 그 사람 어디에

         다시는 없어야 할 쓰라린 비극

           - 전태일 추모가

이김춘택 (금속노조경남지부 부지부장)

한국 노동운동에게 ‘전태일’은 축복이다.

군사독재와 어용노총으로 숨 막히던 1970년, 전태일 동지의 분신항거로부터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시작됐다. 이는 단지 역사적 사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밑바탕에 ‘전태일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갖가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사람들은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그러므로 전태일 동지의 삶을 좀 더 잘 아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전태일 동지의 삶을 공부하는 것이 다른 어떤 교육보다 먼저다. 금속노조는 신입조합원이 가입하면 의무적으로 산별기금 3만원을 내야 한다. 산별기금을 낸 신입조합원에게 금속노조 마크가 찍힌 <전태일평전>을 한 권씩 선물로 주는 건 어떨까?

 일본에서 먼저 출판된 <전태일평전>

 <전태일평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전태일 동지의 삶과 정신이 알려지지도 감동을 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은이 조영래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전태일 평전>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책으로 나왔다. 1978년 11월 <불꽃이여, 나를 감싸 안으라―어느 한국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에 지은이는 ‘김영기’라는 가명을 써서 출간됐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열사가 남긴 다섯 권의 일기장과 활동 기록물을 토대로 1976년 <전태일평전>을 다 썼지만 박정희 유신독재의 한국에서는 도저히 책을 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먼저 책이 나오게 됐는데, 일본으로 원고를 몰래 가져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노트에 쓴 원고를 사진으로 찍어 그 필름을 외국인 신부의 짐 속에 넣어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83년 5월에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평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처음 책으로 나왔는데, 역시 지은이를 밝힐 수 없어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1991년 1월 개정판을 낼 때 비로소 ‘조영래 지음’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조영래 변호사는 자신의 이름이 지은이로 인쇄된 개정판이 나오기 직전인 1990년 12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전태일 동지가 있는 모란공원에 묻혔다. <전태일평전>이 나오자 당연히(?) 군사독재정권은 즉각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전태일 동지의 삶과 정신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점에서는 책을 팔이지 못하고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종교단체 등을 통해 팔 수밖에 없었지만 반응은 대단했다. 전태일의 삶에 감동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꿔 노동자가 되고, 노동운동·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한편 <전태일평전>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읽고 있다. 2013년 <하나의 불꽃 A Single Spark>이라는 제목의 영문판이 나왔고, 2008년에는 인도네시아어로, 2009년에는 몽골어로도 번역 출판됐다.

 

 

 영국 런던 Bookmarks 서점에 있는 영문판 <전태일평전>

사진 : www.facebook.com/joeun.kim.9041?fref=ts

 

만화 <태일이>를 먼저 보자

 그런데 <전태일평전>은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전태일평전>에는 23살 젊은 노동자의 삶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목숨을 바쳐 변화시키려고 했던 평화시장의 노동현실과 더 나아가 197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이 담겨있다. 지은이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동지의 삶을 통해 당시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탐구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래서 <전태일평전>을 읽기 전에 다섯 권짜리 만화 <태일이>를 먼저 볼 것을 꼭 권하고 싶다. 만화는 글보다 이야기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고, 그림을 통해 보다 풍부한 느낌을 전해 주는 장점이 있는데, <태일이>는 만화가 가진 이런 장점을 훌륭하게 살려낸 책이다. 특히 <태일이>는 전태일 동지와 그의 가족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는 어린 시절을 매우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전태일평전>에서는 300쪽 중 65쪽에 불과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태일이>는 전체 5권 중 2권에 걸쳐 담고 있는데, 이는 전태일 동지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전태일 동지는 수기에서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만화 <태일이>가 생생히 전해주는 어린 시절은 이런 전태일 동지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전태일 정신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또한 만화 <태일이>는 60년대 평화시장의 모습을 글보다 더 생생히 알려준다. 당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은 공장장, 재단사, 미싱사, 미싱보조, 시다, 마도메, 시아게, 오바로크 등 여러 직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복잡한 구성과 시스템은 금방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몇 쪽에 걸쳐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단 한 쪽이지만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해가 훨씬 쉽다.

 그래서 만화 <태일이>를 먼저 보고 <전태일평전>을 읽는다면 책의 내용이 훨씬 더 잘 이해될 것이다. 1995년에 만든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먼저 보는 것도 <전태일평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태일과 이소선

 전태일 동지는 평화시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으면서도, 정작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전태일 동지가 분신 항거한 뒤에야 평화시장에 ‘청계피복노조’가 만들어졌고, 청계피복노조는 이후 1970~19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끌었다. 그리고 청계피복노조에는 이소선 어머니가 있었다.

 가장 믿고 의지하던 큰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세상을 떠났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데 전태일 동지는 죽기 전에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뤄주세요” 말하고 두 번 세 번 거듭 다짐을 받았다. 또 “내가 죽고 나면 물질로도 타협하자고 하고, 억압으로 타협하자고 하고, 목숨까지 앗아가면서 타협하자고 할 건데, 절대 타협하지 마세요” 부탁했다. 이에 어머니는 “이 몸이 다 닳도록 내 몸이 가루가 되도록 너하고 약속한 것을 절대로 지킬 거다” 다짐했다. 그 다짐대로 어머니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 채 전태일 동지의 장례를 치렀고 청계피복노조를 만들었고 지켜냈다.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평생 전태일 동지와의 약속을 지키며 사셨다.

