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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이대로는 또 사고 난다 -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가 말하는 크레인 사고

(사진=뉴스1)


이대로는 또 사고 난다

-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가 말하는 크레인 사고 -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5월 1일 크레인 붕괴 사고가 났을 때 사고현장 바로 옆에 있는 해양플랜트 모듈에서 일을 했던 노동자였다. 사고 당일 상황과 평소 일을 하면서 생각했던 문제점에 대해 한참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해 더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직접 보고 느낀 크레인 사고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자.

 

조선하청노조 :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맙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해 달라.

 

하청노동자 : 사고가 난 곳이 마틴 프로젝트 모듈인데 우리는 사고가 난 모듈 바로 옆 모듈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고 당시에 쿵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간격을 두고 두 번 났다. 보통 작업하다 보면 그런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진동이 울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무슨 일이 났다 싶어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지브크레인 붐대가 꺾인 채 무너져 있었고 골리앗 크레인이 지브크레인을 위에서 누르는 것 같은 모습으로 충돌해 있었다. 현장 관리자가 작업 중지하고 내려오라고 해서 모듈에서 내려왔다.

 

조선하청노조 : 사고현장 바로 옆 모듈이라면 사고가 난 모듈과 비슷한 것인가?

 

하청노동자 : 그렇다. 둘 다 같은 마틴 프로젝트이고 나란히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사고가 난 모듈과 구조가 거의 같다. 그래서 일하는 현장 상황이나 조건도 거의 비슷하다.

 

조선하청노조 : 사고가 난 날이 노동절 휴일이었고, 정규직은 쉬었는데 하청노동자만 일하다 사고가 났다는 점을 언론에서 많이 주목했다.

 

하청노동자 : 노동절 휴일에 주로 하청노동자가 쉬지도 못하고 나와서 일한 건 맞는데, 사실 우리 같은 일당제는 공휴일에 나와서 일하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다. 공휴일이라고 쉬면 돈이 안 되기 때문에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공휴일에 나와서 일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조선하청노조 : 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하청노동자 : 사고가 난 프로젝트는 공사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삼성에서 공정을 매우 서둘렀다. 다른 해양플랜트 현장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여기처럼 이렇게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처음 경험했다.

 

공정을 서두르다보니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혼재작업’이다. 5~6명 정도가 일하면 적당한 공간에 20~30명이 꽉 들어차서 작업을 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업체가 서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공간에서 함석, 보온, 용접, 그라인더, 도장, 전기, 시운전 등 해양플랜트 관련한 거의 모든 공정이 한꺼번에 다 이루어졌다. 상부와 하부에서 동시에 작업을 하는 것도 문제다. 위에서 작업하다 공구나 자재가 떨어지면 위험한데 실제로 그렇게 떨어져서 다친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황당한 일도 있었다. 작업하다 잠시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내가 들어온 출입문이 잠겨있는 거다. 출입문 반대편에서 다른 업체 작업자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잠긴 거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 물어봐서 다른 출입구를 찾아서 나가야 된다.

 

조선하청노조 : 들어온 출입문이 잠겨서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 모른다면, 사고가 날 경우 위험할 수 있겠다.

 

하청노동자 : 당연하다. 언젠가 우리반 반장이 지나가는 말로 “여기서 불나면 다 죽는다”고 말했는데 듣는 순간 섬뜩했다. 실제로 이번에 크레인 사고였으니 그렇지 만약 불이 났다면 정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현장을 직접 보면 “불이 나면 다 죽는다”는 말을 바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용접 작업을 하려면 바닥에 불연재를 안전하게 깔아놓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공정에 쫓기다 보니 안 그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내가 일하던 곳 근처에서 용접 작업을 하다 불똥이 튀어서 불이 날 뻔한 적도 있다.

 

조선하청노조 : 사고가 난 뒤 회사에서는 오후 3시가 휴식시간인데 노동자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고 일찍 쉬어서 피해가 커졌다는 애기가 있었다.

 

하청노동자 :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공정을 서두른다고 좁은 작업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투입시켜놨기 때문에 휴식시간을 지킬 수가 없다. 휴식시간에 화장실 근처 흡연장소로 내려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되고 그렇게 줄 서서 내려가면 휴식시간이 다 끝나는 게 현실이다.

 

휴식시간 뿐만이 아니다. 점심시간에도 배에서 줄서서 내려가서 식당까지 가서 식판에 밥을 받으면 벌써 40분 가까이 지난다. 밥을 먹는지 마시는지 급하게 먹고 쉬지도 못하고 다시 작업 현장으로 올라가도 이미 1시가 넘는다. 그래서 아침에 아예 김밥을 사가지고 와서 점심시간에 식당에 내려가지 않고 김밥으로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 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휴식시간에 크레인 작업을 하는 것도 문제다. 평소에도 휴식시간에 신호수들이 호각을 불어가며 크레인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권순현)

 

조선하청노조 : 이번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분들 중에 물량팀 노동자도 많은 걸로 안다.

 

하청노동자 : 우리도 물량팀인데, 우리 업체는 작업자 대부분이 물량팀이다. 그런데 우리 경우에 근로계약서도 안 썼고, 4대보험을 들으라는 얘기도 없었다. 게다가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월급명세서도 안 준다. 그래서 월급을 받아도 무슨 돈을 얼마를 공제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 매일 작업한 공수를 스스로 기록해 놓고 내가 기록한 것과 월급과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제야 얘기하지만, 우리는 사고 전 날까지 사고가 난 모듈에서 일하다 사고 당일 바로 옆 모듈로 옮겼다. 만약 옮기지 않고 계속 일했다면 우리 역시 그 시간에 사고가 난 그 장소에 있었을 것이고 우리도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4대보험도 안 들었는데 만약 내가 사고를 당했다면 보험 문제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그것도 막막한 문제겠더라.

 

조선하청노조 : 삼성 발표에 따르면 사내 구급대가 사고 후 5분 만에 현장에 왔고, 사외 119구급대는 사고 후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고 하던데 맞나?

 

하청노동자 : 안전모에 사내 구급대 전화번호가 있고, 또 교육을 받기도 했다. 사내 구급대는 5분 만에 도착한 것이 맞을 거다. 그런데 사외 119구급대가 10분 만에 왔다고 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사내 구급대가 도착해서 사고 현장까지 올라가는 데만 5분 가까이 걸린 텐데, 올라가서 현장을 보고 119구급대에 연락을 해서 119구급대가 출동해서 들어오면 10분 만에 올 수가 없다. 정확한 것은 119출동 자료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10분 만에 오지는 않았다.

 

조선하청노조 : 사고 이후 수습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하청노동자 : 좁은 작업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혼재작업을 했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수습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나가려고 해도 줄을 서서 한참 걸려야 하는데 사고가 나서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다친 사람들을 신속하게 응급조치하고 병원으로 옮기는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불이 나면 다 죽는다”는 것이 딱 들어맞는 현장인데, 그러한 현장 상황에 대비한 사고 대응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었겠는가.


조선하청노조 : 그렇다면 이번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는 것은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하청노동자 : 노동부가 어떤 조사를 하고 어떤 감독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크레인 충돌 사고였지만 크레인이 안 부딪힌다고 다가 아니다. 사람들 쉬는 시간에 크레인은 쉬지 않고 계속 작업한 것도 문제고, 가장 큰 문제는 공사기간에 쫓긴다고 좁은 작업 공간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투입해서 혼재작업을 한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무리하고 비정상적인 혼재작업이 계속된다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물어보면 다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이대로는 사고 또 난다. (끝)