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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기억

밀양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활동가 곽빛나

(사진설명) 8월 30일 밀양 장터 사진

며칠 전, 코끝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고 눈 내리던 날 옷깃을 여미며, 밀양송전탑이 들어선 단장면 동화전 마을의 사랑방에 갔다. 올 11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사랑방에 모여 몸살림 운동을 하고 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낭끝할매와 서울댁할매 손을 잡으면서 벌써 2014년의 끝자락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5월말 101번 송전탑 부지에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농성막을 가기위해 매일 산을 오르던 그때는 점점 더워지는 여름이 오는 것이 두렵고 걱정스러웠는데, 그런 순간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이 공사는 끝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던 순간들도 찰나같이 지나갔다.

2012년 8월 1일 밀양으로 파견 나온 이후 가장 끔찍했던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의 날을 다시 생각하면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행정대집행의 대상이 되었던 101번,115번,127번,129번 4곳 송전탑예정부지의 농성막 철거가 6월 11일에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뉴스로 올라온 다음날 밀양 송전탑 반대 마을 입구에는 경찰들로 둘러싸였다. 행정대집행 날짜는 우리가 예상했던 날보다도 훨씬 빨랐고 밀양을 연대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오기도 전에 마을 입구는 출입이 제한되었다. 경찰병력만 2000명이 넘었고 밀양시청공무원들과 한전직웓들 수 백명으로 삼엄했다. 그러나 전국곳곳에서 한걸음에 내달려온 사람들이 산을 4시간씩 타면서, 주민들 차 뒷트렁크에 웅크려 타고, 수많은 뒷길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며 어르신들이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씩 지켜오던 농성막으로 들어갔다.

6월 10일 밤은 다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초여름 산속 밤의 추운 날씨 탓이기도 했고, 새벽까지 산을 타고 농성막으로 오고 있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탓도 있었고, 내일 들이닥칠 경찰과 시청공무원과 한전을 생각하며 두려웠기도 했다. 상황실을 지키고 있던 나는 혹시라도 누군가의 연락이 오지 않을까라는 불안함으로 잠들지 못했다. 그래도 상황실에 가득 누운 연대자들을 보며 위로가 되었다. 아마도 농성막에서 행정대집행을 기다리던 밀양어르신들도 곁에 있는 동료와 연대자들의 온기로 그 곳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새벽 6시에 129번 송전탑 부지에 지어진 농성막을 철거하러 온 경찰 2000명과 시청공무원에게 100여명 남짓한 주민과 연대자들은 처참히 짓밟혔다 쇠사슬을 목에 감은 주민들에게 커터기를 과감히 들이대고, 옷을 벗으며 저항하는 할매들을 우악스럽게 끄집어내던 남자경찰들, 수녀님들의 머리를 잡아채고 인권활동가와 변호사도 내팽개쳐지던 그 지옥 같은 철거는 어르신들의 바람과는 달리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모르던 그날 한전과 시청직원들 그리고 경찰의 웃음을 잊지 못한다.

129번의 상황이 끝나자 127번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그들은 더 빠르고 더 과감하게 철거했다. 마지막으로 끌려나온 할매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파르르 떨고 있는데도 구급차는 20여분이 넘어서도 오지 않았다. 115번도 농성막 아래에 주민들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수십 명의 경찰들이 올라서서 움막을 찢던 무자비함을 그대로 보아야했다.

101번에서는 철거가 끝이 나고 승리의 브이 인증샷을 찍던 경찰들이였다. 농성막에서 사람들이 끌려나오는 그 순간에도 벌목을 하던 한전이었다.

이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한국전력은 주민들과 협의을 이끌어내고 순조롭게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사람들이 묻는다 밀양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어르신들은 송전탑이 있는 한, 끝나지도 끝날 수도 없는 싸움이라고 이야기 한다.

행정대집행이 끝나고 농성막이 다 사라진 후에도 절망하지 않고 어르신들은 다시 마을입구에 혹은 산 아래에 사랑방을 열었다. 사랑방을 열던 날은 마을마다 돼지머리를 삶고 푸짐한 음식도 차렸다. 다함께 절도 했다. 술도 나눠먹고 서로의 손도 맞잡았다. 밀양 어르신들은 결코 지지 않았다고, 단 한기의 송전탑도 내어주지도 않았다고 외치셨다. 그 후로도 매주 토요일 밀양은 촛불을 켠다.