 2011년 9월, 이소선 어머니는 여든 두 해의 삶을 마감하고 아들 곁으로 돌아가셨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동지 뒤편에 아들을 바라보며 묻히셨다. 여기, 한 장의 사진과 한 장의 판화(최병수 작, 어머니의 상주)가 있다. 사진 속에는 마흔을 갓 넘긴 이소선 어머니가 스물셋 아들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리고 41년 뒤, 판화 속에는 스물 셋의 청년 전태일이 여든 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있다. 사진을 품어 안은 사람과 사진 속 주인공이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이 사진과 판화 사이에는 전태일 동지와 이소선 어머니의 삶이, 한국 민주노조운동 40여 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전태일 정신은 무엇인가

 잘 알려진 것처럼,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애쓰다 분신 항거했다. 그런데 그것은 재단사였단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시다’라 불리던 열세 살, 열네 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미싱사가 되었다가 월급이 깎이면서까지 다시 재단보조로 들어간 것도 ‘평화시장 어린 동심’을 위함이었다. 이렇듯 전태일 동지로부터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은 나보다 더 약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본래부터 자신의 역할로 갖고 있다. “전태일 동지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활동했을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로 탄생한 청계피복노조가 한 사업장에 국한된 기업노조가 아니라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 등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민주노조운동은 시작부터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했고 그것이 지금의 산별노조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형식은 산별노조이지만 그 내용과 의식은 기업별노조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것이 금속노조의 현실이다. 금속노조가 기업별 의식을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산별노조가 될 때 비로소 전태일 정신을 온전히 구현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태일 정신은 시대에 따라 또는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태일 동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이익을 내는 ‘모범 기업’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을 가지고 어떤 이는 전태일 동지에게서 ‘창조적 벤처기업가나 CEO’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전태일 동지가 구상했던 모범 기업을 지금의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현재진행형으로 전태일 정신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어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또 누가 전태일 정신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 할지 모를 일이다.

 전태일 추모가

 전태일 동지와 관련된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전태일 추모가’이다. 이 노래는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에서 부르기 시작해서 전태일 동지에 대한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전태일 추모가’는 누가 만들었을까. 당시만 해도 노동가요도 없었고, 노동가요를 만드는 음악인이나 노동가요를 부르는 가수도 없었다. 그래서 ‘전태일 추모가’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TV에서 방영하던 반공드라마의 주제곡에 가사만 바꿔 붙인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파업 프로그램으로 가끔 하는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뒷얘기를 알고 노래를 다시 불러보면 그 멜로디가 반공드라마의 주제곡과 제법 어울린다는 느낌도 든다.

 ‘전태일 추모가’의 원곡이 반공 드라마의 주제곡이었다는 점, 그리고 ‘전태일 추모가’의 가사가 투쟁의 의지를 담고 있거나 미래 지향적이지 않고 단지 전태일 동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태일 추모가’ 대신 다른 노래를 부르자는 주장이 한 때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노래가 누가 부르자고 해서 널리 불리거나 부르지 말자고 해서 불리지 않는 건 아니다. 또 오히려 ‘전태일 추모가’에 담긴 비장함이 당시의 상황을 더 잘 전달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전태일 추모가’는 지금까지도 전태일 동지를 노래한 대표곡으로 남아있다. 다만 ‘전태일 추모가’를 알거나 부르는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전태일 동지에 대한 노래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불렀고, 몇 십만 장이나 팔린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실려 널리 알려진 ‘그날이 오면’ 역시 전태일 동지에 대한 노래다.

 

한 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빛나는 눈물들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짧은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그날이 오면 (문승현 작사,작곡)

 ‘그날이 오면’은 1985-86년 ‘노래모임 새벽’에서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노래극 <불꽃>을 공연하며 만든 노래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노래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가사에는 전태일 동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모르면 ‘그날이 오면’이 전태일 동지를 위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기 힘들다.

 너의 죽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진

저 푸른 하늘을 보아라 가슴 벅찬 세상 보아라

너의 불타는 넋이 누리에 살아 숨 쉬니

역사의 새 장을 열고서 그날을 맞이하리라

이제는 너의 이름 말하라 찬란한 민중의 나라

온 세상 산천초목 짙푸른 투쟁과 노동의 깃발

드높이 드높이 높이 솟아 맞이하리라 민중의 나라

- 전태일 민중의 나라 (김정환 작시, 변계원 작곡)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만든 ‘전태일 민중의 나라’는 ‘전태일 추모가’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로 1990년에 만들어졌다. 멜로디가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역사의 새 장을 열고 민중의 나라를 맞이하리라”는 미래지향적이고 변혁적인 의지가 담겨있다. 전태일 추모가의 내용적 단점을 보완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러 있기는 해도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함께 부르기보다는 독창에 어울리는 노래라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신입 조합원에게 ‘전태일 추모가’는 가르쳐 줘도 ‘전태일 민중의 나라’는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 번, 한국 노동운동에게 ‘전태일’은 축복이다.

그런데 그 축복을 제대로 누리는 조합원은 얼마나 될까.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 중에서 <태일이> 만화나 <전태일평전>을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노래 ‘전태일 추모가’나 ‘전태일 민중의 나라’를 아는 사람은 또 얼마일까.

이 글을 읽는 조합원 있다면, <태일이>와 <전태일평전>을 꼭 한 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가 전태일 동지와 이소선 어머니 묘소 앞에서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전태일 추모가’를 꼭 한 번 불러보기를 바란다.★

 

※ 참고하고 인용한 글 :

- 정성일, 전태일평전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http://www.vop.co.kr/A00000332649.html

- 민종덕,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길(73)-전태일 평전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996

- 문승현, ‘그날이 오면’은 전태일 추모가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8959

 

전태일추모가 노래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g596oj88C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