거의 매일 전쟁을 치르던 삶이 잦아들고 어르신들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6.11행정대집행 이후 불명증과 우울증, 근육통 등으로 매주 2차례 병원을 다니고 계신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일꾼들은 미니팜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을 통해 어르신들의 농산물 직거래를 하고 있다. 매달 주민들의 농산물 판매를 위해 힘을 쏟고 있으며, 올해 8월과 11월에 장터를 열어 지속적으로 연대해오던 사람들은 새로운 연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12월 13일 토요일 아침 쌍용차 해고자들이 세 번째 고공농성을 위해 평택공장 내 굴뚝을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외치는 그들을 보노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필 추운 겨울 그 시린 상공으로 올라가야 했나 싶어 마음이 미어지는데 어르신들은 아픔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의 손을 잡으러 72시간 특별한 송년회를 떠나신다.

15일 오전 경북 구미 합섬업체 스타케미컬 굴뚝 농성장, 강원도 홍천군 골프장 반대 농성장을 방문을 시작으로 16일에는 청주 지역간담회를 거쳐 충북 영동 유성기업, 과천 코오롱본사 단식농성장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찾는다.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거쳐 저녁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합동 송년회'에 참석하신다. 이 시린 대한민국에 따뜻함을 불어넣는 고된 일을 어르신들이 하고 계시다.

어르신들 2014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밀양을 더 알고 싶으시다면,

*밀양송전탑대책위 010-9203-0765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공식 블로그 http://my765kvout.tistory.com

*밀양송전탑후원 815-01-227123 (농협,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경과]

-2001. 5.경과지 선정 착수.

-200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반대 밀양·창녕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2007. 7.밀양시 의회, 공사계획 폐지를 요구하는 대정부 건의문 채택.

-2007. 11.사업계획 승인.-2008. 7.밀양시 주민들, 송전선로 백지화 요구 첫 궐기대회.

-2008. 8.한전, 송전선로건설 착공.

-2009. 12. ∼ 2010. 6.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밀양지역 갈등조정위원회 운영, 권익위원회 합의(주요 합의내용: 밀양지역은 송전선로로부터 가옥 거리를 100m이상 이격, 3mG 준수, 공사 전 검증, 송전탑건설 제도 개선추진위 구성, 공사 진행 여부는 당사자 간 추후협의 후 결정)

-2010. 10.밀양시장, 토지수용재결 공고 및 열람.

-2010. 12.한전, 공사 재개. -2011. 5.주민과 한전 간 대화위원회 개최.

-2012. 1. 16.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던 밀양시민 故 이치우, 송전탑 공사 부지 인근에서 분신자결.

-2012. 1. 17.한전, 추모차원에서 공사 중단.

-2012. 6. 10.한전, 공사 재개.

-2012. 9. 29.한전, 공사 중단.

-2013. 5. 20. 한전, 공사 재개.

국제엠네스티, 밀양 인권침해 및 주민피해 조사.-2013. 5. 29.한전, 공사 중단, 전문가협의체를 통한 대안 연구하기로 합의.

-2013. 6. 유엔인권옹호자 특별보좌관, 밀양송전탑 반대시위현장 방문.

-2013. 7. 8. 전문가협의체 '송전탑 건설 외 대안없다'취지 보고서 작성.

국회, 보고서 채택 하지 않고 양 측에 대화 권고.

-2013. 10. 1.한전, 공사재개.

-2013. 12. 6.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던 밀양시민 故 유한숙, 송전탑 공사 부지 인근 자택에서 음독자결.

-2014. 6. 11.밀양시장, 공사 반대 주민 소유 움막 철거 행정대집행.

-2014. 8. 30. 밀양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 장터 제1회

-2014. 9. 23.철탑 조립 공사 완료.

-2014. 11. 29. 밀양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 장터 제2회

-2014. 12. 15~17 밀양-청도 주민들이 떠나는 72시간 특별한 송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